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이런 엄마 마음 알 리 없다
아이는 이런 엄마 마음 알 리 없다
  • 류지연 기자
  • 승인 2020.01.24 12: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딸아이의 학교에서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요리교실이 있다는 알림을 받았다. 그간은 월~금 오전시간을 종일 소주대학교에 묶여있느라 웬만한 학교 행사는 건너뛰고 반드시 가야 하는 행사들만 얼굴을 내밀곤 했다. 드디어 소주대도 방학에 들어갔으니 오전 시간 여유가 넘친다. 춘절맞이 중국 전통음식을 만든다기에 재빨리 위챗으로 참가신청을 한다.

화요일 오전 2시간 동안, 빙탕후루(冰糖葫芦, 산사자·해당화 열매 등을 꼬챙이에 꿰어 설탕물·엿 등을 발라 굳힌 것)와 중국 떡을 만든다고 한다. 공짜인 줄 알았는데 48위안(한화 약 8200원)이라는 참가비가 있다는 게 복병이긴 하지만, 2시간을 알차게 보내는데 8000원 정도면 괜찮다는 계산이 나온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보기만 해도 입가에 침이 고이는 빙탕후루와, 여덟 가지 보물(?)을 얹어 만든다는 중국 전통 떡 – 아쉽게도 여덟 가지 보물이 정확히 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드디어 대망의 화요일, 그러나 날씨가 영 요상하다. 간만에 대기 질 지수(AQI: Air Quality Index)가 200을 넘어 미세먼지 앱에 보라색 바탕에 방독면을 낀 얼굴이 등장한다. 아이 등교시간에 집 밖에서 미세먼지 측정기를 켜보니 초미세는 100중반, 미세는 200~300을 넘나든다. 외출이 매우 망설여지지만 한번은 꼭 먹어보고 싶었던 빙탕후루(네이버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동명의 웹툰을 읽을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존재, 길가에서 종종 팔지만 과일을 안 씻고 만든다는 속설에 돈이 있어도 사 먹을 수 없는 존재)를 향한 일념으로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고 띠디에 오른다. 이런 날에도 띠디 운전사는 창문을 열고 달리지만 중국 살이 7개월이 되니 그러려니 싶다.

학교에 도착해 주니어스쿨 가사실로 향한다. 선착순 15명을 모집했는데 아직 절반 정도의 엄마들만 와 있다. 대체로 아는 사이들인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외투를 벗고 앞치마를 두르며 교실을 둘러본다. 딸아이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보니 요즘 한국의 초중고교 가사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없지만 케케묵은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굉장히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15명이 모두 둘러서도 넉넉한 크기의 교실 중앙 아일랜드 식탁, 교실 3면을 배치된 준비대에는 위아래 넉넉한 수납장, 그 안에 조리도구와 식기류가 가득 찼다. 개수대도 여러 군데라 빈틈이 없다. 개수대에 세제와 수세미가 없는 게 학교 가사실답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런 곳에서 초등학생 때부터(딸아이 국제학교의 주니어 스쿨은 3학년, 우리 나이로는 만 7세부터 해당한다.) 남녀 나누지 않고 요리를 배운다면 요리도 어엿한 하나의 과목이 될 것 같다.

슬슬 시간이 되어 옆에 선 엄마들과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실습에 들어간다. 그런데 생각보다 조리과정이 매우 간단하다. 떡의 경우 하룻밤 동안 불린 쌀로 지은 밥이랑, 안에 넣는 단팥소를 미리 선생님(두 명의 중국인 학부모가 자원봉사)이 다 준비해놓았다. 우리들이 할 일이라곤 말린 대추를 썰어서, 다른 말린 과일들과 함께 제일 위쪽에 장식하고 밥을 두 덩이로 나눠 그 사이에 단팥소를 넣는 것뿐이다. 대추든, 견과류든, 말린 과일이든 본인 취향에 맞춰 사용하면 된다고 한다. 정해진 8가지 ‘보물’이 있다기보다는 적당히 알아서 화려하게 장식하면 되는 듯하다.

고대하던 두 번째 음식, 빙탕후루다. 그런데 달콤한 과일을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길에서는 주로 딸기, 사과 등을 많이 본 것 같다.) 산사자(산사나무 열매)를 사용하는 게 전통 방식이란다. 생전 처음 보는 열매이기에 어떤 맛인가 싶어 살짝 깨물어 보았는데, 생으로는 도저히 먹지 못할 신 맛이다. 아무리 겉에 설탕옷을 입힌다고 해도 속까지는 설탕이 스며들지 않을 텐데, 과연 만든 후에 먹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250g의 설탕에 70g의 물을 넣고 10~15ml 정도의 시럽을 추가해 160도에서 10분간 끓인다는 시럽옷을 기다렸다가 꼬챙이에 가지런히 꿴 산사자를 넣고 빙글빙글 돌려 시럽옷이 고루 묻도록 한다. 남은 것은 시럽옷이 잘 굳을 때까지 기다리는 일. 이 역시 방법은 간단하지만 집에서 온도를 맞춰 시럽옷을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을 것 같아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빙탕후루가 될 것 같다.

다 같이 만든 작품을 모아놓고 사진을 찍으니 제법 화려하다. 요리교실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열린다는데 기회가 되면 또 참여하고 싶다.

 

찌기 전의 떡과 시럽옷을 입기 전의 산사자 꼬치
찌기 전의 떡과 시럽옷을 입기 전의 산사자 꼬치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위클리서울/ (사진 제공: 학부모 Nefis Hastemir)
ⓒ위클리서울/ (사진 제공: 학부모 Nefis Hastemir)
요리 교실의 이모저모(사진 제공: 학부모 Nefis Hastemir)
요리 교실의 이모저모 ⓒ위클리서울/ (사진 제공: 학부모 Nefis Hastemir)

그 주 목요일은 학교에서 춘절 행사가 있는 날이다. 아이들은 전통의상이나 빨간 옷을 입고 등교하면 된다길래 치파오를 입힐까 하다가 우리나라도 설날에 입는 전통의상이 있는데 굳이 중국옷을 입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 한복을 입혀 보낸다. 학부모와 함께하는 행사가 오전 9시부터라 아이를 먼저 셔틀버스에 태워 보낸 후 부지런히 학교로 향한다. 도착하니 춘절 장식부터 아이들, 학부모들의 옷까지 온통 빨간색이다. 중국인들의 빨간색 사랑은 유난해서 어떤 행사든 빨간색이 빠지지 않는데, 빨간색이 많이 모이면 촌스러워 보이는 건 나만의 관점일까?

선생님들의 멋진 큰 북 공연을 시작으로 아이들이 준비한 춘절 노래, 사자 춤, 전통 무예 등이 이어진다. 학부모가 준비한 비파 연주와 세뱃돈 봉투(红包, hóngbāo) 뿌리기 행사도 있다. 교실로 올라가니 춘절 장식인 종이공예와 탈 색칠하기 등의 활동이 준비되어 있다. 벼룩시장도 있다기에 현금으로 100위안을 준비해왔는데 쿠폰으로 바꿔야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아이에게 바꿔오도록 했다. 바꾸고 나니 문득 쿠폰을 다 못 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에게 남은 쿠폰은 다시 돈으로 바꿔주는지 물어봤더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작은 부분이지만 이런 데서 (국제학교이지만) 중국화된 학교의 미숙함을 느낀다. 가령 벼룩시장에 먹거리를 파는 집이 많았는데 홀에 쓰레기통은 보이지 않는 등 종종 체계적이지 못한 학교 운영에 실망하곤 한다.

아이는 이런 엄마 마음을 알 리가 없다. 사탕공예부터 시작해서 만두집, 솜사탕집, 고리 던지기까지 긴 줄도 마다않고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먹고, 쓰기에 여념이 없다. 고리 던지기는 상품으로 작은 짝퉁 레고를 획득하곤 기뻐한다.

행사는 하교 시간까지 이어졌지만 점심 즈음 먼저 돌아오면서 더 놀고 올 아이에게 남은 돈은 바꿔주는지 한 번 더 물어보라 했다. 집에 온 아이는 안 바꿔주니 다 쓰라고 해서 고리 던지기를 한 번 더 하고, 네일 스티커를 붙이고, 황금 잉어 사탕도 하나 사 먹었단다. 강제로 100위안을 수금당한 느낌이다.

 

선생님들의 멋진 북 연주와, 봉투를 뿌리는 학부형에게 벌떼같이 몰려드는 아이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선생님들의 멋진 북 연주와, 봉투를 뿌리는 학부형에게 벌떼같이 몰려드는 아이들
선생님들의 멋진 북 연주와, 봉투를 뿌리는 학부형에게 벌떼같이 몰려드는 아이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교실에 놓인 종이공예 재료들, 가운데 꽃나무에 걸린 술병장식도 전통 춘절 장식인 듯하다.
교실에 놓인 종이공예 재료들, 가운데 꽃나무에 걸린 술병장식도 전통 춘절 장식인 듯하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다음날 금요일. 춘절을 앞둔 마지막 등교일이자, 학교의 교장 선생님 환송회가 있는 날이다. 오랫동안 근무했던 교장 선생님이 홍콩의 다른 국제학교로 떠나고, 교감 선생님이 그 뒤를 이어 교장이 된다. 오래 근무해서 그런지 혹은 서양 방식인지, 교장선생님의 가족까지 모두 학교 커뮤니티에 소개할 만큼 교직원 및 오래된 학부모들과 사이가 돈독한 것 같았다. 학교 마라톤 행사에 참석했을 때 직접 호루라기를 불며 준비체조를 하던 모습이나, 춘절 행사 때 얼굴에 쥐 수염과 빨간 코를 그리고 쥐 머리띠까지 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작년 입학 오리엔테이션 날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기에 작별인사를 위해 참석할까 했으나 학교 방문은 한 주에 두 번으로 족하다는 생각에 마음만 보냈다. 음악 선생님이 Queen의 노래 ‘We will rock you’를 교장선생님의 이름인 ‘Hughes’를 넣어 개사했다는 ‘We will rock Hughes’를 아이가 두 주 동안 집에서 불러제끼는 걸 왕왕 들었기에 환송회가 어떤 분위기일지 족히 짐작이 갔다. 하교 후 들으니 교감 선생님이 오랜 친구가 떠나는 게 슬프다며 울었다고 한다. 교장 선생님은 학부모들에게 단체 문자도 보냈다. 본인이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이메일 주소를 남겼다. 특별한 인연은 없지만 ‘이별’이라는 글자의 무게가 가슴에 조금 얹힌다.

학교 행사로 분주한 한 주를 보내고 나니 학부모 역할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야 행사 당일에만 손님으로 참석했지만 적극적인 학부모들을 보니 미리 자원봉사를 신청해서 공연, 판매, 보조 등 여러 가지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적극성과 소심함 사이에서 나를 어디에 둘지 고민이 많아진다. 

<류지연 님은 현재 중국 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