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주나 – 세계여행] 네팔 히말라야-1편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렇기에 삶에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히말라야 원정기. 한 번에 다 이야기하기엔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기, 주나>는 여행 일기 혹은 여행 기억을 나누고 싶은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의 세계 여행기이다. 여기(여행지)에 있는 주나(Juna)의 세계 여행 그 열다섯 번째 이야기.

네팔 히말라야 오르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리는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크리스마스 마켓 가기, 미국 뉴욕에서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볼드롭)와 함께 새해 맞이하기.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채워나간 버킷리스트 중 모두 12월에 해야 할 일들이다. 한 달 안에 네팔, 프랑스, 미국이라니….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시간과 돈을 사용하며 이동하는 세계여행자도 없을 거다. 하지만 꿈이었다. 명사가 아닌 동사로서의 꿈. 무엇이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닌, 무엇을 하고 싶다는 꿈 말이다.

시간은 없고, 마음만 앞선 나는 히말라야에 오르기 위해 아무 준비도, 정보도 없이 일단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입국했다.

네팔은 인도 국적자를 제외한 모든 외국인이 비자를 발급받아야 입국이 가능한 나라이다. 15일(25달러), 30일(40달러), 90일(100불)짜리 비자를 공항에서 발급 받을 수 있는데 나는 히말라야에 오르는 목적만을 가지고 네팔에 입국했고, 이후에 많은 계획들이 있었기에 30일짜리 도착비자 신청서를 작성했다.

비자 신청료는 달러, 원화, 루피 등 다양한 화폐로 계산이 가능하다. 현금이 없던 나는 ATM기로 향했다. 긴 여행을 하고 있기에 평소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도착한 나라에서 대략 예산을 뽑은 후 ATM기에서 현지 화폐로 인출해 사용한다. 그런데 인출을 하려고 보니 잔액 부족으로 떴다. 당황하지 않고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이체를 시켰다. 또 잔액 부족이다. 인출 수수료를 생각 안 하고 너무 적게 보낸 것 같아 다시 이체를 시켰다. 또 잔액 부족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현금 결제만 된다는 이야기를 블로그에서 봤었기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설마 히말라야는커녕 현금이 없어서 입국도 못 하는 거 아니야?’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시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잔액이 부족하다고 나왔다. 결국 옆에 있는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카트만두에서 아침에 세수를 하려고 보니 녹물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화장실 밖 평화로운 풍경을 보았기 때문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딱 내가 생각했던 카트만두의 모습. 하지만 난 서둘러야했다. 히말라야를 위해.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인출하려고 하는데 계속 잔액 부족이라고 떠. 어떻게 해야 하지?”

“그거 고장 났어.”

“뭐라고??? 그럼 어떻게 해? 비자 발급비 내야 하는데.”

“현금 없어?”

“응. 없어….”

“카드 내.”

“아… 그래도 돼? 고마워.”

불과 몇 개월 전에 올라온 블로그 글을 봤던 건데… 역시 사회는 급변하는 것 같다.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얼마나 안도했는지…. 같은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비자를 발급받고 입국을 했다. 어떻게 알았냐면 짐을 찾으러 갔더니 이미 수하물 벨트는 멈춰있고, 그 앞에 내 배낭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늦게 나왔지만 입국장을 들어서며 굉장히 감사했다. 가방을 잃어버린 혹은 가방이 도착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안내소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내 목적은 오로지 히말라야였기에 카트만두 숙소는 하루만 예약해놓은 상태였다. 숙소를 고를 때도 다른 기준은 없었다. 시내에 자정이 넘어서 도착하기에 24시간 체크인이 가능한 곳, 공항에서 가까운 곳, 당연히 저렴한 곳. 그렇게 새벽에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 숙소에서 대충 세수와 양치질만 하고 잠을 청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길에 들린 휴게소 화장실 밖 풍경. ‘저기가 히말라야라고? 내가 곧 저 곳에 오른다고?’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길에 들린 휴게소 화장실 밖 풍경. ‘저기가 히말라야라고? 내가 곧 저 곳에 오른다고?’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야외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카트만두 주민들. 여행을 하면 사소한 것들 혹은 당연했던 것들에 감사를 하게 된다. 한국에서 당연하게 누리고,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감사해지기 시작한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야외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카트만두 주민들. 여행을 하면 사소한 것들 혹은 당연했던 것들에 감사를 하게 된다. 한국에서 당연하게 누리고,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감사해지기 시작한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다음 날, 포카라로 향하는 버스를 예약해야 했기에 아침 일찍 서둘렀다. 세수도 못하고 나왔다. 아! 세수를 못한 이유는 서둘러서가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려고 보니 녹물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믿고 있다. 전날 밤에 내가 세수할 때는 괜찮다가 아침이 되어서 녹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라고. 그래도 생수를 가지고 있어서 양치질은 할 수 있었다. 감사하다.

여행을 하면 사소한 것들 혹은 당연했던 것들에 감사를 하게 된다. 한국에서 당연하게 누리고,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감사해지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애초에 당연한 것은 없는 게 아닐까? 모든 것들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내 여행이 더 감사하다.

숙소를 나와 현지 여행사들을 돌아다니며 나름 뿌듯한 가격에 (700루피, 한화 약7,200원) 버스 티켓을 끊었다. 사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 가는 비행기도 있지만 나는 돈은 없고, 시간은 많고, 체력은 좋은 세계 여행자니까! 그렇게 7000원으로 10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중간에 휴게소도 들리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도 준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배고픈 상태로 도착한 포카라. 그런데 이상하게 엄청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내가 히말라야에 오른다고?’ 벅차올랐다. 이때의 감정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히말라야에 오르고 싶었던 이유는 별거 없다. 솔직히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도 않고, 많이 해보지도 않았으며,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세계 여행을 계획하면서 우연히 보게 된 여행자들의 사진 혹은 동영상 속의 표정을 보고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정상에서 지은 표정이 같았다.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마치 5억 개쯤 되어 보이는 감정이 교차하는 표정.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저런 표정을 지은 거지?’ 단순히 그게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곳이면 사람에게서 저런 복잡 미묘한 표정이 나올 수 있는 것인가.

그때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곳에 도착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오른 곳이기에 그런 표정이 나왔다는 것을.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코카콜라 vs 펩시. 아무리 찾아봐도 이 두 회사의 광고가 많은 이유를 알 수 없다. 다시 가서 주민들에게 물어 봐야지. (당시는 머릿속에 히말라야 밖에 없어서 몰랐다.)
코카콜라 vs 펩시. 아무리 찾아봐도 이 두 회사의 광고가 많은 이유를 알 수 없다. 다시 가서 주민들에게 물어 봐야지. (당시는 머릿속에 히말라야 밖에 없어서 몰랐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아래는 내가 히말라야를 다녀온 직후 개인 SNS에 올린 일기이다.

“여러분 세계 일주 하지 마세요. 집 나가면 고생입니다. 히말라야요? 미쳤어요?

7박 8일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요. 못 참고 한 번 씻었다가 머리 못 말려서 바로 열나고, 덕분에 고산병 올까봐 밤새 걱정하고, 고산병 약 먹으면 부작용으로 힘들고, 분명 올라가야 하는데 자꾸 내려가고, 내려가면 그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고, 걸으면 덥고 멈추면 춥고, 조심했는데 결국 감기 걸리고, 아침 8시부터 해 떨어지기 전까지 걷다가 근육통에 시달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근육통으로 자다가 깨고, 걷기 바쁘고, 힘들어서 사진도 제대로 못 찍고, 핸드폰은 아예 안 터지고, 와이파이도 돈 주고 사야 하는데 그거조차 안 터지기 일쑤고, 와이파이, 핸드폰 충전, 뜨거운 물 샤워, 마시는 물 등등 산 위에서 전부 다 사야하고, 이게 분명히 길이 아닌 것 같은데 걸어가야 하고, 걷고 있는데 뒤에 분이 위에서 돌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고, 눈이 쌓인 곳은 눈사태 일어날 수 있으니 빨리 걸으라고 하고, 정말 무섭고 높은 흔들다리를 5분 넘게 건너야 하고, 보기만 해도 토할 거 같은 끝없는 계단을 올라가야하고, 바람 불거나 발 헛디뎌 떨어질 거 같은 벼랑 끝도 걸어야 하고, 베이스캠프에서 밥 먹다가 정전이 될 때도 있고, 전기가 정해진 시간에만 들어오기도 하고, 아침엔 물이 얼어서 세수를 못할 수도 있고, 길에는 수많은 동물들의 오물이 있어서 잘못하면 밟게 되고, 올라갈 때는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고산병 때문에 두렵고, 밤에는 추위에 얼어 죽을까 봐 두렵고 (저는 잘 때 히트텍, 플리스 2개, 티셔츠, 경량 패딩, 마스크, 털모자, 바지 3개 입고, 침낭 2개에 이불 덮은 다음에 핫팩이랑 뜨거운 물 받은 물통 안고 잤습니다), 난방시설은 당연히 없고, 높이 올라갈수록 나무 난로조차 없어요. 그냥 이건 미친 짓 이예요. 이 악물고 참다 참다 결국 눈물이 터진 날도 있어요. 가장 많이 걸은 날은 4만 보 넘게 걸었고, 271층 오른 날도 있네요.

히말라야는 제가 태어나서 한 선택 중에 가장 잘못된 선택이었어요. 어느 정도냐고요? 지금 싫어지는 친구 있으세요? 그럼 그 친구 데리고 가세요. 절교 당할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히말라야는 제가 태어나서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기도 합니다. 돌아간다면 저는 다시 이 잘못된 선택을 할 겁니다.

말로 다 표현하기도 힘든 히말라야 트래킹. 오늘 하루는 그냥 푹 쉬어야지. 진짜 수고했다. 진짜 힘들었다!!!!!!!!!! 진짜 최고!!!!!!!!!!”

 

일기 속 수많은 느낌표가 그때의 감정을 말해 주는 것 같아서 다시 읽는 지금 이 순간도 울컥한다. 내 여행의 많은 것들을 변화 시켜놓은 히말라야 트래킹. 히말라야 원정기.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렇기에 삶에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하루에 얼마나 집중해야 하는지, 사실 이런 깨달음으로도 그때의 감정은 다 전할 수가 없다. 그냥 최고였다.

(너무 힘들게 오른 곳이기에 한 편으로 담을 수가 없었다. ‘여기, 주나’ 히말라야 원정기는 4편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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