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도 ‘빨간불’

[위클리서울=김범석 기자] 

코로나19의 영향력이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환자가 나온 지 한달 만에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재계의 표정도 굳어지는 분위기다. 특히 면세점이나 백화점 같은 유통업계는 적지 않은 악영향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여행업계와 숙박업계도 넋이 나갈만큼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파장이 길어지면 우리 경제성장률이 1%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확진자가 지나갔던 음식점과 유통점은 잠정적으로 문을 닫는 등 비상 상황이다. 한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코로나19의 파장을 살펴봤다.

 

ⓒ위클리서울/김용주 기자

서울 강남의 모 음식점.

평상시라면 대기해서 음식을 먹어야 할 정도로 북적되지만 지난 22일 저녁 분위기는 평상시의 절반도 자리가 차지 않았다. 주인과 종업원들의 한숨은 깊어만 갔다. 이 곳에서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온 40대 후반 J씨는 “이렇게 사람이 없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이 사태가 어디까지 갈지 암담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확진자들이 거쳐갔던 백화점들도 문을 닫아야했다. 늘 안팎으로 사람들이 넘쳐흘렀던 서울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은 하루 5만명 넘게 찾던 곳이지만 하루 영업을 중단해야 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지하 1층을 다녀갔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매출이 가장 많은 백화점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도 강풍을 피하지 못했다. 지하 1층 식품관이 폐쇄되면서 곳곳에 출입을 막는 안내문이 도배돼 있었다. 한 여성 확진자가 이 곳에서 남편과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 등과 연결돼 있는 서울 강남부의 심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광교 롯데아울렛도 급히 문을 닫아야 했다. 확진자 한 명이 이곳을 들렸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간에선 확진자들이 거쳐간 동선들을 확인하는 모습이 적지 않다.

 

확진자 동선 ‘경계령’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어도 인파가 몰리는 곳은 앞다퉈 문을 닫고 있다. 강원랜드는 카지노 영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강원랜드는 카지노 안에서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퇴장시켰다. 강원도에서도 확진자가 나오자 아예 문을 닫은 것이다.

이마트 과천점도 신천지 교회와 같은 건물에 있다는 이유로 임시 휴업했고 이처럼 유통업체들이 입는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각종 여행상품과 대형 행사의 취소사례도 줄잇는 모습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여행 상품이나 결혼식, 돌잔치 등의 계약 취소를 둘러싼 소비자 분쟁도 늘어나고 있다.

이태규 의원(무소속)이 한국소비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이달 1∼15일 여행 취소에 따른 위약금 관련 피해구제 신청이 124건에 이른다. 지난해는 같은 기간 위약금 구제 신청이 10건뿐이고, 올해 1월에도 38건 정도였다.

A씨는 이달 7일 출발 예정이던 베트남 여행 계약을 지난달 초 여행사와 맺었다. 그러나 설 연휴 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A씨는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여행사는 위약금 80%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만 돌려주겠다고 했다.

A씨는 “위약금이 과다하다”며 소비자원에 피해구제를 신청했다. 돌잔치, 결혼식 등 관련한 소비자 분쟁도 코로나19로 증가하는 분위기다.

K씨는 지난해 11월 한 뷔페식당과 돌잔치 계약을 맺고 계약금 30만원을 냈다. 그러나 식당 근처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자 돌잔치를 앞두고 계약 취소를 요청했다. 해당 업체는 위약금으로 95만원을 요구했다.

K씨는 국가적 비상사태인 만큼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위약금 10%를 뺀 나머지는 환불해달라며 피해 구제 신청을 했다.

5월에 결혼할 P씨는 웨딩홀에서 계약 해지를 당했다. 최근 코로나19로 결혼식 취소가 잇따르자 웨딩홀 측은 5월 예식을 모두 취소하고 식장을 리모델링하기로 했다며 일부 계약금은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P씨는 업체 사정으로 취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약금의 100%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이처럼 위약금 분쟁이 커지면서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의원은 “코로나19로 국민이 금전적 피해까지 겪지 않도록 당국의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는 금융 통화 정책도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오는 27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시장은 금리 동결을 예상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충격이 확산됨에 따라 금리 추가 인하 전망도 제기되는 분위기다.

 

‘전방위 위기’

2월 금통위는 금리동결을 전망하지만, 금리인하는 '시간문제'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국내 경기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로 확산할지, 지속기간이 얼마일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경제 영향을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고 지표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 하방위험 대응 필요성에 대해 "효과도 효과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기 때문에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2월 금통위 당일 수정경제전망을 내놓는다. 지난해 11월 전망했던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2.3%였지만 반도체 경기 회복, 확장적 재정정책 등으로 지난해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기대감이 크게 꺾였다. 소비심리, 투자 등 수요측면을 넘어 제조업 공정 차질 등 공급측면에서 타격도 확인되고 있다. 경기위축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21일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조업일수를 고려한 이달 1∼20일중 일평균 수출은 16억 9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9.3%로 감소했다. 오는 25∼26일에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알아볼 수 있는 소비자동향조사, 기업경기실사지수 등이 발표된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코로나19 영향을 반영,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1%에서 1.6%로, 무디스는 2.1%에서 1.9%로 하향조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지난 22일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0%에서 5.6%로 낮췄다. 이는 중국 경제가 올해 2분기에 정상화된다는 전제 아래 추정된 수치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5.9%로 전망했는데, 전제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 전문가들도 한은 성장률 전망치 하향조정을 예상하는 분위기다. 대부분 올해 성장률로 2.1∼2.2%를 전망했다.

이런 코로나 쓰나미에 여야도 모처럼 손발을 맞췄다. 4·15 총선을 50여일 앞둔 여야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해 일단 큰 틀에서 손을 잡을 예정이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의 위기경보 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하면서 방역 대책 지원은 물론 경제적 영향을 최소화해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여야가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한 추경 편성에 뜻을 함께한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정부는 즉시 추경 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도 “예산과 입법 등 국회 차원의 모든 대책을 강구하겠다"면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일에 협조할 준비가 돼 있다"며 사실상 추경에 찬성의 뜻을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0%대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일각에선 나오고 있다. 경제 성장의 두 축인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발목을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가 42개 해외 경제연구기관·투자은행(IB) 등으로부터 집계한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보면 5개 기관이 1%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집계에 반영되지 않은 캐피털이코노믹스, 노무라증권, 모건스탠리 등의 최신 전망까지 포함하면 최소 8곳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2%에 못 미칠 가능성을 경고했다.

성장률이 2%에도 못 미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의 GDP 성장률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과 외환위기 국면이었던 1998년(-5.5%), 2차 석유파동이 있었던 1980년(-1.7%)을 제외하고는 2%를 밑돌았던 적이 없다.

3월 봄바람을 앞두고 코로나19의 확산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길 기대해 본다. 한국 경제 또한 이에 대한 해결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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