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0.02.11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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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똑같은 자식이라도 마음이 더 쓰이는 아이가 있다. 하지만 부모는 균형과 중심을 잡고 아이들을 대해야만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만큼 다른 한쪽의 결핍이 결국 가족 모두의 상처로 돌아올 수 있다.
똑같은 자식이라도 마음이 더 쓰이는 아이가 있다. 하지만 부모는 균형과 중심을 잡고 아이들을 대해야만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만큼 다른 한쪽의 결핍이 결국 가족 모두의 상처로 돌아올 수 있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사당에서 아는 동생을 만났다.

알고 지낸지는 2년 정도 되고 SNS를 통해 만난 사이다. 그 친구의 글을 보고 너무 좋아 내가 먼저 친구 신청을 했고 서로의 글에 ‘좋아요’를 달아주는 정도의 사이였다. 그러다 어느 날 내 글에 그녀가 댓글을 남겼다. ‘글이 참 좋아요’라고. 나 또한 그녀의 글이 좋다고 했다. 서로의 글을 좋아하는 사이에서 조금 더 발전하게 된 것은 오프라인 모임이 있고 나서였다. 예전에 정치부 기자였던 그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그냥 평범한 스토리다. 하지만 그 이후에 그녀에게 일어난 일은 예상을 벗어났다. 늦게나마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지게 됐다. 그것도 아들과 딸을 한꺼번에 쌍둥이로 낳아 일타 쌍피의 대박을 쳤다. 모두에게 축복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마땅한 일이 마땅치 못한 일이 되어버린 것은 쌍둥이 중에 아들이 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이후였다.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일 중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사건을 상 중 하로 나누어 봤을 때 그 중에 최고는 자식에 관계된 일이다. 부모나 형제, 그리고 친구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 가슴 아프고 힘들게 할 수는 있지만 그 대상이 자식일 경우는 고통과 충격의 정도가 남다르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것 보다 훨씬 더 크다. 그건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감히 이해한다고 말하기 힘든 아픔이다.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처음엔 ‘왜 나에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리고 아주 길고 느리고 농밀하게 그 고통의 시간이 흘러간다. 거기에는 눈물과 원망과 미움과 니탓과 내탓이 난무한다. 그런 광란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현실을 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 내가 노력하면 아이를 고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병원을 찾아다니고 아이의 장애에 관계되는 책을 읽고 먼저 경험해본 사람들을 찾아가 조언과 정보를 구한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이 상황을 바꿀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마음먹는다. 이때 아내에게 가장 의지가 되어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이다. 서로의 발 한 짝씩을 묶고 마음 맞춰 달려 나가야 하는 출발선에 선 거다.

하지만 내가 달릴 준비를 하고 서 있을 때 남편도 한 마음으로 발을 맞춰주면 좋으련만 내 맘 같지 않다. 달리지 않겠다고 버티거나 묶어놓은 끈을 풀며 같이 달리기를 거부하거나 혼자 앞으로 앞서가 버리기도 한다. 다른 부모들과 아이들은 이미 저 앞에서 신나게 달려 나가고 있는데 출발조차 못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때부터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된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것 같은 느낌. 희망이 없는 섬에 아이와 단 둘이 버려져 시간들이 의미 없게 고여 썩어간다. 숨이 막히고 모든 게 다 싫어지고 그냥 이쯤에서 포기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눈앞에 꼬물거리는 아이 때문에 엄마는 죽을 수도 없다. 무엇이라도 붙잡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울고불고 매달리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엄마는 다시 출발선에 설 수 밖에 없다. 더 이상 남편의 발 한 짝을 끌어다 묶고 같이 뛰자고 말하지 않는다. 적이 아닌 동지가 되어 남편 스스로 같이 달리고 앞장서서 아이와 아내의 손을 끌고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여기까지의 과정이 가장 힘들다. 이 모든 상황은 누구 탓도 아니며 누구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지만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장애는 치료를 받아 완치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때문에 욕심을 낼수록 지치고 절망하고 좌절하게 된다. 적절한 치료와 학습을 통해 아이의 성장을 돕고 더디게 나아가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남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마음을 써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그 에너지를 산에 들어가 도 닦는데 쓴다면 신선이 되고도 남을 정도이다. 그 힘든 일을 부모는 해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면 열두 번도 더 때려치워버릴 일을 자식을 위해서니까 해내고 버틴다.

“언니. 말도 못 해요. 그런데 그걸 겪을 만큼 겪고 나니까 어느 순간 알게 되더라고요. 남편하고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 아이들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걸요. 그래서 이젠 맛있는 게 있으면 남편하고 내가 먼저 먹어요. 자식한테 무조건 다 해주고 자식만 위해서 사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내가 힘들면 비싼 돈 들여서라도 심리상담 같은 거도 받고 하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돼요. 아이들도 그런 부모를 보면서 자라야 더 건강하게 자립적으로 자라날 수 있고요. 그런 거 같아요 나는.”

그녀의 이야기는 하나에서 열 까지 모두 맞다. 용감하고 씩씩하고 현명하게 자신이 터득한 방식으로 중심을 잡고 서있었다. 나는 그러지 못했는데 말이다. 두 살 터울의 아들 둘을 키우며 나는 참 많은 시간을 불행하게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마음이었던 거 같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돼?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상황들이 다 밉고 싫고 원망스러웠다. 남편도 적이고 아이도 내 숨통을 옥죄는 원수처럼 느껴졌다. 첫 아이를 27살에 낳았다. 그때의 나는 아직 어렸고 부모가 된다는 게 뭔지도 몰랐다. 집에서 키우던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젖만 먹여놓으면 새근새근 잘 자고 잘 먹고 눈 뜨면 방긋방긋 웃는 그런 아가를 상상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모든 평화는 깨지고 피 튀기는 전쟁이 시작됐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다고 것은 그 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다고 것은 그 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같은 부모에게서 똑같은 모습으로 태어난 쌍둥이도 결국은 완전히 다른 인격체이다.
같은 부모에게서 똑같은 모습으로 태어난 쌍둥이도 결국은 완전히 다른 인격체이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미얀마의 어느 화가가 그린 _모성_이라는 작품.
미얀마의 어느 화가가 그린 '모성'이라는 작품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임신 8개월 즈음에 교통사고가 있었다. 남편과 택시를 타고 가는데 앞차를 제대로 못 본 택시 기사가 접촉사고를 냈다. 범퍼가 떨어져 나갈 정도였으니 충격이 꽤나 컸다. 하지만 택시를 몰던 분이 고령의 운전자였고 무슨 사연이 있는지 보험처리를 꺼려했다. 우리에게 자신이 가진 돈이 이것뿐인데 한번만 눈감아 달라고 했다. 남편도 나도 그때는 세상 물정을 몰랐던 때이기도 하고 그 분의 처지가 안타까워 보였다. 그래서 돈을 받았다. 30만원. 하지만 집에 돌아와 새벽에 배가 뭉치고 너무 아파 병원 응급실에 갔다. 약간의 하혈이 있었으나 초음파 상으로는 크게 문제 있어 보이지 않는다며 며칠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아이가 배 속에서 몸을 뒤척이며 발길질하는 게 느껴졌지만 곧 괜찮아지겠지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이가 태어났다.

통골반이라 자연 분만이 힘들다하여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 며칠 간 병원에서 몸조리를 한 다음 퇴원을 해서 시댁으로 왔다. 친정 언니가 비슷한 시기에 조카를 낳아 엄마가 몸조리를 해주고 있어서 나는 시댁으로 올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편하게 마음을 써준다 해도 시댁이 편할 리가 없었다. 거기다 아이는 잠시도 잠을 자지 않고 울어댔다. 안고 서있으면 그나마 잠시 잠이 들었다가 자리에 눕히려고 하면 그 연하고 조그만 손으로 나를 붙들고 늘어졌다. 나는 생각했다. 아기들은 모두 이런 거겠지?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힘든 나에게 한 마디씩 던지는 말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이렇게 잠을 안 자는 애는 처음 봤네. 이맘때는 젖만 배불리 먹여 놓으면 하루 종일 잠만 자는데. 아기가 너무 예민한 거 같아. 친정 엄마에게 물어보니 조카는 먹고 자고 싸고 먹고 목욕 시켜 놓으면 밤새 깨지 않고 잔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불안해졌다. 우리 아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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