[신간] 최종태, 그리며 살았다
[신간] 최종태, 그리며 살았다
  • 이주리 기자
  • 승인 2020.01.08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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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태 지음/김영사
ⓒ위클리서울/김영사
ⓒ위클리서울/김영사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원로 조각가 최종태 교수의 산문집 '최종태, 그리며 살았다'가 출간되었다. 지난 해 미수(88세)를 맞은 그가 최근 십수 년간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처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중학생 시절부터 오늘까지,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살며 그렸는지, 누구에게 배웠으며, 무엇을 바랐고, 극복하려 한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진솔하게 풀어놓았다. 철모르던 유년기의 기억에서부터,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 이동훈, 김종영, 장욱진 등 그가 사사하고 교유한 이들과의 추억, 피카소와 자코메티, 이응노와 윤형근, 샤갈과 헨리 무어 등 거장들의 작품에 대한 생각, 오늘의 미술에 대한 견해와 자신의 예술관을 담았다. 여기에 그가 걸어온 구도자적 추구의 길과 마침내 얻은 자유의 감각까지, 책에 담긴 이야기는 다른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는,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말이며, 그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작가의 그림과 조각처럼 퍽 단순 간결하지만,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글들이 매력적이다.

저자는 한국 현대 조각을 대표하는 미술가이지만,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나의 미술, 아름다움을 향한 사색》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 《형태를 찾아서》 같은 산문집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 《한 예술가의 회상: 나의 스승 김종영을 추억하며》 등 스승을 기념하는 책 작업도 맡아 펴낸 바 있다. 이번 책에서는 미수를 넘긴 그가 마침내 ‘본 대로 느낀 대로’ 그릴 수 있게 되기까지 이야기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한국 미술의 산 증인이자 오랜 세월 예술에 천착해온 이다운 통찰력이 문득문득 엿보인다. 1장에서는 가벼운 일상의 이야기에서부터 영원한 것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글까지, 글맛이 느껴지는 산문을 뽑아 실었다. 2장에서는 예술가와 예술에 대한 글이 이어진다. 고암 이응노, 흑빛 추상의 거장 윤형근, 피카소와 자코메티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에 대한 작가론을 저자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를 곁들여 전한다. ‘인간’이 사라지고 있는 오늘의 미술에 대한 고민과 작가의 예술론도 풀어내고 있어, 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눈여겨볼 만하다. 3장에는 그가 만났던 사람들에 관해 쓴 글을 주로 모았다. 일제 강점기 초등학생 시절부터 한국 현대사의 격동을 겪으며 그가 만났던 소중한 사람들과 스승에 대한 이야기가 정겹고 그립다. 4장에서는 종교 미술, 신앙과 예술을 주제로 한 글들을 엮었다. 

마지막 5장에는 그가 평생 자유를 찾아 헤매며 걸었던 길을 회고하는 두 편의 특별한 글이 실렸다. 하나는 아직 자유를 얻고자 애쓰던 때에, 마지막 글은 얼마 전 문득 그 자유의 감각을 얻게 된 이후에 쓰였다. 겹치는 내용이 있지만, 연달아 실린 두 편의 글에 작가의 고뇌와 해방감이 오롯이 담겨 있다. 바로 그가 스승에게서 배운 것들, 그리고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세계 미술사의 걸작들의 영향으로부터의 자유다. ‘내 맘대로 그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작가는 잘 알고 있다. 실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일과 같았고, 마침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경험은 그에겐 종교적 체험에 가까운 것이었다.

노 예술가는 오늘도 펜을 놓지 않고 그리고 또 그린다. 오늘도 그의 곁에는 현재 구상 중인 작품 스케치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이 해방감을 얻은 그는 앞으로 어떤 작품을 빚어낼까? ‘본 대로 느낀 대로’ 그리고, 마침내 그의 오랜 소망인 ‘깨끗한 그림’에 다다를 때까지 그의 여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책 한가운데에는 작가의 그림과 조각 사진 14점을 수록했다. 볼펜, 사인펜, 파스텔, 먹과 수채 등으로 그린 여인의 얼굴에서부터 모자상, 여인상, 관음상, 그리고 풍경화까지 작가의 작품 세계를 두루 살필 수 있는 작품 사진을 추려 글과 함께 배치했다. 글에 나타난 깨끗하고 자유로운 그림에 대한 추구가 어떻게 작품 속에 구현되고 있는지를 독자는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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