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숙 지음/ 글항아리

ⓒ위클리서울/
ⓒ위클리서울/글항아리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글항아리에서 기록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아주 보통의 글쓰기’ 시리즈의 제3권으로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를 펴냈다. 2002년 느닷없이 식당 주인이 된 60대 여성이 이 책의 저자다. 그녀의 나이 쉰한 살 때였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나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렇게 얇고 자그마한 에세이 한 권을 갖게 되었다. 식당이 안정을 찾고 돈도 좀 벌고 난 이후인 2016~2019년 마음먹고 인생을 돌아보며 쓴 글들이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틈틈이 사람들을 관찰했다. 어느 날 식당 밖을 보니 데크에서 쉬고 계신 할머니는 저자의 스무 살 시절 세상을 뜬 증조할머니와 닮아 있었고, 흰 수염이 많은 넉넉한 몸피를 지닌 할아버지는 헤밍웨이의 모습이었다. 그 외에도 누구누구를 떠올리게 하는 무수한 사람이 왔다 갔다. 그 사람들은 곧 그녀의 삶에 스며들었고, 자신의 옛 삶과 함께 노트에 적혀 내려갔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소설을 쓰고 싶었으나 쓰지 못한 한恨이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한두 편만 읽어봐도 이 책의 대사와 묘사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리라.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솜씨라든지, 딴 데 쳐다보며 묵직한 어퍼컷을 먹이는 듯한 통찰도 곳곳에 녹아 있다.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품은 기억대로, 담긴 풍경대로 쓰고 있지만 3년 묵은 오모가리처럼 잘 익은 문학이다.

저자는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결혼 후 광주에 정착해 평생 한곳에 뿌리박고 살았다. 새댁이었던 시절,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으며, 이웃이 간첩으로 몰렸고, 분노와 울분이 뒤엉키는 것을 봤다. 생선 사다 간하여 볕에 말리고, 그늘에 앉아 고구마줄기 껍질 벗기고, 누가 시장에 다녀오며 뭐가 값이 싸더라 하면 아이 업고 그쪽으로 가 좀 헐하게 사오던 때에 자신과 이웃을 휩쓴 억압과 폭거였다. 이때부터 열심히 노력하면 보람 있는 훗날이 있을 거라는 등식은 흔들렸다. 저자는 기록한다. “정신이 좀처럼 차려지질 않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는 게 옳은가, 가치관도 존재감도 삶의 의욕도 없이 우리는 그저 했던 일이니 관성으로 움직였다. 시금치나물 하나도 듣고 물어 맛을 낼 노력을 하던 예전의 아낙은 세상살이가 심드렁해지는 몸의 변화를 느꼈다.”

80년 광주의 억압은 한낱 시민이었던 그에게 삶이 모욕임을 일깨워줬고, 그는 자기비하의 기억들을 마음에 새기며 기록으로 풀어낸다. ‘세탁기 두고도 물 절약하겠다며 손빨래하던 나는 무엇인가.’ ‘고무 다라에 물 담아 낮 동안 햇볕에 데워서 아기들 씻긴 절약은 다 무슨 소용인가.’ 내가 나를 비웃자 나 자신조차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될지 자신이 없었다.

정부와 위정자를 못 미더워하면서 원망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면 역시나 무력한 ‘수수방관자’였을 뿐이어서 원망은 제 몸으로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자박자박 걷는 아이와 업어 키우는 아이 둘을 돌보고 있을 당시 그는 이모네 집에 세들어 살면서 이웃의 소문을 들었고, 분노했다. 시내엔 벌써 시체가 가득하다고 했다, 마구잡이로 죽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 저자가 한 건 아이를 달래면서 우는 것뿐이었고, 고향 쪽을 바라보면서 이 일이 얼른 끝나기만을 바랐다.

남편은 어떠했던가. 선생 일을 하고 있었던 남편 역시 도청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는 자신을 비겁하다 여겼다. 그래서 어느 날 부부는 아이들을 업고 시내로 나섰다. 하지만 그때 남편의 스승을 길에서 맞닥뜨렸고, 그 스승은 제자 부부를 얼른 집으로 돌려보냈다. “성난 시민군에 편승할 용기도 없고, 마구잡이로 총검을 휘두른다는 진압군과 마주치는 것도 두렵다”라는 생각이 들던 차 스승의 권유는 부부에게 자신을 보호할 정당한 명분을 마련해주었다. 저자는 끝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5·18의 한가운데를 우리는 수수방관자로 살았다.” 농사는 망치고 우유 집유차도 못 들어오던 시절, 차라리 안 보고 안 듣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고장의 아픔을 보며 울었지만,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무력한 아기 엄마의 기록은 이제야 한 편의 글이 되어 그 시절의 사회와 자기 자신을 동시에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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