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 젖어든 자연
온몸에 젖어든 자연
  • 강진수 기자
  • 승인 2020.03.1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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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미여행기-서른네 번째 이야기 / 강진수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67.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이과수 국립공원 입구. 오랜 여정 중 마지막으로 대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 이과수 폭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국립공원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면 유원지의 느낌이 한결 난다. 지도를 보며 그 넓은 공원을 한참 걷다보면, 이과수 강을 모터보트로 가로질러 폭포 근처까지 다가가는 보트 투어와 주변 아마존 밀림을 트럭을 타고 도는 트럭 투어를 패키지로 묶어 파는 매표소에 닿을 수 있다. 입장료도 꽤나 비싸지만 폭포를 보는 것 말고도 특별하게 무언가 더 하고 싶다면 그곳에서 모두 투어 프로그램들을 예약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차피 이과수에 와서 이과수 말고 돈 쓸 곳이 어디 있냐며 그 자리에서 바로 티켓들을 예약했다.

아침부터 공원을 간다고 하더라도 이과수 지역은 햇볕이 따갑고 무덥다. 강가 바로 근처라 그런지 습기는 푸에르토 이과수에 비해 조금 덜 하지만 그래도 오래 걷다보면 금방 지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트럭에 몸을 실었다. 트럭을 타고 조금 달리다보면 아마존 밀림 너머로 강으로부터 올라오는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멍하니 있던 것도 잠시, 트럭은 바로 밀림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트럭이 한창 덜컹거리며 아마존을 탐험하고 있을 때, 인디애나 존스에나 나올 것 같은 옷을 입은 투어 가이드가 마이크로폰을 들고 밀림에 대해 설명했다. 아마존에 사는 동식물 종류, 면적 등등 개괄적인 설명을 하다가 트럭이 잠시 중간 중간 멈추면 가이드가 동물이나 식물을 하나씩 가리키며 이름과 특징을 덧붙였다.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그 와중에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다양한 종류의 나비다. 날개가 형광 빛으로 화려한 나비들이 나풀나풀 날아다녔는데, 가이드가 말하길 아름다운 외양과 달리 날개에 독이 묻어있어 함부로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래도 이 나비들은 사람이 신기한지 나와 형의 어깨와 발에 가만히 내려앉아 쉬다가곤 했다. 그러면 우리들은 숨도 안 쉬고 그들이 날아갈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마음 같아선 아마존 안쪽 깊숙이 더 많은 생명들과 마주해보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런 투어만으로도 충분히 아마존을 괴롭히고 훼손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다행히 트럭은 아마존 주변의 길만 이용해서 오고 다녔지만, 그래도 이 길을 만들기 위해 또 몇 그루의 나무들이 자리를 내어줬을까.

트럭은 보트 선착장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긴 나무 데크를 따라 걷다보니 보트가 정박해있는 작은 선착장이 나타났다. 탑승에 앞서 안내원들은 소지품을 넣을 커다란 비닐 주머니와 우비를 챙겨줬다. 우비를 단단히 입고 안내원에게 옷은 별로 안 젖겠죠, 라고 묻자 그가 별말 없이 씩 웃음을 지었다. 그 뒤에 있던 다른 안내원이 내게 웃으며 말했다. 샤워한다고 생각하세요. 한 마디로 안 젖는 곳이 없을 거라는 뜻이었다. 설레는 가슴으로 보트에 올라앉자 선장이 준비됐느냐고 한 번 소리 지르고 나서 배가 요동쳤다. 출발하는 것이다. 선장의 목소리는 꼭 해적의 것 같았고, 탑승객은 모두 새로 들어온 해적단인 마냥 마구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며 강바람을 즐겼다.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커다란 바위를 끼고 살짝 돌자 널따란 강 저편 거대하고 웅장한 폭포의 모습이 드러났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폭포인 이과수는 멀리서 봐도 그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폭포의 낙차가 북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보다도 훨씬 커 그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열대구름처럼 몽실몽실 피어오르고 있었다. 보트는 이과수 폭포 근처까지 갔다가 뱃머리를 돌려 바로 옆쪽 상대적으로 작은 폭포 앞으로 달려갔다. 말로는 작다고 하지만 그 폭포 줄기 또한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조차 없는 크기였다. 보트가 당장이라도 뒤집어질 정도로 심하게 출렁였으나 선장은 다시 큰소리로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러더니 그 작은 보트가 커다란 폭포 밑을 가로지르는 것 아닌가. 물줄기가 하도 거세 온몸이 물에 젖는 것은 물론, 폭포 밑에서는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폭포를 빠져나오더니 선장이 이제 그만 갈까, 라고 물었다. 여기서 물러날 해적단원들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한 번 더’를 외쳐댔다. 신난 선장과 함께 우리는 두 번 더 샤워를 했다. 그러고 나니 아무것도 안하고 보트를 타기만 했는데도 온몸이 완전 탈진 상태였다. 누군가 위에서 내게 자꾸 무거운 짐 덩어리들을 내던진 것만 같은 느낌. 선원들은 다시 노래를 부르며 강바람에 몸을 말렸고, 선착장에 돌아올 때에는 이미 땡볕과 바람에 옷은 거의 말라있었다. 보트에서 내려 다시 나무 데크를 걸어 올라왔다. 고운 노란색 나비 백여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올라 나와 형 주변을 감싸 돌았다. 자연이 주는 선물이 이런 걸까.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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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투어를 모두 끝내고 숲속 작은 벤치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미리 숙소에서 간편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왔는데 보트를 타고나니 기력이 빠져 바로 먹지 않고 잠시 벤치에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웬 불청객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코아티’라고 이과수에 많이 사는 너구리인데 꼬리가 길고 몸이 통통하며 손톱이 매우 날카롭고 길다. 그래서 이과수에 있는 사람들은 코아티를 예뻐하면서도 절대 가까이 가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손톱으로 공격을 당하기 때문이다. 나와 형 또한 코아티의 폭력성을 익히 알고 조심하고 있었는데, 피곤해서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이 코아티 한 마리가 우리의 샌드위치를 노린 것이었다.

온 줄도 모르고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내 손 근처까지 코아티는 소리 없이 다가왔다. 그러곤 샌드위치가 든 비닐봉투 냄새를 한 번 스윽 맡더니 바로 이빨로 물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주변 사람들은 ‘어, 어’ 하다가 안쓰러움과 놀라움이 섞인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때 내겐 왜 쓸데없는 용기가 생겼을까. 아마 이게 유일한 점심이라는 생각이 나를 덮쳤을 것이다. 그리고 국립공원 내에는 음식을 사먹을 곳도 별로 없고, 있더라도 무척이나 비쌌다. 그래서 나는 이미 코아티 입에 물려 있는 비닐봉투와 샌드위치를 낚아채 움켜줬다. 코아티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샌드위치를 놓지 않으려 했지만, 그 상황에서 내게 나타난 초인적인 힘은 대단했다. 코아티와의 줄다리기에서 이긴 나는 샌드위치를 되찾았고, 코아티는 분하다는 듯이 공격 태세를 내게 갖추다가 그만 돌아서 도망갔다. 아마 점심을 잃은 내 성난 얼굴에 코아티가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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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이 함성을 지르며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줬다. 칭찬받을 일도 아닌데 말이다. 역시나 형은 내 뒤통수를 한 번 딱 치더니 위험하게 왜 그런 짓을 하냐고 꾸짖었다. 다행히 상처를 입진 않았으나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야생동물에게 할큄을 당하거나 물리면 당장 큰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일단 샌드위치를 구해냈으니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빵 왼쪽 귀퉁이에 선명한 코아티의 이빨 자국. 그 부분을 넉넉히 떼어내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우걱우걱 먹어치웠다. 우여곡절 끝에, 이과수 폭포의 하이라이트인 ‘악마의 목구멍’을 보러 갈 체력이 완전히 채워지는 기분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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