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 민주주의, 양극화 해소 어려워 주권 회복할 때 가능”
“형식적 민주주의, 양극화 해소 어려워 주권 회복할 때 가능”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20.03.13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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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3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그러나 미국의 기본소득 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 1960년대 이 운동이 실패했지만, 기본소득과 관련해서 세 가지 유산을 남겼다. 먼저 1975년 도입된 근로장려세제다. 이것은 저소득층 근로자들에게 노동 유인을 없애지 않는 방식으로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일하지 않을 때, 기초보조금을 주지 않는 마이너스 소득세와 큰 차이가 있다.

다음이 기본소득(마이너스 소득세) 실험이다. 당시 기본소득에 대한 극렬한 논점은 노동 회피 문제였다. 닉슨의 법안을 둘러싼 논쟁이 전개되는 동안 실험을 통해서 노동 유인이 얼마나 감소하는지 확인하자는 합의가 이뤄지면서 대규모 실험이 시행됐다. 마지막으로 알래스카주에서 시행한 기본소득 실시다.

 

- 유럽의 복지제도 산파역을 한 ‘비례대표제’ 어떤 과정이 있었나.

▲ 18세기 중엽, 유럽에서 비례대표제가 대륙을 휩쓸었다. 그 도화선은 핀란드다. 1866년 핀란드에서 노동자 봉기가 있었고, 1893년에 전국적인 총파업이 일어났다. 그 결과 선거권이 확대되고 사회민주당의 정치적 권한이 강화됐다.

5년간 개혁과 논의과정을 거쳐, 1899년 핀란드는 유럽 최초로 사회민주당과 가톨릭 당이 비례대표제에 합의했고, 1906년에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국가가 됐다. 1907년 스웨덴도 보수우파가 비례대표제를 채택했고, 1910년 포르투갈이 혁명을 통해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헌법을 제정했다. 유럽의 비례대표제 역사는 혁명과 총파업으로 쟁취한 정치적 산물이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 비례대표제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흑인과 이민자보다 많았던 백인들이 사람 수에 비례한 대표선출 제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백인들의 보수성향이 너무 강해서 선거제도개혁을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의 보수세력들은 비례대표제를 공산주의와 나찌(Nazi)에 연결시켜 공격했다.

 

-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정치적 격변기였다.

▲ 1차 세계대전 이후, 1917~1920년 사이에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네덜란드가 비례대표제를 채택했다. 스위스의 경우, 1차 세계대전 중에 좌파사상가들의 영향으로 1918년 노동자 총파업을 통해 쟁취했다.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평화적으로 이뤄졌고,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는 전쟁 중에 우파와 군대가 약해진 틈을 타 혁명과 총파업을 통해 비례대표제를 쟁취했다. 비례대표제 역사는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정책이었고, 소수정당일 때 실현된 신념이다. 또 혁명과 총파업으로 쟁취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럽에서 널리 채택되었고 일종의 규범이 되었다.

 

- 참여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혁을 시도했다.

▲ 1987년 6월 혁명 당시만 해도 민중들이 선거제도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20년이 지난 뒤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제도개혁을 ‘정권과 맞바꿔도 좋은 만큼 국가 장래를 위해 중요한 사항’으로 인식하고 통 큰 제안을 했다. 그러나 불발로 그쳤다. 10년 후 2016년 촛불혁명에서 비례대표제가 대중의 요구로 등장하게 됐다.

1899년 세계 최초로 벨기에가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지 약 120여 년이 흐른 후 동방의 대한민국 주권자들도 선거제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비례대표제는 어느 한 부분만 제도를 뜯어고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사회 등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제도다.

 

- 예를 든다면.

▲ 한 예로 사립대학을 공영화하려면, 사립학교법을 먼저 개정해야 한다. 개정을 위해 국회의원을 설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더 간단한 방법은 사립학교법 개정에 찬성하는 국회의원을 많이 뽑는 것이다. 사립학교 재단보다 대학생과 대학 직원, 교수가 더 많으므로 주권자 수에 비례해서 국회의원을 선출하도록 선거법을 고치면 된다.

또 하나 총파업을 할 때, 제대로 된 국제노동기구(ILO) 조약 비준을 통해서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더 좋은 방법은 ILO 조약 비준에 찬성하는 국회의원을 많이 뽑으면 된다. 자본가보다 노동자 수가 더 많으므로 선거법을 고치면 된다.

ILO 조약 비준을 외치는 것보다, 완전한 비례대표제를 하라고 총파업하는 게 장기적으로 우월한 전략이다. 벨기에와 핀란드 등 유럽 복지국가 노동조합들이 먼저 선거제도를 바꾸는 전략을 통해 노동권과 복지권을 쟁탈하는 데 성공했다.

 

- 기본소득을 위해 정치개혁이 선결돼야 하지만, 언론개혁도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언론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주권자의 대리인으로 거듭나지 못한 상태다.

▲ 2018년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공동연구해 발간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8’에 따르면, 57개국 중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2017년 23%(36개국 중 36위)에 이어 최하위로 나타났다.

이어서 그리스 26%, 헝가리 29%, 말레이시아 30% 로 나타났고, 상위그룹에 핀란드 62%, 포르투갈 62%, 브라질 59%, 네덜란드 59%, 캐나다 58% 순으로 올랐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주류언론은 정치인 등 엘리트 지배층의 상황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왜곡된 뉴스와 과장된 뉴스, 가짜뉴스 등을 써서 공격한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 추진했던 언론개혁과 사학법개정, 국가보안법 개정, 한미 FTA, 이라크파병 등 지지율은 과반이 넘었다. 그때를 빼고는 30% 밑으로 떨어졌다.

 

-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언론개혁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인가.

▲ 노무현 정권이 비록 언론개혁에 실패했지만, 언론개혁을 시도했던 보기 드문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노 대통령의 언론 관련 메모에서도 ‘분노와 개혁’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언론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정책을 추진하면 흔들어대기 일쑤였다.

노 대통령은 ‘언론은 국민의 권력과 이익을 대변하는 시민의 권력이자 약자의 대리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언론은 부자를 위한 엘리트 지배층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의 자유는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뿐 아니라, 사주로부터의 자유, 돈의 압력으로부터의 자유가 핵심이다.

언론의 가장 큰 해악은 ‘의제의 왜곡’이다. 하지만 지금 촛불 정권으로 바뀌었음에도 언론의 광고 의존성은 점점 더 커졌다. 주류언론은 부자를 위한 대변역할을 하며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있다. 최소한도 정책과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하고 비판해야 함에도 진실한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 언론인 기초생활 보장을 말했는데.

▲ 소수 거대언론사를 제외하고, 언론인에 대한 기초생활 보장이 거의 없다. 방송국 같은 대규모 언론사도 비정규직 언론인이 늘고 있다. 심지어 지방지 언론들은 아예 기본급도 없다. 광고를 수주해오면 그중의 몇 %를 월급으로 대신 받는 ‘생계형 언론인’이 늘고 있다. 문제는 언론인들이 광고를 수주할 때, 광고주의 비위에 거슬리는 뉴스를 보도하지 않게 된다.

언론사는 특종을 잡아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특종은 어렵다. 이러다 보니 언론사들은 구독과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쓰는 편법이 선정적인 뉴스다. 이렇게 해서 공론장에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사생활 침해와 명예훼손 등 뉴스로 인한 공해와 사회적 갈등이 빈발하는 어뷰징(Abusing, 남용) 언론이 증가하고 있다.

 

- 기득권 편향적인 언론과 가짜뉴스가 문제다.

▲ 언론의 부당한 보도와 명예훼손 등에 대한 소송과 가짜뉴스에 대한 처벌법을 만드는 등 대응도 중요하지만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현재 ‘보수 80%-중도 10%-진보 10%’ 체제로 구축된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분포를 ‘보수 40%-중도 30%-진보 30%’ 체제로 주권자인 국민의 언론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언론인 기초생활 보장도 주인인 국민이 국민의 대리인인 언론인에게 일을 시켰으면, 당연히 대리인의 생계를 책임져야 맞다. 월급을 안 주는 주인은 어리석다. 대리인이 주인의 재산을 늘리는 일은 어렵지만, 주인의 재산을 축내는 일은 쉽다. 특히 대리인이 하는 일이 중요하면 할수록, 장기적으로 주인에게 더 큰 위험을 초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정부와 시민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 수천 년 역사에서 가장 분명한 사실 하나는 포용경제를 만든 나라는 흥했고, 수탈경제를 만든 나라는 망했다는 것이다. 포용경제는 포용적 정치가 수반된다. 로마도 포용경제일 때 흥했고, 수탈한 황제정(皇帝政)일 때 망했다.

영국이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을 일으킨 것도 포용정치 때문이다. 발전과 번영의 공식은 포용정치와 포용경제다. 하지만 최근에는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불평등이 극단으로 가고 있다. 시장경제는 교환과 분업, 혁신을 통해 부를 창출하지만, 자동화나 세계화, 자산 가격 상승 등은 불평등을 만든다.

불평등 확대는 민주주의 정치가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불평등 증가는 ‘소수가 다수를 수탈’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형식적인 민주주의만으로는 불평등 축소가 힘들다.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 대리인인 입법·사법·행정부를 주권자 수에 비례해서 배정하는 선거제도가 절실하다. 정치와 언론대리인의 기초생활에 쓰일 재정도 주권자가 쥐고 있어야 한다. 불평등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깨어난 주권자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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