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다시, 새롭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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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리 기자
  • 승인 2020.02.13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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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그로비에 지음/ 주은정 옮김/ 아트북스
ⓒ위클리서울/아트북스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위대한 미술 작품은 관람자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 심상하게 보고 지나칠 수 없도록, 시선을 잡아채고 발길을 잡아끈다.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일까? 미술사라는 학문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론을 써왔다. 예술가 개인에 집중해 그의 성장 배경과 그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 교육이 그의 예술세계를 이루었음을 보여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예술 바깥의 모든 논의는 배제한 채 형식적인 요소만으로 그 위대함을 평가하기도 했다. 또는 시대별로 공통된 흐름을 묶어 ‘-주의’의 연대기로 설명되는 미술사가 제시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예술 작품을 보는 방식은 기존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기원전에 제작된 석부조 작품부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2010년 작 「예술가가 여기 있다」까지, 지은이는 긴 세월에서 건져 올린 57점의 예술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이 명작들에는 ‘생경함’이 있다는 것이다.

‘생경함’이란 여러 번 보고 또 보면 익숙해지고 마는 그런 종류의 새로움이 아니다. 오히려 작품이 제작된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살아남는 강력한 무엇이다. 뛰어난 작품에는 반드시 고갈되지 않는 생경함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 세부, 특징이 있다. 이것이 없으면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마음을 울리는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에 명작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지은이는 지난한 시간과 반복된 노출에도 불구하고 마치 처음 보는 듯한 생경함을 간직한 것이 ‘명작의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하며, 바로 그런 조건을 갖춘 작품을 이 책에 선별해 소개한다.

책 속에서 생경함은 ‘눈고리’라는 단어로 설명된다. 이 책에서 ‘눈고리’라고 번역한 ‘eye-hook’은 본래 밧줄·쇠사슬 따위의 끝의 고리에 달린 갈고리를 뜻한다. 기원전 4만 년 전에 제작된 상아 조각인 「홀레 펠스의 비너스」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여성상으로 이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는 무척 도드라지게 표현됐지만 정작 머리는 없다.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는 대신 소유자가 목걸이로 착용할 수 있도록 고리가 붙어 있다. 결국 이 조각상을 목에 걸면 소유자의 머리가 조각상의 머리를 대신하게 되는 셈이다. 이 작품에 생경함을 부여하는 이 고리에 착안하여 지은이는 이후 소개하는 작품에서 생경함을 부여하는 요소이자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요소를 눈고리라고 지칭한다. 모든 명작에는 거부할 수 없이 관람자의 눈을 잡아채는 ‘눈고리’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눈고리는 한눈에 파악되지 않을 수도 있고 작품에서 차지하는 물리적 존재감이 미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작에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도 매혹시키는 요소가 반드시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요소, 즉 눈고리는 아무리 미미해 보여도 그것이 없다고 가정하면 작품 전체가 힘을 잃고 마는 놀라운 위력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명작이 품은 위대함은 바로 언뜻 간과하기 쉬운 디테일, ‘눈고리’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날카로운 눈으로 쉬이 지나치기 쉬운 명작의 비밀을 독자의 눈앞에 펼쳐놓으며 이 작은 세부 사항을 깊이 있게 읽어낸다. 그리하여 작품을 새롭게 읽을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마련되고, ‘생경함’의 미술사가 새로이 성립하게 된다.

이런 눈고리를 통해 미처 몰랐던 작품의 숨은 의미를 알게 되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재미다. 예를 들어 진시황의 병마용에서 눈고리는 병사들의 ‘귀’에 있다. 7000점에 이르는 테라코타상은 그 어마어마한 규모 때문에 대규모 제작 라인에서 부품을 조립함으로써 만들어졌으리라고 추측되었으나, 2014년의 런던 고고학자들의 연구 결과, 단 하나의 귀도 똑같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실재했던 인물과 같은 유일무이함을 보여주는 귀가 병마용의 위대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의 눈고리는 성모마리아 뒤쪽으로 작게 난 격자창이다. 그림의 소실점이 위치하기도 한 이 작은 창은 현실과 작품 세계, 성모의 순결함과 예수 잉태, 영적인 순수성을 상징하는 복잡한 장치로 예술적 고양을 끌어낸다.

카라바조의 「엠마오의 저녁 식사」에서 지은이가 발견한 눈고리인 바구니에서 삐져나온 나뭇가지는 너무나 사소해 보이는 디테일이라서 이것이 과연 이 작품의 핵심적인 요소일지 언뜻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지은이의 설득력 있는 해설을 읽고서 다시 보면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대단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서 지은이가 눈앞에 들이밀어 보여주기 전까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맥주 상표의 작은 빨간색 삼각형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나면, 이 그림을 전과 같은 눈으로는 볼 수 없게 되며, 잭슨 폴록의 「하나―넘버 31」의 눈고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깜짝 놀라고 말 것이다. 바로 귓가에 윙윙대며 날아다녀 예술가를 무척 귀찮게 했을 파리이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꿈에도 의도하지 않았을 요소인 파리가 왜 작품에 포함되었고, 이것이 왜 이 작품의 핵심적 요소가 되는지 궁금하다면 책장을 펼쳐보기 바란다.

이 생경함의 미술사가 더욱 풍성해지는 것은, 과거의 작품에서 빛을 발한 눈고리가 현대의 작품에서도 공명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단순히 생경함을 지닌 작품들을 선별해놓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와 장소, 장르를 넘나들어 해당 명작과 영향을 주고받은 작품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고대 아시리아의 화살에 맞은 사자를 묘사한 석부조를 현대 중국 작가 차이궈창의 작품과 나란히 등장시키고, 송대의 중국 작가 범관의 「계산행려도」와 19세기 프랑스 예술가 세잔의 생트빅투아르산 그림의 공통점을 짚어내는 식이다. 200점이 넘는 컬러 도판이 책장을 넘기는 즐거움을 한껏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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