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아프지 않을게
아프지만 아프지 않을게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0.03.10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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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처음에는 열이 나기 시작했다. 얼굴 전체에 홍조를 띈 붉은 기운이 감돌더니 화끈거리다 식었다를 몇 번이고 반복해댔다. 미열의 기운은 온몸으로 퍼지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내 몸의 온도가 평소와는 조금 다름을 느끼는 정도였다. 다음으로 목울대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배가 고파서 커다란 양푼에 이것저것 남은 반찬 다 때려 넣고 찬밥 한 덩이 던지듯 해서 숟가락으로 대충 푹푹 찔러 허겁지겁 입 속으로 밀어 넣다가 어느 순간 컥 하고 목이 메던 그 순간처럼 목구멍 어디선가 꽉 막혀 내려가지 못한 음식물들이 정체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슬픈 드라마를 보면서 대사를 나누던 배우들과 교감이 형성되어 같이 슬퍼지고 눈물이 나고 울어야겠는데 주책이라며 옆에서 핀잔 줄까봐 눈치 보느라 울음을 참을 때의 느낌처럼 침을 삼킬 때도, 가만히 있어도, 목울대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식욕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뱃살과 군데군데 흔들리는 군살들 그리고 단 한 번도 애정을 느끼지 못한 지구의 중력이라는 놈이 절대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끌어당기는 힘이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탈출하고자 운동과 음식조절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매 끼니 때마다 찾아오는 폭발적인 식욕 때문에 또 다시 좌절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일상이 반복이었다. 희한하게도 어느 순간 그것도 딱! 밥이 꼴도 보기 싫어지고 식음을 전폐하기에 이르렀다. 걱정스럽게 열이 나고 목울대가 아프고 그 중에 다행스럽게도 식욕이 떨어지고 있는 지금 나는 몹시 아프고 슬프다. 그녀가 내 곁을 떠난 지 일주일째다.

작년에 대학 새내기가 된 그녀는 공부도 나름 하는 듯 했지만 놀기도 바빴다. 요즘 젊은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매 순간을 친구들과 공유하며 대화하고 게임도 하고 참 즐거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와 내가 단 둘이 있어도 그녀의 친구들이 집에 있는 것 같았고 분명 그녀와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톨이였으며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듯 즐거워 보였다. 그게 질투가 나서 가끔은 그녀에게 악다구니를 해대기도 했다. 이 집에 너만 있냐며, 그만 좀 하라고. 잠시 주춤하는 듯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친구들과 마냥 즐겁고 미래에 대한 준비나 고민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수능만 끝나면 너나 할 것 없이 알바에 뛰어드는 젊은이들과는 달리 넉넉한 용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용돈벌이 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저 학교와 집 그리고 가끔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정도의 외출 외에는 집에만 박혀 있는 그녀의 일상이 답답하기만 했다. 불수능을 겪은 그녀는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수를 하겠다고 호언장담 했지만 이미 대학생활의 달달하고 상큼한 맛을 느낀지라 ‘반수가 뭐예요’라는 표정으로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2학기 기말고사를 끝내고부터 시작된 방구석 생활은 급기야 나를 폭발하기 직전으로 몰고 갔다. 성적표도 보여주지 않은 그녀에 대한 복수는 다음 학기 등록금으로 협박하는 수밖에 없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그때 오히려 그녀가 내게 핵폭탄에 미사일까지 던져 버렸다.

“나 재수 할래. 기숙학원 들어 갈 거야.”

이건 아니잖아. 내가 반격할 기회도 줘야지. 어떻게 너만 공격을 해대니.

숙식비를 송금하고 나서 처음 증상이 나타났다. 목울대가 아프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아무렇지도 않아야 했다. 나는 엄마니까. 다니던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집 떠날 채비를 한지 며칠 사이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어쨌거나 합리적인 가출을 단행한 그녀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이별의 아픔은 남겨진 자의 몫이라 했던가. 수십 년 전 나의 모친도 감내해 냈으리라 짐작되는 이별의 아픔이 부메랑처럼 내게 돌아올 줄이야….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스무 살 때였다. 대학은 떨어졌고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했던 엄마가 서울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들과 이별을 준비할 틈도 없이 고등학교 졸업을 하자마자 고향을 떠나야 했다. 낯선 땅, 낯선 말투, 낯선 사람들, 모든 게 생경했던 시공간들을 향수병이 야금야금 갉아 먹었고 입에 풀칠하랴 어린 아들 공부시키랴 바쁜 엄마에게 투정을 부릴 수도 없어서 혼자 시름시름 앓던 어느 날, 밤기차를 타버렸다. 철딱서니 없게도 친구들이 반겨 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처음엔 그랬다. 친구의 어머니도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며 밥도 주시고 재워도 주셨지만 며칠이 지나도 돌아갈 생각이 없는 내가 점점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친구가 연락했는지 엄마가 수소문을 했는지는 아직도 남겨진 의문이지만 얼마 뒤 화가 난 모습에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머금은 채 나타난 엄마의 모습은 지금의 나보다 더 피폐했던 것 같다. 자식을 낳아 보니, 또 그 자식이 내 곁을 떠나고 보니 비로소 깨달아지는 엄마의 아프고 아픔이 형벌처럼 느껴진다.

어린 마음에 기약도 계획도 없이 무모한 가출을 시도했던 나와는 달리 아무런 생각도 없이 놀기만 하는 줄 알았던 그녀는 나름의 치밀한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실행에 옮긴 출가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 또한 미처 준비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이별의 아픔이 되어 그녀의 결심을 응원하고 독려해 주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수 십 년 전 나의 엄마가 그랬을 것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목울대 아프도록 꺼이꺼이 울음을 삼켜내며 견디는 중이다. 그녀의 텅 빈 방을 오며가며 지나칠 때마다 그녀가 생각이 난다. 지금 이 시간이면 무엇을 하고 있겠구나. 성격이 깔끔해서 이부자리며 책상이며 손댈 것 없이 치워놓고 간 그녀의 방 앞을 하루에 몇 번이고 서성인다. 이럴 때는 바깥일이라도 바쁘면 좀 덜할 텐데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덕택에 모든 수업들이 휴강된 채 두문불출 집에만 있으려니 더 아프고 힘든 것 같다. 그녀의 인생에 집 떠날 일이 더는 없겠는가. 유학을 갈 수도 있고 직장 때문에 떨어져 살 수도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도 해야 할 텐데 그럴 때 마다 분리불안을 겪는 어린애처럼 마냥 아프고 아플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앞으로 만들어 갈 인생이라는 무대에 기쁨도 있을 것이고 아픔도 있겠지만 모든 것은 주인공인 그녀가 잘 감내해 낼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아프고만 있을게 아니라 그녀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해주고 힘들면 언제라도 내 품에 안겨서 쉴 수 있도록 든든한 엄마가 되어야지. 아쉽지만 전폐한 식음을 다시금 부여잡고 말이다(스멀스멀 솟구치는 식욕을 합리화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온 나라가 감염병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올해 수능을 준비하는 고3 수험생들은 물론이고 그녀를 비롯한 재수생들도 모두 힘내기를 바란다. 당신들 앞날에 찬란한 희망과 아름다운 꽃길이 함께 하기를 수험생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응원한다.
 

덧) 아셨겠지만 그녀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나의 첫 딸입니다.
딸아이를 그녀라고 3인칭 하는 이유는 모질지 못하고 강하지 못한 엄마라서 큰 결심을 하고 마음을 다잡은 딸에게 혹여 방해가 될까, 행여 결심이 흔들릴까 걱정되는 마음에 스스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지켜보는 연습을 하고자 내린 나름의 처방전 입니다. 나는 나의 딸을 무척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랑을 내리 퍼부을 생각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후훗!!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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