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순간
찰나의 순간
  • 김준아 기자
  • 승인 2020.03.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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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나 – 세계여행] 네팔 히말라야-3편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기, 주나>는 여행 일기 혹은 여행 기억을 나누고 싶은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의 세계 여행기이다. 여기(여행지)에 있는 주나(Juna)의 세계 여행 그 열일곱 번째 이야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일출을 기다리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이틀 연속 날씨가 안 좋았던 것은 오늘을 위한 거였다고 말하는 듯이 날이 좋아졌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찰나의 순간. 여기서 ‘찰나’는 불교에서 시간의 최소 단위를 나타내는 말로 아주 짧고 빠른 시간을 비유할 때 종종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아주 짧은 시간. 누군가는 인생을 찰나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직 내 인생의 1/3 밖에 살지 않았기에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도 참 길고, 신호등 초록불을 기다리는 시간도 참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도 찰나의 순간을 살았던 시간이 있다. 바로 히말라야 위에서의 7박 8일.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너무 생생하기도, 꿈을 꾼 것처럼 흐릿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때의 시간을 정확히 담아낼 수 있는 건 그 찰나의 순간의 나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썼던 일기를 가져왔다.

 

산에 오른 자가 되고 처음으로 머물렀던 울레리에 위치 한 롯지.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018년 12월 1일 토요일 - 워밍업

네팔 포카라에서 지프를 타고 3시간을 달려 해발 2003m에 도착했다. 태어나서 처음 와 보는 높이. 1950m 한라산도 오른 적 없는 나에게는 이 정도의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만 ‘드디어 시작이구나’라는 마음이 무거운 배낭과 가파른 계단을 만나니 긴장 때문인지 혹은 계단 때문인지 아니면 고산 때문인지 숨쉬기가 조금 힘들었다.

다행히 오늘은 고산에 적응을 하는 날이기에 1시간을 채 걷지 않고 울레리에 위치한 롯지 (lodge, 옥외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 머무는 시골의 오두막)에 자리를 잡았다.

히말라야에는 트래킹 하는 중간중간에 롯지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 있다. 현지인들은 그곳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은 걷다가 자리를 잡고, 그날의 숙식을 해결하고, 체력을 보충한다. 잠자리와 식사뿐만 아니라 뜨거운 물 샤워, 와이파이, 마시는 물, 전기 사용 등 모두 돈을 지불하고 사용해야 하며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물가도 올라간다. 그래서 돈을 아끼기 위해 미리 라면과 간식거리를 배낭에 챙기는 것이다.

처음에 숨쉬기가 힘들 때는 가방에 있는 식량을 ‘빨리 먹어 치우고 조금이라도 가볍게 올라가서 전부 사 먹자’라는 생각을 했는데 첫 롯지부터 물가를 보니 ‘아껴 먹자’는 마음이 들었다. (포카라 마을보다 약 4배 정도 더 비쌌다.)

아직은 내가 히말라야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안 난다. ‘내가 드디어 산에 오른 자가 되었다고? 내일 내려가게 되더라도 히말라야 땅을 밟아 본 사람이 되었잖아!’

 

고도 때문에 과자 봉지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과연 내 몸은 어떻게 되는 거지?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018년 12월 2일 일요일 - 악마의 계단

출발 전, 한 블로그에서 4000개의 계단을 오르다가 토를 했다는 글을 보고 아침부터 겁을 먹었다. 오늘의 목표. 천천히 무리하지 말고 오르기.

고산병은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나타날지 모른다고 하니 최대한 천천히 올라야 한다. 특히 고산이 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나는 주변에 경험해 본 사람도 없고, 인터넷에 올라온 글로만 판단을 해야 했기에 더욱 두렵게 느껴졌다. 의외로 체력이 좋은 젊은 남성들에게 많이 나타난 다고 했다. 폐활량이 좋아 산소가 많이 필요하고, 자신의 체력을 믿고 급하게 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증상 또한 사람마다 굉장히 다르게 나타나고, 고산병의 치료법은 하산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절대 오만하지 말고 천천히 오르며 자연이 허락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허락받기 위해 서두르지 말기. 이렇게 산에서 서두르지 않는 법을 배웠다.

 

히말라야에서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밥을 먹다니!
히말라야에서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밥을 먹다니!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고산병이 걱정 된 나는 혈액순환에 좋다는 생강차를 매일 마셨다. 
고산병이 걱정 된 나는 혈액순환에 좋다는 생강차를 매일 마셨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서두르지 않고 무사히 2880m 고레파니 롯지에 도착했다. 밥을 먹다가 문득 창밖을 봤는데 갑자기 감격스러웠다. ‘히말라야 안에서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밥을 먹다니!’

2018년 12월 3일 월요일 - 내가 왜 산에 오르기로 했는가.

어제저녁 식사를 하고 난 뒤 살짝 가슴이 답답해서 고산병약 반 알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랬더니 정말 피곤했는데도 불구하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말똥말똥해지고 밤새 이뇨 작용 때문에 화장실에 들락날락 거렸다. 고산병 약의 부작용. 답답함은 가라앉았는데 잠을 잘 수가 없으니 너무 힘들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일출을 보러 올라가야했기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못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세수도 하지 않은 상태로 푼힐에 올랐다. 힐(Hill)은 영어로 언덕이라는 뜻인데 히말라야에 있는 푼힐은 해발 3210m이다. 정말 내가 히말라야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한라산 보다 높은데 언덕이라니 말이다.

푼힐에 올라가면서 히말라야를 오른 지 3일 만에 처음으로 내가 왜 이런 짓을 시작했을까 후회하기 시작했다. 컨디션도 좋지 않은데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추위는 정말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냥 프랑스 가서 에펠탑이나 보고, 이탈리아 가서 곤돌라 타고, 젤라또나 먹을걸… 내가 미쳤지….’

 

Hill은 영어로 언덕이라는 뜻인데 히말라야에 있는 푼힐은 해발 3210m이다. 정말 내가 히말라야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한라산 보다 높은데 언덕이라니 말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갑자기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설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름이 돋았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그런데 올라가면서 잠깐씩 뒤돌아본 풍경이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아름다웠다. 올라야만 했다. 손전등을 켜고 올라가고 있었는데 점점 밝아지면서 해가 떠오르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힘을 내야만 했다. 그렇게 푼힐에 올라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일출을 기다리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이틀 연속 날씨가 안 좋았던 것은 오늘을 위한 거였다고 말하는 듯이 날이 좋아졌다. 그리고 갑자기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설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름이 돋았다.

그 모습을 보고 무조건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내 목표의 정상)에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후회했던 것을 후회하며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그렇게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산길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과거에 같은 무릎을 두 번이나 다쳤던 나는 제발 다치지만 말자는 마음으로 걸었다.

산을 오르며 제일 감사한 건 가족들을 향한 내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벼랑 끝을 걷거나 길이 아닌 것 같은 길을 걸을 때마다 ‘제발 무사하게 해주세요. 가족들이 걱정하고 있단 말이에요’ 기도를 했다. 오늘도 가족들을 위해 걸었다. 이렇게 산에서 가족들에 대한 마음을 배웠다.

오늘의 목적지 타다파니에 도착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도착한 것에 감사하다며 또 기도를 했다. 나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언제나 기도를 한다. 기도를 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도는 ‘예뻐지게 해주세요’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도를 하는 이유는 나 자신에게 말하는 나만의 솔직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오늘의 기도. ‘미친 짓을 시작한 제가 진짜로 미치지 않고, 이 미친 짓을 끝까지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롯지에 난로라도 있으면 감사하다. 당연했던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은 이 곳.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018년 12월 4일 화요일 - 후회

어제 무릎을 너무 신경 쓰면서 걸었더니 긴장을 한 탓인지, 잘못 걸은 탓인지 다리 근육통 때문에 자다가 잠에서 깼다. 근육통 때문에 자다가 깨다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고통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또다시 올라야만 하는 아침이 왔다. 너무 싫었다. 어제 했던 기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만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이 짓을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어제 푼힐 보고 하산을 했어야 했나 싶었다. 나는 이제 ABC 정상으로 향하고 있는데 자꾸 내려가라고 한다. 내리막길은 정말 싫다. 왜냐하면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가라고 하기 때문이다. 정말 미치겠다.

최근 수개월 동안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술을 마시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처음으로 술 마시고 취해 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다.

 

산에도 참 많은 사람들의 소원이 있었다. 내 소원은 무사귀환.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4일 동안 내가 느낀 감정. 설렘, 환희, 두려움, 후회, 반성.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그렇게 아침 8시부터 4시까지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다가 도착한 시누와 롯지. 세상에… 난로가 없다. 하지만 걸으면서 오늘은 꼭 샤워를 하겠다고 다짐했었기에 너무 씻고 싶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고도가 더 높아진다고 해서 오늘 씻지 않으면 8일 내내 씻을 수 없을 거 같았다. 결국 고민 끝에 샤워를 했다. 산에 오른 지 4일 만에 처음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3일 동안 물티슈로 몸을 닦았었다.) 그런데 머리를 말리지 못하니 점점 열이 나기 시작했고, 머리가 깨질 거 같았다. 이러다가 고산병이 오는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면서 한 번쯤은 삭발을 해보고 싶었던 나는 지금이 그 적절한 타이밍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정말 너무 포기하고 싶고 후회되고 힘든 하루였다. 얼마나 힘들었냐면 걱정이 되어서 자꾸 연락이 오는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그리고 짜증을 낸 게 너무 미안해서 혼자 울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고, 하고 있는 건데 내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걱정하는 엄마에게 짜증을 내다니. 나는 아직도 멀었나 보다. 이렇게 산에서 반성하는 법을 배웠다.

4일 동안 내가 느낀 감정들. 설렘, 환희, 두려움, 후회, 반성. 너무 준비 없이 올라서 매 순간 당황을 했었는데 이 일기들을 다시 읽어보니 만약에 철저한 준비를 했다면 오히려 망설였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잘했다고 말하고 싶기도, 참 못났다고 말하고 싶기도 한 산에서의 시간들. 내가 정말 산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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