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물질적 해방 넘어 창조적 사회·문화적 가치 창출”
“기본소득, 물질적 해방 넘어 창조적 사회·문화적 가치 창출”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20.03.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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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1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나타난 세계 경제 위기와 양극화, 자동화, 4차 산업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실업과 빈곤이 늘면서 기본소득(基本所得)이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복지국가 유럽의 몇 나라를 제외하고 현실은 말처럼 녹녹지 않다. 기본소득에 대한 목적과 방식을 놓고 아직은 실험 단계다. 사회적‧생태적 전환에 있어 공유경제 코드와 맞아야 한다. 정치적으로 민중의 지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기본소득은 국내총생산(GDP)에서 복지예산 일부를 국민에게 재분배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려면 먼저 정치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어렵다. 핀란드가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을 실시했다. 1893년 핀란드에서 대규모 노동자 총파업이 일면서 1906년에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면서 실시됐다. 그 이후 비례대표제가 유럽대륙을 휩쓸었다. 유럽의 비례대표제는 혁명과 총파업으로 쟁취한 정치적 산물이다.

20세기 들어서 미국과 캐나다도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각한 우리나라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소수 진보적 정당들도 미래의 보편적 복지인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은 “2019년 우리나라 GDP는 1,800조 원을 넘었다. 1,800조 원에서 소득세 10%를 걷으면 180조 원의 재원이 생긴다. 이 180조 원을 5천만 인구로 나누면, 1인당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줄 수 있는 돈이다.”고 밝힌다.

기본소득 재정문제에 대해 그는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건설된 제도다. 링컨의 말처럼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이고,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기본소득은 재정환상에 잘 빠지지 않거나, 쉽게 벗어나도록 만들 수 있는 정책이다.”고 강조한다.

경기도 교육청의 무상급식과 성남시 청년 배당제 자문,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강 이사장은 이 제도의 실현 가능성을 놓고 “먼저 정치개혁과 헌법개정을 통해 국민투표권을 확보해야 한다. 또 국민이 재정환상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정책을 설계하면, 정치적으로 실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전한다.

강남훈 이사장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불평등을 만든 현시대에 대두되고 있는 기본소득과 정치개혁, 양극화 문제, 언론개혁, 미국·캐나다-인도·아프리카의 기본소득실험, 유럽의 비례대표제 역사 등을 짚어 본다.

 

- 세계 각국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과 시행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왜 지금 기본소득이어야 하는지 말해 달라.

▲ 2009년에 설립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모두를 위한 실질적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기본소득(Basic Income)이 전 국민에게 지급되는 세상을 바라는 뜻에서 설립됐다. 기본소득은 이제 미국 등 선진국을 비롯해 중진국, 후진국 사이에서 줄곧 논의되고 실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다.

기본소득은 가난한 사람이 장기적으로 더 많이 받는다. 돈도 훨씬 적게 들고 빈곤을 없앨 수 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기본소득제 채택은 그리 간단치 않다. 우리 헌법은 일반 법률 입안에 있어서 국민투표권이 없다. 따라서 헌법개정을 통해서 국민투표권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기본소득의 선결 조건은 정치개혁이라는 말이다.

 

- 기본소득, 아직 낯선 개념이다.

▲ 기본소득은 아주 단순한 정책이다. 국가가 마련한 재원을 국민 모두에게 1/n로 나누어 통장에 입금하면 된다. 기본소득은 ‘자격심사 없이 모든 사람에게, 개인에게, 노동의 요구 조건 없이 무조건 전달되는 정기적인 현금 지급’이다.

지난 2016년 서울에서 개최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총회에서 기본소득과 관련한 다섯 가지 선언도 개별성과 보편성, 무조건성, 정기성, 현금지급을 말하고 있다. 개별성은 개인 단위 지급을 뜻하고, 보편성은 모든 사람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무조건성은 노동이나 구직활동을 요구하지 않고, 정기성은 한 번이 아닌 정기지급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현금 지급이다. 기본소득은 의료, 교육서비스 등도 함께 제공되고, 물질적 빈곤을 넘어 사회-문화적 참여가 보장되고 중산층과 저소득층, 노인, 취약계층의 처지가 개선되는 수준이어야 한다.

 

- 재원 마련이 문제인데.

▲ 기본소득 재원 마련에는 많은 방법이 있다. 방법마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시민 배당 재원을 위해 시민 소득세를 매기고, 토지배당 재원에 국토보유세를 환경배당 재원에 환경세 등과 같은 제도 활용도 가능하다.

미국이 환경세와 환경배당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 배경도 심각한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미국의 여-야 정치권에서 가장 활발하게 합의가 이뤄진 사례를 우리도 벤치마킹해야 한다. 정치권에 이어 2017년에 공화당을 지지하던 미국 경제학자들이 모여 ‘탄소 배당’(Carbon Dividends)제 도입을 강력히 지지했다.

여기에는 27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15명의 전임 경제자문회의 의장, 4명의 연방준비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미세먼지에 시달리는 우리나라도 조만간 이 제도를 도입할지도 모른다. 심각해진 ‘미세먼지세’와 원전폐기물 처리비용을 위한 ‘방사능 폐기물 보관세’를 만들어야 할 때다.

 

- 자칫하면 복지 세금만 부각 돼 재정환상 우려도 있는데.

▲ 선별소득 보장보다 기본소득이 ‘정치적 실현성이 높다’는 것은 ‘약간의 이타심을 가진 합리적 투표행위’를 전제로 이뤄졌다. 사람들이 ‘세금과 보조금’의 차이점을 잘 알지 못한 채, 한쪽에만 매몰돼 투표한다면 결과는 많이 달라진다.

보조금(복지예산)을 좌시하고, 오로지 세금 문제에 치우치면 기본소득은 선별소득보장보다 더 어려워진다. 이런 약점을 잘 아는 정치가들이 ‘세금 문제’를 과대하게 부풀려 복지정책을 좌절시켜 왔다. 그런 시도 중 하나가 ‘세금 폭탄’ 공세였다.

과거에 노무현 대통령이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자, 야당과 언론의 집중포화로 지지율이 심하게 흔들렸다. 2019년 문재인 정부가 보유세를 조금 올렸을 뿐인데도 언론의 공격이 빗발쳤다. 하지만 이제 깨어난 시민들이 언제까지 재정환상에 빠진 것으로 보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재정환상에서 벗어날 것으로 본다.

 

- 시민들이 깨어나고 있다는 뜻인가.

▲ 민주주의 정치는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건설된 제도다. 링컨의 말처럼 영원히 한 사람을 속이고,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재정환상은 기본소득과 선별소득보장을 모두 어렵게 한다.

기본소득은 재정환상에 잘 빠지지 않는 장점이 크고,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정책이다. 기본소득은 중산층 대부분을 순 수혜 가구로 만들기 때문에, 내는 돈과 받는 돈을 암산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게 설계하면 된다. 재정환상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만 하면, 정치적으로 실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 노동을 회피한다는 지적도 있다.

▲ 그런 우려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선별소득 보장에 비하면 ‘복지함정’이 없다. 복지함정이란 복지수혜자가 일자리가 생겨도 일하지 않고, 복지에만 의존해 살아가는 현상이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을 보면, 이 제도가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면서 일을 하도록 돕는 제도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다르다. 1인당 30만 원일 때, 4인 가족이면 120만 원의 정기적인 소득이 보장된다.

 

- 정치권에 이어 복지의 최대 걸림돌을 지적한다면.

▲ 관료집단이다. 이 관료들을 정치인이 통솔할 책임이 있지만, 제대로 통제할 정치인을 찾기 어렵다. 특히 정치인은 실물경제와 정부 예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예산을 주무르는 관료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여기에 정치인의 공약 중 상당 부분이 관료의 반대에 부딪힌다.

주권자가 뽑은 정치인이 어떻게 해야 관료를 잘 통솔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정치인과 언론, 관료들이 주인인 주권자의 뜻에 잘 따르게 한다 해도, 주권자가 잘못 판단하면 무용지물이 된다. 주권자는 합리적 판단을 위해 현실을 정확히 읽어야 하고, 불평등을 축소하려면 불평등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 앞에서 정치개혁을 말했는데, 특히 선거제도에 따라서 중산층의 정당 선호도가 달라지는데 이점을 어떻게 분석하는가.

▲ 1945~1998년 선진민주주의 국가들의 정부 당파별 득표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례대표제에서는 우파 정부가 30%를 얻었고, 단순 다수제에서는 75%를 얻었다. 중산층은 비례대표제에서 좌파 성향 정당을 선호하고, 다수제에서는 중산층이 우파정당과 연합을 선호했다.

이렇듯 선거제도에 따라 중산층 투표행태가 극명하게 갈라진다. 이에 따른 투표행태 분석모델이 나왔는데 저소득층, 중산층, 고소득층 3계층으로 분류했다. 정부의 정책도 무복지, 선별복지, 기본소득 3가지 모델이 만들어졌다.

앞에 제시된 선별복지는 저소득층에게만 분배돼 모든 부담을 중산층과 고소득층이 진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모두에게서 세금을 걷어 모두에게 똑같이 재분배하기 때문에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수혜자가 되고, 고소득층이 부담을 진다.  <2회로 이어집니다.>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1979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90년 서울대 경제학 석사·박사
1985년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창립
경기도 교육청 무상급식과 성남시 청년 배당제 자문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공동위원장
한국형 기본소득 모형 등 논문 발표

/ 저서 : 기본소득과 정치개혁, 기본소득 운동의 세계적 현황과 전망, 기본소득의 쟁점과 대안 사회, 인공지능과 기본소득의 권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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