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이르는 병 ‘불안’과 ‘의심’
죽음에 이르는 병 ‘불안’과 ‘의심’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0.02.21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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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1편에 이어서>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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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렇게 열 달 동안 내 안에 품고 있던 생명체가 밖으로 나왔다.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연한 울음을 내뱉고 있는 아가를 가슴에 안고 나는 손가락과 발가락부터 세어 보았다.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정상이네 우리 아가.

연분홍 마디 열 개씩을 제대로 달고 태어난 아가를 보며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 나는 행복해 했다. 뱃속에 있을 때 생긴 교통사고 때문에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겼으면 어쩌나 마음 졸이다 고작 손가락 발가락을 세어보며 마음을 놓았다 그게 뭐라고.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엄마가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또 생각해보면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순간부터 그 어린 생명체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과 의심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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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같은 해에 태어난 조카에 비해 성장이 늘 뒤졌다. 사진 한 장을 찍어놓고도 나는 속상해서 우울해졌다. 내가 뭘 잘못 키웠길래 아이가 저런 걸까.. 하고
아이는 같은 해에 태어난 조카에 비해 성장이 늘 뒤졌다. 사진 한 장을 찍어놓고도 나는 속상해서 우울해졌다. 내가 뭘 잘못 키웠길래 아이가 저런 걸까.. 하고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만약 아이가 잘 먹고 잘 자고 방긋방긋 웃으며 어린 엄마의 불안을 잠재워줬더라면 금세 모든 것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원을 나선 그 순간부터 내 불안과 의심은 밑도 끝도 없이 커져갔다. 구름처럼 폭신한 요 위에서도 딱딱한 뭔가를 등 밑에 깔고 누운 것처럼 불편해 했고 잠들지 못했다. 배길 만한 것이 없는 지 몇 번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다시 눕혀도 마찬가지였다. 잠들 때까지 가슴에 안고 서 있다가 다리가 아파 잠시 앉으려고 하면 또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내 품에 안고 있던 폭탄을 떠넘겨 버렸다. 터트리지 않도록 하루 종일 조심하며 버텨낸 폭탄이 남편의 품으로 넘어가고 나면 긴장이 풀려 기절하듯 잠으로 빠져들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 잠에서 깨어보면 다음날 새벽같이 출근을 해야 하는 남편이 다시 폭탄을 넘겨주었고 깃털처럼 가벼운 아이는 천근만근의 무게로 내게 안겨왔다. 거기다 젖을 먹여야 했으므로 커피도 술도 정신을 차릴만한 어떤 것도 입에 댈 수 없었다. 남편 직장 때문에 친정도 시댁도 뚝 떨어진 대전에 나 홀로 외따로 남겨져 있다 보니 챙겨먹는 끼니라고 해봤자 찬 물에 밥을 말아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 게 다였다. 매운 것을 먹으면 젖도 매워질까 봐 김치도 없이 개수대 앞에서 소리 죽여 모래알 같은 밥을 삼킬 때면 짭쪼롬한 물이 입으로 턱 밑으로 흘러 내렸다. 손 등으로 눈물과 콧물을 쓱 닦아내고 잠시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뻣뻣한 허리를 바닥에 펴고 눕는 순간, 창 밖에서 계란과 생선과…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닌 물건들이 유리창을 깨고 집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럴 때면 나는 원더우먼처럼 트럭으로 붕 날아가 그놈의 스피커를 떼어내서 멀리 멀리 던져버리며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아저씨! 우리 아이가 지금 잠을 자고 있잖아요. 나도 좀 살자고요!!!

그 시절. 제일 부러웠던 사람은 돈 많은 사람도, 날씬하고 예쁜 여자도 아니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와 커피나 떡볶이를 사먹으며 수다를 떠는 엄마들이었다. 저렇게 시끄러운데 어떻게 잠을 잘 수가 있지? 저 엄마는 자기 아이가 얼마나 기특하고 대단한 지, 얼마나 엄마를 배려하고 속이 깊은 지 고마워나 할까? 기저귀가 푹 젖었는데도 침까지 흘려가며 곤하게 자는 저 아이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기나 하는 걸까? 진심으로 그녀들을 질투하고 부러워했다. 그들의 편안함을 뺏고 싶었다. 욕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우울함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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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밖으로 걸어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조차 귀찮았다. 아이를 키우며 나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불안은 결국 두려움 속에 날 가둬버렸다.
세상 밖으로 걸어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조차 귀찮았다. 아이를 키우며 나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불안은 결국 두려움 속에 날 가둬버렸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산후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하던 어떤 젊은 엄마가 아파트에서 몸을 날려 자살했다는 뉴스가 텔레비전에서 가끔 흘러나온다. 만약 그런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결코 이해하지 못 했을 이야기다. 얼마나 독했으면 어린 자식을 놔두고 저렇게 무책임한 짓을 하는 거야. 우울하면 맛있는 거 먹고 푹 자고 혼자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되는 거지 어떻게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자기 목숨을 저렇게 하찮게 버릴 수가 있지? 라는 멍청한 소리를 해가면서 말이다. ‘그 사람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 함부로 욕하지 마라’는 이 평범한 한 마디가 얼마나 대단한 진리인지 사람들은 알기나 하는 걸까.

하루는, 친구가 놀러왔다가 죽기 일보직전인 내 몰골을 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너희 남편 바람났니? 나는 대답했다. 애가 나를 죽이려고 해. 친구는 깔깔 웃었다. 저녁 반찬으로 생선을 사야 하나, 돼지고기를 사야 하나. 뭐 이정도의 고민을 들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아 키워봐서 그런지 모든 면에서 능숙하고 편해 보였다. 친구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나의 문제점 몇 개를 지적해 주었다. 울리지 않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 울만큼 울면 지쳐서 더 잘 자. 뽈뽈 기어 다니면서 이상한 거 주워 먹을까봐 자꾸 안고 서있는데 바퀴벌레 주워 먹는 거 아니니까 그냥 내비 둬. 목욕 시킬 때 감기 걸릴까봐 얼른 씻겨 데리고 나오던데 그러지 말고 물에서 놀게 내비 둬. 머리 쿵 부딪힐까봐 몇 발짝 떼기도 전에 겨드랑이에 손 넣어 잡아주지 말고 그냥 넘어지게 내비 둬. 그런다고 돌대가리 안 돼. 그러니까 넌 한 마디로 너무 아마추어야 이것아.

ⓒ위클리서울/ 한길사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지 새끼가 무던하고 편하니까 남의 고통을 저토록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거야. 귀를 닫고 생각해 볼 가치도 없다고 무시했다. 그러다 조금 불안해졌다. 저 말이 맞으면 어쩔 건데. 돌이켜보면 24시간 내 머릿속은 아이 하나로 채워져 있었다. 조금만 열이 나도 체온계로 열두 번도 더 열을 재고 육아 전문서적에 나와 있는 증상들을 들여다보며 수족구면 어쩌나 장염이면 어쩌나 병원에 가서 백혈구 수치를 검사해봐야 되나 전전긍긍 했다. 너무 울어도, 너무 조용해도 문제였다. 나의 포커스는 아이의 이상 행동에 맞춰져 있었다. 뭔가 이상해야 정상이었다. 정상이면 불안했다. 그 속에 파묻혀 내 이상 행동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겨우 반나절 만에 보고 만 거다. 손에 쥔 아이스크림이 녹아버릴까 봐 맛있게 먹지도 못하고 질질 짜고 있는 병신 같은 내 모습을.

키에르케고르가 평생의 연인인 레기네 올센을 죽기 전까지 사랑했으면서도 그녀와 파혼한 이유는 결국 불안과 절망이었다. 이런 감정들은 스스로를 자유롭지 못하게 구속하는 데서 비롯되었듯 나 역시 스스로에게서 자유를 뺏고 잘못될 것들을 상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불안이라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으면서 말이다. 내가 부주의해서 교통사고도 당하게 되고 이로 인해 아이가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죄의식 속에다 몰아 부치며 지금 이토록 힘이 드는 건 내 잘못에 대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물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예민하고 잠도 잘 자지 않고 젖을 빠는 것도 시원치 않아 특수 분유를 사서 먹이고 겨우 먹여 놓으면 들어가는 것보다 나오는 것이 더 많아 포동포동 살이 오르지 않는 이 모든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가진 불안이 아이를 더욱 예민하게 만들고 힘든 아이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불행했고 힘들었고 틈만 나면 질질 짰다. 다음 편에 이야기를 계속 하겠지만 만약 나 같은 엄마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그래도 이 말은 해주고 싶다.

“많은 것을 망쳐버렸다 하더라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엄마는 아니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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