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바람공원
바람공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예정된 모임 하나가 취소되었다. 다른 하나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해마다 청명, 한식 즈음이면 산에 가서 드리는 제사조차도 금년에는 건너뛰자는 얘기가 나오는가 싶더니 그대로 결정되었다. 뉴스로나 보고 듣던 코로나19가 이제야 비로소 실감이 난다. 내 주변 어딘가에 그 녀석이 와서 호시탐탐 나의 빈틈을 노리고 있는 것만 같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바람이 그립다. 바람공원에나 가볼까. 바람공원에서 바다를 건너온 바람에 얼굴을 씻고 나면 뭔가 좀 보인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거리는 썰렁하다. 우체국 앞을 지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잔뜩 모여 있다. 무슨 행사라도 있나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행사가 아니었다. 마스크를 구입할 목적으로 그렇게 모여 있다는 거다. 할아버지 할머니 당신들이 마스크를 필요로 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도 들린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마스크 노이로제에 걸려버린 탓으로 그렇게 나섰다는 것이다.

바닷바람에 온 몸을 씻어내고 집에 돌아오니 토방에 뭐가 떨어져 있다. 비닐로 포장된 그것은 뜻밖에도 한 장의 마스크였다. 아마 이장님이 갖다 놓았을 것이다. 고창군 차원에서 각 가정마다 한 장씩의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는 모양이다. 며칠 전에 보았던 뉴스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마스크 공장에 투입돼서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군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국방부 장관이 출동했다.

평상시라면 국방부 장관과 마스크 공장이란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이게 뭐지? 하고 어리둥절해 할 일이다. 코로나19라는 용어를 나란히 세워놓고 보면 비로소 뭔가가 잡힌다. 그리고 국방이란 뭔가 하는 문제를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어느 하루 슬그머니 우리 곁으로 다가온 바이러스 한 종류,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미세한 생명체가 국가 방위 체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인식으로까지 확장될 줄은 아마 누구도 처음에는 상상도 못해봤을 것이다.

 

뜬금없이 주어진 마스크
뜬금없이 주어진 마스크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이 전대미문의 사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 어디에 돈이 있다. 그리고 종교가 있고, 인간의 외로움이 있다. 돈과 종교와 인간의 외로움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견제하거나 혹은 보완해야 한다. 떨어져 있어야 할 것들이 딱 붙기 시작하면 그것이 곧 재앙의 시작이다. 기독교에서의 시험 개념도 아마 거기서 나왔을 게다. 저 유명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하는 간절한 기도문은 정말로 간절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무엇이 있다.

인생은 때로 감당할 수 없는 횡재를 만나기도 한다. 대통령 노태우가 들고 나온 주택 이백만 호 건설 사업은 삼십대 초반의 내게 이상한 시험으로 다가왔다. 그리 길지도 않은 일 년 남짓한 세월이었다. 일 년여 동안에 나는 내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이 이십 년을 벌어도 벌 수 없는 돈을 벌었다기보다 그냥 쓸어 담았다. 부실공사도 좋다. 기한 내에 주택 이백만 호 건설 공약을 완수하게만 해다오, 하는 정책을 세워놓고 마구 밀어붙이고만 있었으니 돈을 안 벌고 싶어도 안 벌 수 없는 구조가 형성돼 있었던 셈이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신명이 났다. 신명의 시간은 짧았다.

나는 젖먹이 시절부터 외할머니가 계시는 절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공(空)이라든가 무(無)같은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어째서인지 그 정확한 계기는 알 수 없지만 돈에 관한 믿음이 거의 없었다. 사람이 돈을 지나치게 믿고 따르면 남는 것은 멸망밖에 없다는, 지금 생각하면 희한하고도 대견한 생각을 아마도 십대 후반부터 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랬던 내가 돈을 마구 벌어들인다. 벌고 싶지 않아도 그냥 벌어진다. 이게 뭐냐. 돈을 내 인생의 목적으로 설정한 바 없었기에 나는 슬슬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뭔가 다른 것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때까지 국내에는 없었던 아주 색다른 아이템을 찾아냈고, 거기에 그동안 번 돈을 모조리 쏟아 넣었다. 그리고 망했다. 사람을 지나치게 많이 믿었던 탓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않고 다른 무엇을 믿을까마는, 어쨌든 돈을 인생의 목적으로 설정한 것으로 여겨지는 재무담당자들의 배신으로 감옥까지 갈 뻔한 뒤의 나는 그만 죽기로 결심했다.

내가 믿었던 사람들이 내게 보인 믿음의 훼절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적어도 살아서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돈 때문에 평생을 도망이나 다녀야 하는 신세로 멸망했고, 나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그들의 멸망에 동기를 부여한 것이니, 그 어떤 이유를 들이댄다 해도 나는 살아 있을 면목이 없다고 여겨졌다.

아무 데서나 흉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죽은 내 몸뚱이를 놓고 이러니저러니 각종 입방아를 찧어대는 상황은 공상으로도 끔찍했다. 그 누구도 내 죽음을 알 수 없게, 그 누구도 내 시신을 발견할 수 없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산으로 들어갔다. 이 산, 저 산, 온갖 산들을 배회하던 어느 하루 자칭 도사라는 사람을 만났다.

 

바람공원 앞 죽도섬
바람공원 앞 죽도섬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바람공원 정상
바람공원 정상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흰머리가 치렁치렁하고 수염도 하얗게 얼굴을 온통 가린 그가 내게 말했다. 때가 되었다고, 공부할 때가 되었으니 자기를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재미있다는 생각으로 따라가서 보니 그는 무당들의 대부격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내게 전수해주고자 한 테마가 발칙했다. 사람의 미래와 과거 그리고 길흉화복을 기가 막히게 정리해주는 이를테면 점쟁이의 스킬을 전수해줄 테니 그 기술로 철학관을 열라는 것이었다. 철학관을 열면 금방 유명인사가 되는 것은 물론이요 여기저기에 부동산을 남몰래 장만하는 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마 내게서 깊은 외로움을 보았을 것이다. 그의 세계관은 딱 거기까지였다. 외로움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등급에 따라 처방도 달리 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내가 만약 점쟁이의 세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 혹 그의 제자로 들어갔을지도 모르지만, 젖먹이 시절부터 절간을 안방처럼 드나들며 사주니 관상이니 하는 것들을 접해온 나는 이미 그 방면에 대해 어지간히 알고 있었고, 그 세계가 조금은 궁금하기도 해서 얼치기로나마 주역이라든가 기문둔갑 같은 그 방면의 책들을 더듬어보기도 한 사람이었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연암 박지원 선생의 말씀이다. 이 말을 우리는 흔히 사이비라고 요약해서 부른다. 대체로 봐서 사이비는 화려하다. 부실한 내용을 눈속임할 목적으로 외양의 화려함을 채택하는 것은 모든 사기꾼들의 특징이다.

사이비라고 해서 다 같은 사이비는 물론 아니다. 세상을 넓고 깊게 보고자 하는 훌륭한 사이비가 있는가 하면 자기 자신의 욕망 충족에만 몰두하는 비루한 사이비도 있다. 훌륭한 사이비는 자신이 사이비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부단히 자신을 갈고 닦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인류에 득이 새로운 사상을 창출해 내기도 하지만, 비루한 사이비는 오직 하나 자신이 개발한 사기의 방법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이를테면 어떻게 하면 사람을 감쪽같이 속여서 탈탈 털어먹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만 몰두한다.

비루한 사이비에 전염된 사람은 인간의 가장 약한 고리인 고독과 소외감 같은 것을 콕콕 잘 포착해 낸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은 철저하게 잘 숨기는 재주에 능하다. 숨기고 있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야 할 때가 됐다고 여겼을 때 그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용어를 써서 상대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자신이 엄청나게 심오한 뭔가를 갖고 있는 것처럼 포장해서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우러르게 하고 마침내는 자신의 노예로 만들어간다.

 

바람개비
바람개비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사회 상황을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들여다본 사람은 아마 기억할 것이다. 80년 광주의 학살사태 이후 굉장히 많은 사이비 집단이 발흥했다는 것을. 사회가 폭력적으로 혼란스러워지면 영문도 모른 채로 당해버린 억울한 피해자가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고, 소외감과 외로움으로 치를 떠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이비는 살판이 났다고 종횡무진 세상을 누비고 다니기 마련이다.

아마 십여 년쯤 됐을 것이다. 그 무렵의 어느 날 ‘신천지예수교 증거 장막성전’이라는 명칭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저런 기술자들에게 넘어가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을 못했다고나 할까.

민주화가 어지간히 정착된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게 평소의 내 생각이었다. 민주화가 완전히 이루어져서 억울함에 치를 떨거나 슬픔을 깨무는 사람이 없어지면 종교도 함께 없어질 거라는 생각조차도 나는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바보천치 같은 생각이었다. 모든 분야에서 자동화가 완성되면 사람은 편안하게 행복하게 날마다 콧노래나 부를 거라는 예측만큼이나 멍청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신천지예수교 증거 장막성전’은 증명하고 있었다.

오래 전에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찰리 채플린이 예언했듯이, 산업의 기계화 내지 자동화는 사람을 보다 정교한 노예로 만들어 왔다. 게다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식의 이른바 핵가족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돈만 있으면 된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이제 외로움과 씨름을 벌여야 했고, 소외감과 싸워야 했으며, 상대적 박탈감으로 치를 떨어야 했다.

상위 1퍼센트가 전체 자본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란 누구에게 물어봐도 비정상임이 분명하다. 비정상임이 분명한데도 국가는 정상화에 관한 논의를 포기해 버렸다. 신자유주의 사상이 지구촌을 덮친 이후 비정상은 대부분 정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아왔던 착취의 기술은 경영기법으로 포장되고 선전되면서 합법화의 길을 착착 밟아 왔다.

 

풍차
풍차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세상은 이제 외로움과 소외감과 박탈감으로 밤잠을 못 이루며 지금 여기 이런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가난하고 권력이 없어서 소외감을 느끼는 것만도 아니다. 먹고 사는 데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사람도 자기보다 부자인 사람 앞에만 서면 고개를 못 들고 겉돈다. 최고의 권력기관이라고 하는 검찰 내부에도 인사상의 불만 등 각종 이유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외로움과 박탈감 그리고 소외감을 공략해 온 신천지 교주는 뭐랄까, 조금 좋게 말해주기로 하자면 굉장히 영리한 전략을 개발했던 거라고 여겨진다. 외롭지? 내가 손 잡아줄게. 다른 세상을 꿈꾸지?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봐. 다정한 눈길로 바라봐 주며, 따뜻한 손길로 어깨를 토닥이는 그 마음에 위로받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코로나 19의 습격이 없었다면 그 집단은 아마 국가적 차원만으로는 손도 대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조직으로 덩치를 키웠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4차산업이다 뭐다 성장 위주의 정책은 이제라도 그만둬야 한다. 돌아보면 금세기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인간 삶의 질은 형편없이 낮아지고 말았다. 마치 금세기 내에 지구촌의 모든 자원을 바닥이라도 내 버리겠다는 듯이 성장, 성장, 성장만 외쳐대는 한 인간 삶의 질은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 풀린 자동차처럼 추락, 추락, 추락만 거듭하게 될 것이다.

출산율이 낮아져서 국가의 위기인 것은 아니다. 출산율이 낮아진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소외감과 외로움 그리고 박탈감은 한 개인의 감정적인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이제 국가보위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국방부 장관이 마스크 공장을 방문하는 정도의 이벤트 차원만으로는 안 된다. 전쟁을 한다는 각오로 대적해야 한다. 보수를 참칭하는 세력들이야 물론 착취의 대상이 사라지는 것이라서 악에 악을 쓰며 반대하겠지만, 그래봐야 그들은 1퍼센트밖에 안 된다. 강한 결기를 갖고 밀어붙인다면 못할 이유도 없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