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 김용주 기자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지난 1월 28일 소주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어 간다. 처음에는 이쯤 되면 중국에 돌아가겠거니 했는데 이젠 한국의 분위기가 더 심상치 않아 중국 입국을 거부당하면 어쩌나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도 아직 코로나의 영향이 잠잠해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상해는 얼마 전 학교 개학 일정을 발표했는데 학년별로 순차 개학을 진행할 예정이며, 유치원과 초등 1~3학년, 대학교는 바이러스가 소멸(!)된 이후에 가장 마지막으로 개학한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약한 유아/아동에 대한 고려와 대규모 인원이 밀집하는 대학교를 위험요소로 보는 결정으로 보인다. 상해가 여태까지 코로나 시국에서 발 빠른 결정들을 발표해왔고 다른 지방정부는 대체로 이를 따라가는 모양새였기 때문에 소주도 아마 비슷한 결정을 내릴 것이다. 소주의 한 국제학교는 3월 중에는 개학하지 않는다고 학부모들에게 통지했다고 한다.

의도치 않은 피난살이가 오래되니 몸과 마음이 편치 않다. 친정이 아무리 결혼 전에 살던 곳이라지만 이미 내 집이 아닌 지 오래되고, 간소한 짐만 챙겨온 터라 부족한 것들이 많다. 부지런히 인터넷 쇼핑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사들이고 불편한 부분들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걸 소일삼아 하고는 있지만, 사태가 더 장기화될 것 같으면 집을 구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귀국 후 첫 2주는 외출을 가능한 자제하고 (당초 귀국 목적이었던) 병원도 마음대로 못 가다 보니 상당히 답답했다. 아이와 온종일 시간을 보낸다는 게 쉽지 않았다. 어서 빨리 2주가 흐르기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2월 첫 주부터는 아이 학교에서 대체학습으로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는데 아이를 붙잡고 시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7살이니 아직 집중이 힘들기도 하거니와, 영어나 중국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일일이 옆에서 한국말로 다 설명해줘야 한다. 선생님들의 동영상을 보고 따라 읽거나(읽기 수업), 따라 부르거나(음악 수업), 따라 움직이거나(체육 수업) 하는 둥 녹음을 하거나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방식이 있고, 수학이나 언어, 탐구(‘탐구’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리지만 주제에 대해 생각한 걸 말하고, 주제에 대해 알아보는 등의 방식)의 경우 직접 컴퓨터로 수식, 글씨 등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의 방식으로 과제를 올린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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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saw에 올라온 온라인 학습 목록들과, 과제를 작성하는 화면. ‘T’라는 글자창을 띄워서 글자를 자판으로 칠 수도 있고, 마이크를 눌러 녹음을 하거나,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릴 수도 있고, 직접 펜으로 손글씨를 쓰고 그림도 그릴 수 있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seesaw class라는 앱을 이용해서 진행된다.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훌륭하게 쌍방향 교류가 된다는 점은 멋지지만, 선생님을 대신해서 부모가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고될 뿐이다. 어린아이가 둘인 집들은 얼마나 고될까 생각하면 그나마 위안이 되지만 자기 공부인데도 집중하지 않는 아이를 옆에 앉혀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위기의 순간들을 맞고 있다.

2주 전부터는 아이도 좀 더 알차게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싶어 그간 배우고 싶어 했던 피아노학원에 처음으로 보내봤다. 주 4회/40분 수업이 한 달에 12만 원이란다. 그 옆 미술 학원은 주 2회/1시간 수업에 10만 원이어서 같이 보냈다. 나도 자유 시간을 좀 더 넉넉히 가지고 싶었다. 주중은 학원과 온라인 학습, 주말은 블록방을 이용해 그럭저럭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싶었는데 대구에서 촉발된 집단 감염 사태는 다시 한 번 일상을 흔들고 있다.

급속히 확진자들이 늘어나면서 인근 동네에서도 한두 명씩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피아노학원은 2주 휴강을 선언했고, 하루에도 몇 십 명, 몇 백 명씩 불어나는 확진자 수는 자연스레 우한을 연상시킨다. 중국은 강력한 통제를 통해 확산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실제로도 효과가 있어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같은 방식을 쓸 수 없거니와 마스크 없이도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을 보면 중국 이상으로 확산하는 건 시간문제란 생각이 든다. (마스크는 사실상 구하고 싶어도 구하기 힘든 판국이니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이들도 물론 100% 자의는 아닐 것이다.)

소주만 하더라도 약국에서 감기약/해열제 구입 시 추적관리 실명제를 시작으로 택시 탑승자 실명제(2/14), 버스 실명제(2/16), 지하철 실명제(2/19) 등 행적 관리와 더불어 2월 22일부터는 소성마(苏城码, sūchéngmǎ - ‘소주성코드’라는 뜻)라는 통행 코드를 만들어 건물 출입 시 확인하고 있다. 소성마의 경우는 빨강/노랑/초록의 3가지 색인데 △빨강은 발병 중점 지역에서 온 인원 혹은 의학격리 조치대상에서 해제 되지 않은 사람, △노랑은 발열 외래진찰 후 관찰 대상과 공동주택에 주거 중인 가족 인원, 혹은 마른 기침/발열/호흡 곤란 등 증상을 보이는 사람과 기타 관찰이 필요한 사람, △초록은 이상이 없거나 의학 관리 조치를 이미 해제한 사람을 의미한다.

 

ⓒ위클리서울/ 김용주 기자

그런가하면 진작부터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대중교통 이용 불가, 아파트 출입구를 1곳만 개방해서 외부인(택배기사, 배달원 등)의 출입을 금지하고 입주민을 대상으로도 출입 시 체온을 재어 기준체온을 넘어갈 시 바로 격리 조치, 춘절 이후 외지에서 소주에 돌아오려면 미리 신고를 해야 하는 등 철저하게 통행을 제한해왔고 실제로도 우한과 호북성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상당 기간 확진자가 나오지 않는 지역이 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지금 중국으로 돌아가면 한국발 입국자들은 모두 14일의 자택격리를 해야 하는데, 중국인들이 이에 워낙 민감하게 반응해 도를 넘는 행동(한국인의 단지 내 진입 금지)을 하거나 여론을 조장하는 사례도 있어 보인다. 물론 중국이 진정되어가는 시국에 다시 바이러스가 유입될까 전전긍긍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모든 한국인을 바이러스 보균자로 몰아 차별하는 행태는 지탄받아야 할 것이다.

이제 오히려 한국보다 중국이 더 안전해 보이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타국에서 14일의 완전격리를 생각하면 선뜻 돌아갈 결심이 서지 않는다. (중국은 격리가 철저해서 아파트 현관문 앞에 문 열림 알림 센서를 붙여놓고 경비실에서 확인한단다.) 기약 없는 난민 생활이 족히 한 달은 더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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