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똥을 먹이려던 언니
동생에게 똥을 먹이려던 언니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0.03.19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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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네 번째 이야기.

처음엔 이렇게까지 길게 쓰게 될 줄 몰랐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나도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짧게 글로 써본 적은 있지만 아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시작해서 순서대로 내 기억을 끄집어 내본 건 처음이다. 사람의 기억은 늘 한편으로 기울기 마련이어서 힘들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투른 목수가 연장을 탓하듯 나 또한 그런 엄마였다.

사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제대로 된 부모라면 그 사랑을 골고루 분배할 줄 안다. 나 역시 부모님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고 막내라는 이유로 덤까지 얹어 사랑해 주셨다. 그랬던 내가 자식을 낳아 여느 부모처럼 두 아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사랑을 주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물론, 첫째가 태어나자마나 나를 힘들게 달달 볶아먹은 탓도 있다. 내가 엄마라는 자리에 적응하기도 전에 너무 혹독한 시험에 들게 했던 거다. 신은 나같이 미숙한 엄마에게 너무 버거운 아이를 주셨다. 그 결과 아이와 나는 서로에게 한참 동안이나 상처를 주고받았다.

둘째가 태어나고 그 아이를 바라보며 한없이 사랑스럽고 경이롭고 행복해 했던 기억이 난다. 첫째를 키우면서 느꼈던 감정과는 너무나 대비되고 동떨어진 것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게 자식이라는 그 말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열이 나도 해열제만 먹이면 순하게 열이 떨어졌고 어쩌다 울음을 터트릴 때도 입술을 옹다물고 작은 소리로 몇 번 흐느끼는 게 다였다. 어쩌다 힘든 일이 있거나 몸이 아플 때도 고 작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으면 거짓말 같이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받곤 했다. 철없던 엄마는 예쁘고 좋은 게 좋고 밉고 힘든 건 싫었다.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누구나 순식간에 철이 들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1살일 때 엄마 나이 1살, 아이가 2살일 때 엄마 나이 2살… 엄마도 이렇게 아이와 함께 자란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된 엄마는 없다.

한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친정엄마가 오시기로 한 날이라 욕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첫째가 안방 문을 잠가 버렸다. 손잡이에 달린 버튼을 꾹 누르고 밖에서 닫아 버리면 문이 잠겨 열리지 않는 문이었다. 안방에는 둘째가 자고 있었다. 당황하며 열쇠를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방 안에서 둘째가 깨서 애앵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보이지 않자 불안한지 조금씩 더 큰 소리로 울었다. 다급해진 나는 3층 주인아주머니에게 맨발로 뛰어 올라가 문이 잠겼다고 도움을 청했다. 아주머니는 아주 귀찮다는 듯 그걸 왜 여기 와서 찾느냐고 했다. 다시 맨발로 뛰어내려와 울면서 열쇠를 찾았다. 그때 엄마가 오셨다. 상황을 파악한 엄마는 과일칼을 들고 와서 안방 문틈으로 그것을 집어넣더니 톡 하고 문을 여셨다. 방에서는 둘째가 낑낑 거리며 몸을 뒤집고 있었고 혼자서도 잘 놀고 있는 중이었다. 그냥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이 첫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할머니 오시는 날 꼭 이렇게 말썽을 피워야 돼?!!”

“그만 해라. 애가 너 때문에 더 놀랬다. 이거 안 보이니?”

그제야 나는 첫째가 부엌 한 귀퉁이에서 바지에 오줌을 싸고 서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순간 아이에게 미안했다. 엄마가 너무 당황해서 그랬어. 너도 놀랐구나 미안해. 이제 다 괜찮아, 라고 말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못했다. 도대체 몇 살인데 바지에 오줌을 싸냐고 소리를 질렀다. 친정 엄마는 아이를 욕실로 데려가 따뜻한 물로 씻겨 나와 밥을 먹이고 잠들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나자 엄마는 내 엉덩이를 한 대 탁 때리시더니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아이가 미운 짓을 할 때 자꾸 야단을 치면 더 엇나간다. 자식이 미워도 속으로 삭혀야지 그걸 밖으로 꺼내놓고 그렇게 혼내는 거 아니다. 뭘 잘못했는지 스스로 알게 한 다음에 혼을 내야지 디립따 소리부터 지르고 벌세우면 엄마가 나를 미워해서 저러는구나, 그런 생각만 하게 된다. 엄마가 너희들 키울 때 손으로 한번이라도 때려본 적 있냐. 정말 잘못했을 때는 회초리를 만들어 놓고 손바닥 몇 대, 뭐 이정도면 모를까 손으로 엉덩이 때리고 그러는 거 아니다. 내 자식 내가 함부로 하면 남도 니 자식한테 함부로 한다. 엄마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어렸을 때 너는 어땠는 줄 아냐. 그놈의 고집이 황소심줄보다 더 했다. 오죽하면 이름을 세 번이나 바꿨을까(나는 진짜 이름이 세 개나 된다). 무슨 지는 천하에 효녀로 큰 거 같구나, 너 아주 웃기는 애다.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요.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상식적인 애들만 키워봤잖아요(엄마는 이 부분에서 ‘그건 아니지’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가만있는 지 동생을 뻑 하면 때리고 할퀴고 내가 이유 없이 이러면 나쁜 엄마죠. 근데 쟤는 누구 닮아 저러는 건 지 정말 모르겠다고요. 엉엉….

누굴 닮긴 누굴 닮아 너 닮아 그러지. 애가 한창 사랑 받을 나이에 동생이 생겨서 그런 거야. 너도 언니하고 두 살 터울이잖니. 너 태어나고 다들 막내라고 예뻐하니까 한번은 니 언니가 아주 기가 찬 짓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밖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왠지 기분이 이상한 거야. 그래서 방에 들어가 보니까 너희 언니가 뽈뽈 기어 다니는 니 앞에다 오강을 갖다놓고 글쎄..(엄마는 여기까지 이야기 하고나서 혼자 막 깔깔 웃고 난리셨다) 먹어라. 먹어라. 이러고 있는 거야. 오강에다 지가 똥을 싸놓고 그걸 너한테 들이밀며 그러고 있더라니까. 얼마나 미웠으면 그랬겠냐. 정신이 번쩍 들어서 그때부터는 니 언니 앞에서 엄마 아빠가 다 조심했다는 거 아니냐. 그게 다 너 똥 안 먹이려고 그런 거다(엄마는 뭐가 그리 재미있다는 건지 눈물까지 흘리며 한참을 깔깔 웃으셨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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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 이야기를 듣고나니 그동안 내가 첫째 앞에서 둘째를 너무 대놓고 예뻐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둘째에게 똥을 먹이지 않으려면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반성도. 하지만 그렇다고 내 태도가 갑자기 달라지진 않았을 거다. 그 이후로도 나는 알게 모르게 편애를 했을 테고 큰애는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았을 거다. 사실 나는 좋은 엄마가 될 만큼의 역량이 부족했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눈물 콧물 범벅이 돼가면서 컸다. 아이들과 함께 사춘기를 겪었고 아이들과 함께 중2병을 앓았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지금도 나를 친구처럼 대한다. 죽어라 붙어 싸우고 떡볶이를 함께 만들어 먹고 게임을 같이 하며 옷까지 나눠입는 그런 친구 말이다. 그러다 아이들이 군대를 가게 되면서 우리 관계가 ‘엄마와 아들’로 조금 성장한 것 같기도 하다. 극한 고생을 해보니 엄마가 막 고맙고 귀하게 느껴지고 그랬나 보다.

요즘은 아이들이 가끔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엄마 맞아?”

내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말일 테다. 물론 나는 예전의 그 엄마가 아니다. 이제는 군대 갈 나이가 되었… 아니구나. 암튼 이제는 어느 정도 어른이 되었다. 감정에 휘둘려 방방 뛰지도 않고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아도 잠만 잘 잔다. 친구들을 불러다가 왁자지껄하게 생일파티를 해주지도 않는다. 그냥 ‘엄마의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할 뿐이다. 사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책에서는 ‘좋은 엄마란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고 스스로의 행복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엄마’라고 했다. 맞는 말이지 싶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너무 가까이 서 있는 것도 때론 상처가 될 수 있다.

아이 둘을 키웠을 뿐인데 나라 하나를 다스린 것처럼 느껴진다. 때론 폭정을 휘둘렀고 때론 민주주의를 표방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둘 다 독립국으로 떨어져 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지금 장기집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최악의 엄마로 기억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내가 잘했고 못했고는 먼 훗날 역사가 판단해 주길 바란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관심은
솜처럼 따뜻하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편애는
가시처럼 날카롭다

<명심보감 중에서>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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