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세상 끝 동물원
[신간] 세상 끝 동물원
  • 정다은 기자
  • 승인 2020.01.1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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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피니티 코나 지음/ 유현경 옮김/ 문학동네
ⓒ위클리서울/ 문학동네

[위클리서울=정다은 기자]  '세상 끝 동물원'은 미국 작가 어피니티 코나의 두번째 장편소설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강요당한 쌍둥이 소녀의 눈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전쟁이 끝나고도 지속되는 혼란,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강인한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어피니티 코나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나치의 야욕이 전면적으로 드러나기 전 온 가족이 고국을 탈출해 절멸정책을 피했고 조부가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배경에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그 시기에 관심을 가졌다. 어린 시절부터 프리모 레비와 파울 첼란 등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가의 책을 폭넓게 읽던 코나를 유독 사로잡은 것은 우생학 연구에 골몰하던 나치 의사 요제프 멩겔레와 그의 실험대상이 된 쌍둥이들이었다.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진 멩겔레는 나치가 저지른 잔학행위의 상징 같은 인물로 2차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유전적으로 특이한 아이들, 특히 일란성쌍둥이를 대상으로 극악무도한 생체실험을 자행했고, 그의 실험실을 거쳐간 약 1500쌍의 쌍둥이 중 전쟁 후까지 살아남은 인원은 2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생존자들의 증언이 담긴 논픽션 『불길의 아이들』을 읽은 코나는 생체실험의 공포에도 살아남기로 굳게 다짐한 쌍둥이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고, 십여 년의 조사와 집필을 거쳐 2016년 『세상 끝 동물원』을 발표했다.

인간 역사의 가장 어두운 순간을 견뎌낸 이들의 강렬한 이야기는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출간 즉시 전 세계 24개국에 판권이 팔리고, “무엇보다 잊기 힘든 것은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을 그리면서도 많은 수감자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극도로 처참한 고통에 마주해서도 희망과 친절한 마음을 지키는 의지를 포착한 필력이다”(<뉴욕 타임스>) “연민과 잔인함,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적인 소설”(<가디언>) “모든 문장이 중요하다. 무지막지하게 아름다운 책”(<퍼블리셔스 위클리>) 등의 찬사를 받았으며, 그해 <뉴욕 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퍼블리셔스 위클리> <엘르>, 아마존 ‘올해 최고의 책’, 반스&노블 ‘올해의 발견’에 이름을 올렸다.

펄과 스타샤의 시점을 오가며 그려지는 소설 속 세계는 완전한 암흑이다. 의료기술과 약물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해치고 죽일 목적으로 이용되는 그곳에서, 멩겔레는 서로 긴밀하게 유대하는 일란성쌍둥이가 분리를 경험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펄을 가둔 채 실험의 강도를 높이고 스타샤는 통제집단이 되어 자매의 통증에 민감하게 공명한다. 매순간 지금이 최악이라 생각하지만 더욱 참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고, 고통은 죽어서도 떨쳐지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멩겔레라는 악의 화신이 아니라 그의 학대를 견디며 분투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의지에 온전히 집중한다. 펄과 스타샤는 속눈썹과 점의 개수까지 집계되는 물건 취급을 받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버리지 않고 파괴된 세상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동물원을 탈출할 사람은 서로이길 바라고, 그 바람이 좌절되었을 때조차 서로 사랑했던 사람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끈질기게 남긴다. 그 어떤 인간적인 가치도 발 들일 틈이 없는 수용소에서 선의를 베푸는 주변인들 역시 어둠 속에서 희미하지만 쉼없이 반짝이는 빛처럼 힘이 되어준다. 어디서든 나타나 곤경에 처한 친구를 구해주고 수용소의 식량을 훔쳐 허기를 달래는 법을 알려주는 씩씩한 알비노 소녀 브루나, 아이들이 좀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신상정보를 조작하는 일명 쌍둥이아빠, 반쪽을 잃어버린 펄과 스타샤의 옆을 끝까지 지키는 페테르와 펠릭스, 본인도 학대를 당하고 멩겔레의 조수 역할을 강요받으면서도 남몰래 수감자들을 챙기는 유대인 의사 미리. 해방 후 누구 하나 쉽사리 믿기 어려운 혼란 속에서도 이들은 예기치 못한 호의에 위안을 얻고 같은 처지의 생존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아우슈비츠의 모든 기억이 지워지길 바라는 한편 그 시절에 만난 따스한 선의만은 서로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펄과 스타샤는 어린 시절을 빼앗기고 성장을 허락받지 못했지만 이제 망가진 곳이 재건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쌓아올리기를, 끔찍한 시간을 끝내 헤쳐나오지 못한 이들이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크나큰 공포에 마주해서도 끝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 『세상 끝 동물원』은 아무리 커다란 악도 꺾어버릴 수 없는 강인함의 증거로, 가장 추악한 범죄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소설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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