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사스 악몽

[위클리서울=김범석 기자]

중국발 ‘우한 폐렴’ 주의보가 재계에도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국내에까지 진입하면서 산업계 전반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국 현지에 중국 현지에 생산법인을 두고 있는 제조업체들을 비롯 면세·여행·항공업계 등도 직격탄을 맞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이 더욱 큰 장애물을 만난 셈이다. ‘우한 폐렴’의 공포가 드리우고 있는 재계의 상황을 살펴봤다.

 

ⓒ위클리서울/ 그래픽=이주리 기자

연초부터 ‘우한 폐렴’의 그림자가 재계를 뒤덮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현지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SK종합화학과 포스코, 기아차, LG디스플레이, 삼성전자 등은 물론 주요 협력사들도 속속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지 주재 직원들을 철수시키거나 출장을 최소화 하는 등 다양한 방안이 진행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현지 거래선과의 미팅 등도 온라인으로 대체하거나 연기하는 상황이 속출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같은 추세라면 우한 이외 지역으로의 출장도 어렵지 않을까 한다”며 “현재는 수시로 상황을 받으며 상황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은 가급적 중국으로의 출장도 최소화할 것이라는 후문이다.

이미 재계는 우한 폐렴의 확산에 따라 비상 대응 체제에 돌입한 상황이다. 우한 지역에 공장을 두고 있는 SK종합화학은 현지 주재원 10여명을 모두 귀국시키고 우한 출장 '금지령'을 내렸다.

이와 함께 현지 임직원들에게도 마스크와 응급 키트를 제공하고 단체 조회 활동 금지와 식당 폐쇄 조치를 취한 상황이다.

역시 우한에 공장이 있는 포스코도 현지 출장을 중단했고 이 밖의 지역으로도 현업 부서 자체 판단으로 출장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후베이성 이외 지역에 거점을 두고 있는 기업들도 당분간은 ‘최대한 자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국 장쑤성 옌청에 기아차 합작법인 공장을 운영하는 현대차그룹은 설 연휴 기간에 우한 폐렴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보고 각별히 유의하라는 주의를 통보했다.
 

‘비상 연락망’ 공유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와 기아차 외에도 중국에 진출한 계열사 전체에 상황 발생에 대비한 비상연락망 공유 등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향후 상황 악화에 따른 대응 시나리오도 마련했다는게 관계자의 말이다.

광저우 공장 본격 양산을 준비 중인 LG디스플레이는 중국 방문 시와 방문 전후 문자 신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감염 예방 행동요령 등도 안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로의 출장이 잦은 LG전자는 1월 중순부터 우한 지역 출장을 금지했고 출장등록시스템과 이메일, 사내 게시판 등으로 중국 전역 출장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톈진, 시안 등 지역에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는 아직까지는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자체 점검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업계에선 우한 폐렴으로 그나마 살아나고 있던 중국과의 거래가 다시 위축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우한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중국과의 거래에 있어 조심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는 만큼 거래선 관리가 중요하다는 분위기다.

우한 폐렴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될 경우 2020년 지구촌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오는 3월 24일부터 시작할 예정인 중국의 '보아오 포럼'이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

보아오 포럼은 중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주요 정·재계 인사들과 인맥을 쌓을 수 있는 아시아 최대 재계 행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국내 주요 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지 ‘소비심리’ 위축

최근 기업들이 우한 폐렴과 관련 취하고 있는 조치들은 지난 2003년 중국 광둥에서 발병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때와 양상이 비슷하다.

외교부는 지난 25일 중국 우한시를 포함, 후베이성 전역에 대한 여행경보를 3단계 ‘철수 권고’로 상향 조정했다.

중국에 현지 법인 및 공장이 있는 기업들은 우한 출장 전면 금지를 비롯 중국 출장 자제령을 속속 내리고 있다. 일부 기업은 구내식당 사용을 금지하고 도시락을 공수해 식사를 해결하는 모습도 나오고 있다.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시안)와 SK하이닉스(충칭)는 중국 지역 담당자들이 휴일을 반납하고 연휴기간 내내 대응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중국 정부는 지난 27일 춘제 연휴 기간을 이달 30일까지에서 다음달 2일로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연휴 기간에 공장 가동을 멈추는 자동차 업계는 공장 가동 시기가 예상보다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춘제 기간 동안 공장 가동을 멈춘 뒤 정상 가동할 예정이었으나 춘제 연휴가 연장되며 향후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한시름을 놓았던 재계는 눈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 다시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로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중국 소비 시장도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 정부의 향후 대응 방향에 따라 추가 주재원 철수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국내 기업의 중국 수출 비중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중국을 상대로 한 수출액은 한국의 전체 수출액 중 26%를 차지했다. 2위가 미국이었다. 대 미국 수출은 전체 수출액 중 12%에 그쳤다.

재계에선 일단 화장품과 의류 등 중국 관련 소비주의 투자 심리 위축 가능성이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급성호흡기 증후군(SARS・사스) 사례에서 보듯 우한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후폭풍은 불가피해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지난 15일 발표한 ’중국발 원인 불명 폐렴 현황 및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유행한 사스는 한국의 연간 경제 성장률을 0.25% 하락시킨 것으로 분석했다.

'우한 폐렴'에 대한 공포는 미국 투자자들의 마음도 얼어붙게 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고, 안전자산으로 평가되는 국채와 금을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글로벌 경제에 미칠 영향과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우한 폐렴’의 공포에서 언제쯤 회복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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