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꿈
서울의 꿈
  • 류지연 기자
  • 승인 2020.03.20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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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김용주 기자, 그래픽=이주리 기자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영화 ‘라푼젤’을 보면 라푼젤이 한 주점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꿈이 있어’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두 달 전, 아직 중국에서 서울을 오기 전에 꿨던 꿈.

두 달 전(1월 중순)이면 중국에서 코로나19의 영향 없이 일상을 지내던 시절이다. 그땐 코로나19를 피하기 위해 서울행을 결심했던 게 아니고, 그저 아이와 오랜만에 서울에서 놀거리를 체험하며 병원 진료를 받으려던 계획이었다.

서울에 가면 아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수영장에 한 번 가고, 놀이방이 딸린 커다란 찜질방에 가서 하루쯤 시간을 보내고, 실내동물원에 가서 동물들 먹이주기 체험도 하고, 중국에 가기 전에 살았던 동네로 가서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 반나절쯤 아이를 친구들과 놀게 하고 그동안 회사 동료들과 지인들을 만나야지 하는 계획이 있었다.

필자의 인생빙수인 도쿄빙수 집에서 파는 토마토빙수, 처음엔 토마토와 빙수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한번 먹어보면 설탕 살짝 친 토마토와 우유 얼음의 조화가 일품이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필자의 인생빙수인 도쿄빙수 집에서 파는 토마토빙수, 처음엔 토마토와 빙수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한번 먹어보면 설탕 살짝 친 토마토와 우유 얼음의 조화가 일품이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먹고 싶은 건 또 얼마나 많았던가. 아이가 좋아하는 순대국과 일식불고기덮밥, 한국식 피자부터 시작해 나의 인생빙수인 도쿄빙수, 곱창볶음, 골목식당에 나왔던 포방터 돈까스 풍의 두툼한 치즈돈까스 등등. 오랜만의 서울행이니 뭐를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아 골목골목 새로운 식당들을 많이 가봐야지 했던 터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입학 20주년을 맞아 대학 친구들도 만나고, 중국에서는 너무 비싸고 별로라 하지 못했던 파마도 하고 가기를 꿈꿨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국의 ‘한인 미용실’이 너무 비싸다. 가령 남성 커트의 경우 한인 미용실이 최소 100위안(한화 약 1만7000원)이라면 중국 미용실은 20위안(한화 약 3400원) 정도라고 한다.)

그렇게나 오색찬란했던 나의 꿈은 한국에 오는 순간 다 빛이 바랬다. 바로 코로나19 때문이다.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근 두 달이 되어가지만 그동안 친구를 만난 건 딱 세 번이다. 도착해서 첫 두 주(2월 초순 전후)는 혹시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 저어할까 싶어 만나지 못했고, 그 다음 한 주(2월 중순) 동안은 활동을 재개해 베프 J와, 중국살이에 합류한 친구 H를 만났다. 그런데 2월 18일, 31번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갑자기 확진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확진자 숫자가 몇 시간 만에 몇 백 명씩 추가되는 판국에 친정 근처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뜨면서 동네에서도 위기감이 심화됐다. 아이가 막 다니기 시작한 학원이 임시 휴업을 했고, 전국 어린이집‧유치원 휴원을 시작으로 모든 아이들의 개학이 미뤄졌다.

3월 첫 주에 잡혀있던 일정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취소가 되었다. 만나려던 고등학교 동창들은 아이의 어린이집‧유치원 휴원으로 인해 친구들의 발이 묶인데다가 한 친구의 지근 거리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안전을 위해 취소했다. 또한 아이와 보러가기로 굳게 약속했던 뮤지컬 '번개맨'은 남편의 결사반대로 인해 예매를 취소했다.

회사 방문계획은 회사 내 한 직원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해서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나 혼자 마스크를 쓰고 보러 가려던 뮤지컬 ‘드라큘라’도 눈물을 머금고 취소해야 했다.

대규모 확진자 발발 이후로는 딱 한 번, 친구를 만났을 뿐이다. 중국에서 새로 사귄 친구 Y, 나와 같은 날 한국으로 들어와, 같은 나이의 아이를 데리고, 같은 신세로 하루하루 언제 중국에 돌아갈지 생각이 많은 친구다. 만나기 며칠 전, Y의 중국 아파트에서는 한국에서 귀국한 주재원 가족을 중국 사람들이 아파트에 못 들어오게 하고 호텔로 쫓아낸 일이 있어 Y는 상당히 격앙되어 있었다. 그 즈음 상해에서는 사전 통보 없이 3월 2일 저녁부터 갑자기 한국발 승객 전원을 상해 호텔에 격리 조치하는가 하면, 두 개의 공항(포동, 홍교) 정책이 다르고 항공사에 따라서도 지정(호텔) 격리 적용 여부가 달라지기도 한다. 지정 격리였다가 자가 격리로, 자가로 각자 복귀시키다가 버스로 구역별 승객을 모아 한 번에 실어 나르는 등 정책이 매일매일 바뀌고 있어 과연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지, 언제 돌아가야 할지 불안함이 커져온다.

 

상해 비상대책 위원회에서 공지한 3월 2일 및 3월 4일 입국 조치 현황. ‘매일 조치되는 상황이 변경되고 있어 본 공지는 발표 당일에 한해 유효’하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출처: 카카오톡 신소주한인정보방)
상해 비상대책 위원회에서 공지한 3월 2일 및 3월 4일 입국 조치 현황. ‘매일 조치되는 상황이 변경되고 있어 본 공지는 발표 당일에 한해 유효’하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출처: 카카오톡 신소주한인정보방)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3월 16일부터 북경에서는 모든 외국발 입국자에 대해 지정(호텔) 격리로, 비용도 자비 부담으로 변경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현재 중국은 원론적으로 지방정부가 각자 알아서 정책을 집행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북경이 유일하지만 다른 성이나 시정부에서 북경을 따라갈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주중대한민국대사관에서 공지한 북경시의 변경된 입국 조치 현황. 국내 언론에서도 ‘북경에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라는 멘트와 함께 관련 기사들이 노출되었다. (출처: 카카오톡 신소주한인정보방)
주중대한민국대사관에서 공지한 북경시의 변경된 입국 조치 현황. 국내 언론에서도 ‘북경에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라는 멘트와 함께 관련 기사들이 노출되었다. (출처: 카카오톡 신소주한인정보방)

2주 간 격리는 사회의 안전을 위해 그렇다 치더라도, 인간적으로 거주지가 있는 사람은 자기 집은 갈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지만 중국에서는 한갓 외국인일 뿐인 나의 목소리가 울릴 여력이 없다. 그나마 카카오톡의 단체방인 ‘신소주 한인정보방’과 ‘소주 아나바다방’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뭉쳐서 정보를 교환하고 단체행동(부당한 처우를 받았을 때 중국 측에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의견을 개진하도록 외교부에 민원 넣기, 영사관에 건의 등)을 하기도 함에 위안이 된다. 단체방에서 격리된 이들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 등 훈훈한 소식을 들으며 마음의 절반쯤은 소주에 열어두고 시국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봄이 와서 소주는 한껏 따뜻해지고 꽃이 활짝 피었다고 한다. 소주의 봄을 즐길 수 있을 날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류지연 님은 중국 소주에서 살다가 이번 바이러스 사태로 서울로 돌아와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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