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바다는 하나다
어차피 바다는 하나다
  • 김혜영 기자
  • 승인 2020.02.1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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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탐방기] 국립민속박물관: 미역과 콘부 2편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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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국립민속박물관
ⓒ위클리서울/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특별전 ‘미역과 콘부 – 바다가 잇는 한일 일상’이 열렸다. 작년 10월 2일부터 올해 2월 2일까지 경복궁 내에 위치한 기획전시실이었다. 작년부터 악화된 한일 관계의 갈등 속에서 어떤 목적과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지 알아보고자 박물관에 다녀왔다. 이번 기획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과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이 함께 준비했다. 이웃한 국가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친근감을 느끼는 계기를 제공하자는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한일 양국의 일상적 음식인 미역과 다시마로부터 출발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상을 보여주기로 했다. 전시의 구성 역시 두 나라를 이어주는 바다를 중심으로 1부 ‘바다를 맛보다’, 2부 ‘바다에 살다’, 3부 ‘바다를 건너다’로 이루어졌다.

 

지난 편에서는 1부 ‘바다를 맛보다’와 2부 ‘바다에 살다’를 살펴보았다. 바다를 두고 이웃한 한국과 일본의 생활상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고, 이웃나라로서 주고받은 영향을 정리했다. 이번 편에서 다룰 3부 ‘바다를 건너다’는 식탁 위에서 더 나아가 바다에서 펼쳐진 어민들의 갈등과 무역 등을 다룬다. 한일 양국의 박물관이 협업한 결과물인 만큼, 객관적인 자료로 알아보는 역사가 앞으로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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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다

1부에서 2부로 들어설 땐 좁은 입구를 통과하면 바다 소리가 들리는 큰 공간이 펼쳐졌다. 1부에서 한일 양국의 식생활이나 의례에 연관된 해산물을 다루다 2부에서 그 해산물이 있는 바다로 배경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3부는 2부와 같은 공간이지만 스크린 속 바다를 기준으로 나뉘었다. 그 해산물을 잡거나 기르는 어민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전시의 소주제가 자연스럽게 확장될 때마다 함께 변화하는 공간의 특성을 살펴보는 것도 전시를 관람하는 재미다.

그렇게 3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천장에 달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한일 양국의 어민들이 만선 때 배에 걸었던 풍어기였는데, 두 국가의 문화가 지닌 비슷한 성질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바다는 하나의 물성이고 사람이 멋대로 경계를 나눈 것이다. 그러니 바다 위에서 생활하는 어민들은 서로의 문화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변용하며 전유했던 것이 아닐까. 전시 내내 정면만을 주시하다 고개를 올려 천장을 바라보니 변화된 눈높이만큼 동적으로 전시를 관람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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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근대와 한일 어민의 만남

천장의 풍어기를 지나자 일본 어민의 월경과 조선 어민과의 충돌 파트가 등장했다. 첫 번째 설명문부터 일본의 제국주의적 과오와 갈등을 솔직하게 풀어놓고 있었다. 1889년 조일통어장정 체결 등을 바탕으로 한일 간의 충돌이 발생했고, 대개 조선 어민에게 불리한 결과로 끝이 났다고 한다. 아직도 치열하게 갈등 중인 역사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다소 예민할 수 있는 영역을 감정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그려내려 노력한 점이 보였다. 양국의 협동 전시에서 기대하지 못한 측면이었기에 이를 성취해낸 것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지금까지 지역을 기준으로 전시 내용을 분류했다면, 3부는 통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훑으며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고문헌을 나열해 사실성과 신뢰를 보장하고,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갈등 상황도 생생하게 전달했다. 두 번째 파트는 동아시아의 해산물 유통과 ‘다시’의 재료인 멸치가 중심이었다. 한국과 일본이 멸치를 다르게 활용해왔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일어난 문화 변용을 담아냈다. 멸치를 삶는 과정을 영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등, 민속박물관만이 조명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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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민의 이동과 문화 변용

3부의 마지막은 한국의 멸치 어로요의 변화와 수용, 일본 아마의 제주 해녀의 이동으로 구성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앞서 나온 관점의 이야기들이 확장되어 어민들의 관계 발전과 이동을 다루고 있었다. 교류의 증거로 나열된 여러 물품 중, 수중안경은 기술의 이동을, 문헌과 의류는 문화변용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상징적 의미가 큰 해녀복은 전시의 중심에서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제주 해녀복이 바다를 건너 일본 해녀복을 만났다는 설명을 읽으며 어민들이 서로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했다는 것과 숱한 교류가 있었다는 점을 한 눈에 손쉽게 이해했다.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종류의 해산물이나 어업을 둘러보는 전시에서 가장 친숙하고 흥미로웠던 것은 어업요였다. 한국과 일본 각국의 어민들이 노동요로 즐겨 부르던 어업요와 더불어 양국의 노래가 섞인 어업요도 함께 배치되었다. 직접 헤드폰을 사용하는 능동적인 방식으로 청각적 심상도 누릴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3부는 당시 일어난 한일 어업 기술의 전파와 문화 변용, 그 능동적인 수용과정에 주목한다는 관점을 취했다. 양국이 비슷한 특징을 보이는 자료를 여러 개 배치하면서도, 텍스트에 머무르지 않고 관람객이 직접 비교분석할 수 있도록 이끄는 장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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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잇다

전시를 마무리하기 전에, 에필로그 ‘바다가 잇다’가 마지막으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역 혹은 다시마처럼 생긴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미디어감상실에서 영상을 시청하는 방식이었다. 한일 간의 교류는 물론 다른 나라와의 교류까지 가능하게 한 명태의 알, 명란젓의 역사를 압축해낸 영상을 편하게 감상했다. 전시의 마지막인 만큼, 지친 상태에서 전시 내용을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사실 전시를 즐겨보는 편임에도 민속박물관에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민속은 낡고 고리타분한 것이어서 재미가 없을 것이라는 인상이 깊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 편에서 이야기했듯, 전시 소식을 듣자마자 이 시국에 굳이 한일의 해산물 문화 전시를 기획하는 의도가 궁금했다. 그렇게 박물관에 방문해 전시의 기획 목적을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읽어낼 수 있었고, 오랫동안 꼼꼼히 설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록 이번 기획전시는 막을 내렸지만,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시기일수록 우리의 옛것과 지혜가 담긴 민속박물관에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와 이웃의 생활상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그 무엇보다 유의미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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