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탐방기] 제천국제음악영화제 1편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전국의 영화제를 탐방한 2019년. 올해는 그 탐방기를 느린 호흡의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 이번 세 번째 영화제의 주인공은 2005년에 시작되어 작년에 15주년을 맞이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8월 8일부터 13일까지 6일간 펼쳐진 음악영화축제의 현장으로 다 함께 떠나보자.
영화제 탐방기 시리즈를 봐온 독자라면 필자가 졸업을 앞둔 4학년임에도 영화 동아리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 테다. 졸업 전 마지막으로 후회가 남지 않을 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어간 영화 동아리 ‘연시’는 학교 도서관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제를 주최하는 단체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을 즐기는 동아리인 만큼, 전국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참석하는 것도 중요한 행사 중 하나다. 물론 학생인데다 전국 곳곳을 모두 돌아다니기엔 어려움이 있어 몇 개의 영화제를 골라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바로 첫 번째 영화제 탐방기를 장식한 전주국제영화제와 8월의 제천국제음악영화제다.
아마 영화제 중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가장 친숙하고 대표적일 것이다. 왜 전주와 제천인지 궁금할 수도 있을 텐데, 전주국제영화제는 5월의 연휴에 열리고 제천국제영화제는 8월의 여름방학에 열린다. 학생에게는 최적의 기간인 것. 사실 동아리에 들어가기 전엔 제천에서 영화제가 열리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제천은 관광지로 크게 유명하지 않고, 음악영화라는 주제가 확실해 영화제 자체의 호불호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분야여도 비슷한 영화를 연속으로 보기엔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사랑하고 음악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은 꾸준히 제천에 방문하고 있다. 재방문율이 높은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며, 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이제는 스트리밍 서비스 덕분에 집에서도 수많은 영화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손이 닿지 않는 세계의 다큐멘터리와 독립 영화,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아 이런 영화가 있다는 것조차도 알 수 없는 영화들이 영화제엔 있다. 제천국제영화제에는 어디서도 쉽게 만나볼 수 없는 100여 편의 음악영화가 있고, 청풍호반과 동명로의 무대도 있다. 이번엔 ‘미스터리 유니버스’라는 이름으로, 미지의 우주 어딘가에서 태어나 예측할 수 없는 궤도를 그리며 떠돌다 우리 곁에 온 독보적 개성의 뮤지션들을 초대했다. 단독콘서트부터 페스티벌까지 많은 공연을 다녀봤지만 호수가 있는 야외에서의 공연만큼 낭만적인 무대는 없었다.
동아리 친구들은 주말동안 제천에 머물기로 했지만 필자는 미스터리 유니버스 공연을 보기 위해 하루 먼저 내려오기로 결정했다. 나 홀로 여행은 오랜만인데다 제천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 은근한 긴장이 되었다. 숙소를 알아보니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 아니라 흔한 게스트하우스조차 없었다. 홀로 멀리 떨어진 펜션에 머물 수는 없고 모텔도 위험할까 겁이 나 어쩔 수 없이 근처 사우나를 알아보았다. 그렇게까지 해서 꼭 가야 되느냐는 질문도 숱하게 들었지만 음악 영화제인 만큼 음악 공연을 놓칠 순 없었다. 음악과 영화가, 음악영화가 좋은 걸 어떡해.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길엔 배철수의 음악캠프 라디오를 들었다. 원래 라디오를 듣지 않는 편이지만 왠지 그러고 싶었다. 하나의 분야를 깊게 들어가 본 이의 식견과 겸손에 감탄하다 오랜만에 듣는 팝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혼자라도 떠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제천. 하지만 길치는 어딜 가지 않았다. 처음 와보는 곳인데다 혼자라서 길을 찾기엔 겁이 났다. 일단 택시를 타고 영화제 부스가 있는 극장에 가려는데, 기사님이 택시비는 비싸다며 어떤 버스를 타면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이렇게 친절할 수도 있는 걸까. 요즘 ‘타다’ 서비스 문제를 두고 찬반양론이 나뉘며 불편했던 택시 서비스 경험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승차 거부나 거친 운전 등등 참아왔던 소비자의 불만이 수면 위로 오른 것이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시스템의 문제일 뿐 개개인 모두를 하나의 특징으로 묶어 비하하거나 매도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본질이지 않을까.
여러 생각을 하며 영화제 부스가 모인 극장에 도착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싶더니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촬영지였다. 영화 속 주인공은 음악 영화제에 초청된 감독이었는데, 그 영화제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인 듯 했다. 좋아하는 영화면서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사실이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제천에 오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사실이라 어쩐지 즐겁기도 했다. 혼자 낯선 곳에 와 있다는 것 자체에 신이 나 정처 없이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편임에도 굳이 맛있는 식당을 찾지는 않았다. 일행이 있다면 더 좋은 곳, 더 맛있는 곳을 찾아야겠지만 혼자서는 슬렁슬렁 걸어 다니다 끌리는 식당에 들어가도 괜찮았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생선구이 가게가 맛있어 보여 들어갔더니 사장님은 제천에 처음 생긴 생선구이 집이라며 자부심을 뽐내셨다. 맞다, 여긴 바다가 있는 지역이 아니지. 바다 근처도 아닌 곳에서 생선구이를 먹는 여행객은 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에 웃음이 튀어나왔다.
사장님은 큰 배낭을 멘 필자에게 어쩌다 홀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셨다. 영화제 때문이라는 대답이 나오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반가움을 표하셨다. 영화제를 다닐 때마다 매번 느끼고 경험하는 것 중 하나였다. 영화제가 상권을 살려주니 지역주민들이 관람객들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분위기다. 그 덕에 덩달아 축제의 기분을 느끼곤 하는데, 영화제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친절함도 이에 큰 몫을 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영화와 영화제를 좋아해서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항상 행복한 얼굴이고 방문객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식사 후 공연을 보러 청풍호반에 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홀로 줄을 선 필자가 심심할까 계속 말을 걸어주는 봉사자도 있었다. 이렇게 받은 친절과 소중한 마음을, 나도 언젠가 자원봉사로 다른 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떠나온 여행엔 어쩔 수 없는 걱정과 외로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천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즐겁고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일행과 함께였다면 그 즐거움과 행복을 나눌 수도 있었겠지만, 혼자 즉흥적인 경험을 해보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좋은 여행법 중 하나인 것 같다. (다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