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남명천화상송증도가,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의 탄생
[신간] 남명천화상송증도가,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의 탄생
  • 이주리 기자
  • 승인 2020.01.14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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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국 지음/ 김영사
ⓒ위클리서울
ⓒ위클리서울/김영사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한국문화유산연구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던 박상국 박사는 어느 날, 한 스님으로부터 한 권의 고서 감정을 부탁받는다. 바로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공인본이었다. 이미 문화재청으로부터 목판본으로 판명되어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여러 판본과의 대조를 통해 금속활자본임을 확신한 스님이 정통한 불교서지학자였던 저자에게 검토해주기를 재청한 것이다. 오랜 시간 이를 면밀히 연구한 저자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금속활자본이 확실했던 것이다. 결국 학자로서 금속활자본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 남은 역사적 사명이라 생각한 저자는 연구 과정과 결과를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의 탄생'(김영사 刊)은 공인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금속활자본임을 밝히는 최초의 증명기다. 이 책은 동일본이라고 알려져 함께 보물로 지정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공인본과 삼성본이 사실은 다른 판본이며 공인본은 금속활자본, 삼성본은 목판본이자 후쇄본임을 다양한 비교 연구를 통해 증명한다. 가장 논란이 된 ‘최이의 지문’ 재검토부터 금속활자본과 목판본의 특징과 차이에 대한 분석, 우리나라 인쇄술과 활자에 관한 깊이 있는 고찰까지. 치밀한 역사적ㆍ학문적 고증, 오랫동안 집요한 추적 끝에 그 실체를 낱낱이 밝혀냈다.

지난 2019년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금속활자에 대해 “금속활자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며, 문화재 심의과정에도 명쾌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재검토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열렸다.

공인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삼성본과 달리 목판번각본이 아니며, 더구나 초기의 금속 활자본으로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정식 문화재로 공인되면 이번에 이 책 출판은 세계 인쇄 문화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사건이 된다. 세계 인쇄술의 역사가 뒤바뀌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써 이 책이 고려시대 금속활자 연구에 혁명적 전환점이 되어줄 것이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당나라 현각이 중국 선종의 6조인 혜능을 직접 배알한 후 크게 깨달은 심정을 서술한 《증도가》에, 송나라 남명선사 법천(法泉)이 계송(繼頌)을 붙여 내용을 알기 쉽게 밝힌 책이다. 현존하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모두 10여 종. 그중 4책이 동일본으로 알려졌다.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 중인 삼성본(보물 제758-1호), 공인박물관에 소장 중인 공인본(보물 제758-2호), 대구 스님 소장본(문화재 신청 중), 개인 소장본이 그것이다. 그러나 공인본은 금속활자본이고, 다른 책은 금속활자본을 번각한 각기 다른 판본이다.

이 책은 금속활자본인 공인본과 목판본인 삼성본을 비교ㆍ분석해서 공인본이 금속활자본임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먼저 1장에서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어떤 책인지,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판본이 얼마나 있는지를 모두 조사하여 분석했다.

2장에서는 그동안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왜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목판본으로 판명됐는지 그 과정과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가장 논란이 된 ‘최이의 지문’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에 대한 재검토 과정도 모두 담았다.

3장에서는 동일한 책으로 지정된 공인본과 삼성본이 얼마나 다른지 판면을 비교하는 방법으로 차이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너덜이, 획의 탈락, 광곽, 보사(補寫), 활자의 움직임, 뒤집힌 글자, 활자의 높낮이에 의한 농담의 차이 등으로 세분화하여 다각도로 공인본의 특징을 면밀히 살폈다.

4장에서는 공인본의 역사적 위치가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우리나라 인쇄술의 역사를 개괄했다. 특히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걸쳐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미국 등 외국 학자들에 의해 한국의 금속활자가 연구되면서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국가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우수한 문화민족이라는 자존감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외국인들에 의해 형성된 금속활자 종주국으로서의 인식에만 급급했다. 저자는 고려가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지방의 사찰이 중심이 되어 간헐적으로 몇 차례 서적을 간행했을 뿐이며, 그마저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어서 다시 목판 인쇄로 회귀했다고 일침한다.

마지막 부록에는 공인본의 한글 완역과 영인본 전문을 실어, 이 책이 낯선 독자들이 그 내용을 파악하고 금속활자본의 면면을 오롯이 살펴볼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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