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소망
새해 소망
  • 장영식
  • 승인 2020.01.1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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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2011년 11월 10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 고공 위에서 309일 만에 농성을 해제하고 걸어서 내려오고 있다. ⓒ장영식
2011년 11월 10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 고공 위에서 309일 만에 농성을 해제하고 걸어서 내려오고 있다. ⓒ장영식

[위클리서울=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는 마지막 남은 해고 노동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진숙’입니다. 김진숙은 ‘소금꽃나무’와 ‘85호 크레인’으로 유명한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입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2003년은 지옥 같은 해였습니다. 2003년 10월, 김주익 지회장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농성 129일 만에 목을 맸고, 2주 뒤 곽재규 열사가 도크에 투신했습니다. 두 분의 희생으로 노동조합 활동으로 해고된 사람들이 모두 복직하게 됩니다. 해고된 지 20년이 된 박영제, 이정식도 2006년 1월 1일 복직됩니다. 그러나 김진숙은 제외됐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반대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2011년, 김진숙은 김주익 열사가 목을 맸던 85호 크레인으로 올랐습니다. 309일의 농성 기간 동안에 김진숙을 살린 것은 SNS와 희망버스였습니다. 85호 크레인의 고공 농성 소식은 전파를 타고 전 세계의 시민을 울렸습니다. 전국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영도를 찾았습니다. 어떤 이는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이 85호 크레인을 바라보고만 있었고, 어떤 이들은 매일 85호 크레인 앞에서 108배를 올렸습니다.

죽으려고 올랐던 85호 크레인에서 309일 만에 자신의 발로 땅을 밟았습니다. 자신이 SNS에 올렸던 말처럼 “꼭 걸어서 내려가겠습니다?”라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생환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젊은 노동자가 목을 맸습니다. 최강서 열사는 2012년 대선 이후 ‘손배가압류’를 거부하며 자진했습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손배가압류는 지금도 노동자들을 옥죄는 악법입니다. 피붙이 같은 젊은 동지를 잃은 김진숙은 오열했습니다. “강서야, 강서야~”를 절규했습니다. 죽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노동의 현실이었습니다.

 

최강서 열사를 추모하며 오열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 ⓒ장영식
최강서 열사를 추모하며 오열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 ⓒ장영식

2018년, 김진숙은 사라졌습니다. 많은 이가 그의 소식을 물었지만,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이는 암 진단을 받았고, 오랜 항암 투병의 길을 걸었습니다. 말이 투병이지, 오랜 노동 투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졌던 몸은 항암 투병으로 절망적이었습니다. 몸의 암 세포를 죽이기 위한 투약은 또 하나의 암 덩어리나 같았습니다. 독한 약물 부작용은 원래부터 골다공증이 있었던 그이의 몸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간도 파괴되고 있었습니다. 황달로 고생하고 있던 어느 날, 길을 걷는 데 간 혼수가 왔습니다. 김진숙은 가까이 있는 은행으로 들어가서 겨우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항암은 김진숙을 무력화 시켰습니다. 자신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항암 과정과 약물부작용은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혼돈 속으로 몰아갔습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심해졌습니다. 그렇게 죽음 같은 은둔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김진숙의 오랜 친구였던 영남의료원 박문진 간호사가 영남의료원 고공에서 농성 투쟁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박문진이 인터뷰 중에 “외롭다”고 말을 한 것을 보고, 그 지독한 외로움이 어떤 것인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에 무작정 친구에게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몸을 추스르고, 영남의료원 사태를 알리기 위해 대구까지 걸어갈 것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12월 23일 SNS에 공식적으로 이 사실을 알립니다.

 

최근 밀양에서 목도리를 선물 받고 환하게 웃는 모습. ⓒ장영식
최근 밀양에서 목도리를 선물 받고 환하게 웃는 모습. ⓒ장영식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단체협약에 의해 만 60세가 되는 해의 12월 31일에 정년을 맞게 됩니다. 2020년은 김진숙의 나이가 만 60세가 되는 해입니다. 그이는 언젠가 “정년이 되기 전에 영도조선소로 돌아가 단 하루라도 좋으니 푸른색 작업복을 입고 일을 하는 것이 소망이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영도조선소에서 기쁜 일보다는 한과 애끓는 슬픔이 더 많았던 한 노동자의 소망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조선소의 유일한 처녀 용접공이었던 노동자의 복직을 더 이상 거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단 하루 만이라도 푸른색 작업복을 입고, 용접을 하며 노동자로서의 삶을 갈무리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지원하고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2020년 12월 31일, 김진숙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복직을 하고 노동을 하고 정년 퇴직을 맞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조합을 시작한 이후 눈을 뜨고 아침에 회사 가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던 김진숙에게 우리 사회가 마지막으로 그 즐거움을 되돌려 주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김진숙의 복직은 평생을 노동조합에 헌신했던 한 노동자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정년 선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름다운 복직의 날과 정년의 날을 위해서라도 항암 투병을 이겨 내시길 빕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항암 투병을 이겨 내시길 빕니다. 

 

영남의료원 고공 위에서 오랜 친구 박문진을 만나 차가운 손을 맞잡았다. 이제 우리 사회가 김진숙의 손을 잡을 때다. 김진숙의 오랜 소망인 복직과 아름다운 정년을 위해 힘을 모을 때다. ⓒ장영식
영남의료원 고공 위에서 오랜 친구 박문진을 만나 차가운 손을 맞잡았다. 이제 우리 사회가 김진숙의 손을 잡을 때다. 김진숙의 오랜 소망인 복직과 아름다운 정년을 위해 힘을 모을 때다. ⓒ장영식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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