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안 하기
송구영신 안 하기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0.01.09 09: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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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pixabay.com, 그래픽=이주리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또 새해가 밝았다고들 한다. 벽면에 힘없이 매달려 있던 달력의 마지막 장은 뜯겨 나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못하고 통째로 없어져 버렸다. 그 자리엔 숫자가 두 개씩이나 바뀌어버린 2020 경자년 달력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해가 바뀐 것은 분명하다.

경자년이라는 단어가 어딘지 모르게 친숙하고 입에 착착 달라붙어서 왜 그런가 싶었는데 나의 먼 친척언니들 중 경자언니와 문자언니가 계시다는 것이 떠올랐다. 옛날에는 여자아이 이름에 ‘숙’이나 ‘자’를 잘 사용하던 덕에 그 언니도 이름이 경자가 돼버렸고 그 동생은 문자가 돼버렸다. 경자언니가 맞이하는 경자년은 어떤 느낌일까? 잘 연락하고 지내는 친척간이 아니다 보니 뜬금없이 안부를 여쭈기도 면구스럽다. 칠순을 바라보는 경자언니가 올해도 무탈하니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올해 경자년은 육십간지 중 37번째로서 경(庚)은 희다는 뜻을, 자(子)는 쥐를 의미해서 하얀 쥐의 해라고 하니 또 생각나는 한 분이 나의 첫 난타 선생님이시다. 10여 년 전 난타 교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앞에서 지도하시던 선생님은 예쁘고 조그마한 체구의 아가씨였다. 난타 선생님은 나이가 많아야 된다는 혹은 남자여야 한다는 선입견 따위는 없었는데 그 선생님을 보는 순간 희한하게도 ‘어 아가씨 선생님이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무용을 전공하셨다는 선생님은 얼굴만큼이나 예쁜 마음 씀씀이로 나이 지긋하신 회원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셨다. 회원들끼리 자리다툼이나 의견 충돌이 일어날 때도 선생님은 어린 나이답지 않게 연세 높으신 회원들을 아이 다루듯 살살 달래어 마음을 풀어 놓으시곤 하셨다. 요즘도 가끔 인간관계에 힘들어질 때면 그 선생님이 생각나곤 한다. 몇 해 전 결혼하시고 선생님을 닮은 두 딸 아이의 엄마가 되신 선생님이 쥐띠라고 했으니 어느새 삼십 중반을 향하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러한 뜻의 새해가 밝긴 밝았는데 나에게 새해라는 의미는 크게 와 닿지가 않는다. 수요일 다음 날이 목요일이듯, 2일 다음 날이 3일이듯, 어제 다음 날이 오늘이고 오늘 다음날이 내일이 될 예정이니 19년 다음은 20년일 것이고 12월 31일 다음 날은 1월 1일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 크게 호들갑 떨 일은 아니라는 거다. 언제부턴가 12월 31일 밤 12시가 다가오면 각 방송사들마다 카운트다운을 하고 어느 높은 고층타워에서는 폭죽을 터트리는 행사들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 옛날 종로 보신각 앞에서 인산인해를 이루며 듣던 재야의 타종소리에 마음이 경건해지면서 소박한 소망들을 가슴 속 깊이 새겨 넣던 때가 그리운 건 갱년기 우울증 탓인가?

어렸을 때는 일기를 꼬박꼬박 써야지, 예습 복습을 미루지 말고 해야지 등의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새해가 다가오면 돈을 아껴 써야지 술을 좀 줄여야지 했다가 결혼을 하고 나서는 가계부를 빼먹지 말고 써야지, 외식을 줄여야지,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인생살이 아니던가. 오히려 지켜야 한다는 생각들이 스트레스가 되는 듯 한 느낌마저 들면서 어느 순간엔가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 되는 듯이 아무런 생각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니 나에게 있어 송구영신이란 단어는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요란스럽게 이것저것 신년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어제와 같은 오늘을 열심히 살고 오늘과 같을 내일에 충실 하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일기도 며칠 쓰다가 개학 일에 임박해 몰아서 쓰느라 애먹었고 예습, 복습도 꾸준히 했으면 아마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 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계획대로 돈을 아껴 썼더라면 임대료 나오는 빌딩 한두 개는 가졌을 것이고 술을 줄인다는 것은 애초부터 글러 먹은 이야기다. 지금도 가계부를 제때 쓰지 않아서 가끔씩 현금 잔액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어디에 썼는지 생각해 내느라 머리를 쥐어짜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다 빠질 지경이다. 밥 지옥, 설거지 지옥에서 단비와도 같은 외식을 줄인다는 것은 내 정신건강에 치명타를 안겨 줄 것이 분명했다. 서슬 퍼런 구조조정과 기업문화에서 살아남으려고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는 남편 덕택에 회사와 친정집을 미친년 널뛰듯이 뛰어다니며 독박 육아를 해낸 나에게 교양 따위를 기대한다는 것 또한 무리수일 것이다.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만 다짐이나 계획을 세울 것이 아니다. 어제 못했던 일들을 오늘 하면 될 것이고 오늘 반성할 일들을 내일은 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부터 굳이 새해가 밝았다는 의미를 크게 느끼지 못하겠고 송구영신이나 신년계획과 같은 일들이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 찔리기도 하다. 나름 뭔가를 하겠다고 다짐은 하지만 막상 지키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됐으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12월31일에도 운동을 했고 변함없이 1월1일에도 운동을 했다. 작년 1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 1년 단위로 등록해 놓은 헬스장을 빠짐없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다니고 있다. 아마 내일도 나는 헬스장을 갈 것이고 못 가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변화가 없는 무료한 삶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을 하든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아닌가.

우리 가족은 1월1일마다 용문사를 간다. 딱히 가자고, 가야한다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어느 해는 눈 덮인 길을 걷기도 하고 어느 해는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벗 삼기도 하며 용문사에 가서 약수 한 사발을 들이켜고 인근 단골식당에서 밥을 먹고 오는 것이 십 수년째 우리 가족의 암묵적인 연중행사였다. 올해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행선지가 해돋이 명소인 정동진으로 바뀌어 버렸다. 밤에 출발하면 충분히 도착하리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새벽 3시가 넘어 출발했으니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동이 터 버렸고 정동진을 2km남겨둔 지점부터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차량 정체로 인해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살이라지만 헛웃음만 나오는 올해 1월1일의 가족행사는 앞으로 몇 년간은 회자될 에피소드가 될 것이니 이 또한 삶의 활력소 아니겠는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하얀 쥐의 해 경자년이 되었다. 친척언니처럼 이름이 경자이신 분들은 올해가 다른 사람들 보다 남다르게 다가올까? 나의 경자언니를 비롯한 모든 경자님들이 올해는 더 건승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한번은 뵙고 싶은 나의 첫 난타 선생님처럼 쥐의 해에 태어나신 모든 분들이 풍요로운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추구하는 나는 우리 난타팀 ‘Black TA Queens’가 어디서나 인정받고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경자년이 의미하는 것처럼 풍요롭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가득 하기를 기원해본다. 우리 모두 Happy New Year!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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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지 2020-01-09 14:25:04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새해 맞이 소감이라 더욱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2020년에도 경자 언니들, 경자 형님들 모두 좋은 일 가득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