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고소(告訴)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고소(告訴)의 가벼움
  • 김경배
  • 승인 2020.02.14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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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위클리서울/김용주 기자

[위클리서울=김경배] 이른바 고소·고발의 전성시대다. 그리 시급하거나 중요한 일이 아닌 것도, 그냥 ‘허허’하고 웃어 넘어갈 일도 독기에 가득 차 고소·고발을 남발한다. 사회가 여유가 없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모든 것을 고소·고발로 해결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민주당만 빼고'라는 자당에 비판적인 칼럼을 쓴 임미리 교수와 경향신문에 대한 고발을 취하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5일 자당에 비판적인 내용의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해당 칼럼을 게재한 경향신문을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정당이 언론의 칼럼을 문제 삼아 필자와 언론 관계자까지 고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결국 집권당이 언론의 칼럼까지 간섭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는 비판이 일자 이를 봉합하기 위해 고발을 취하했다. 고발 사실이 알려진 지 하루만의 일이다.

이를 단순히 헤프닝으로 볼 수만 없는 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소·고발 풍조이다. 정치권은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사생결단한다. 상대의 주장과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자기비판의 계기로 삼기보단 ‘법대로’를 외치며 이를 법에 그 심판을 맡기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정치권에는 이미 정치가 없다. 정치력을 발휘하여 상호 간 대화와 협력을 통해 국론을 통일하여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제로섬 정치를 하고 있다.

이는 시민 사회단체도 마찬가지다. 진보단체는 진보단체대로 보수단체는 보수단체대로 서로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검찰과 경찰에 고소·고발하기 일쑤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의 포옹과 관용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까지 내몰렸다.

어떤 이론이나 주장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특히 자신을 비판한다고 해서 이를 이분법적 논리로 적군과 아군의 개념으로 정리하는 것은 곤란하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반드시 선(善)일 수는 없으며 상대의 행동과 생각이 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과거부터 관용과 배려와 겸손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상대의 이야기를 존중해 주며 그것이 설령 자신에 대한 날 선 비판이었다 할지라도 이를 반면교사로 미래 행동의 자양분으로 삼아왔다. 그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었으며 이러한 의식 저변에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참을성과 배려가 없는 그런 사회가 됐다. 상대방에 대해 비판과 독설을 마다하지 않으며 이를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이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설득과 협상을 내팽개친 체 오로지 상대를 밟고 일어서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고소와 고발이 능사만이 아니다. 사실 당사자들도 모든 것을 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는 고소와 고발 거리도 안 되는 사안을 가지고 고발한다.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은 마지막 단계이다.

이웃사촌 간에 분란이 생기면 우선적으로 서로 간 화해를 권한다. 사회적 관념에 따라 일차적인 시도를 한 후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일이라면 그때서야 법의 심판을 받기 마련이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관용과 겸손 배려의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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