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발한 홍매화
만발한 홍매화
  • 박석무
  • 승인 2020.03.2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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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홍매화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박석무] 30년 가까이 아파트에서 살다보니,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가꾸지 못했던 세월이 길기도 했습니다. 노령에 이르러서야 변두리의 단독주택에서 기거하다보니, 몇 평짜리 마당이 있어 두어 그루 나무를 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지인이 자기 정원에 귀한 홍매화 몇 그루를 심었다고 자랑하기에 우리 집에도 한 두 그루 심을 여백이 있으니 구해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더니, 며칠이 안 되어 강원도 정선 땅에서 옮겨온 12년짜리 홍매화라면서 뜨락에 심어주는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첫해는 두어 가지에 몇 송이의 꽃이 피더니, 지난해에는 절반이상의 가지에 모양도 예쁘게 붉은 매화꽃이 피었는데, 금년의 춘분날에는 온 가지에 다닥다닥 붉은 꽃이 만개하였습니다. 모양이나 형태야 설명할 길이 없고, 그윽하고 짙은 향기가 온통 집안에 가득하다 보니 붉은 매화의 격조가 저렇게 높은 것인가를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매화 너와 함께 벗을 삼고 싶었으나 / 欲與梅爲友
너의 품격에 맞지 못함을 항상 걱정했노라 / 常恐不稱渠
이제라도 끓여 먹는 밥일랑 멈춰두고 / 從今休火食
맹물만 마시며 신선되는 책만 읽어야 겠네 / 飮水讀仙書

매화의 품격을 신선에 비교하고, 끓인 밥 먹노라면 신선이 될 수 없으니, 매화의 품격에 가까운 신선이 되려면 신선되는 책이나 읽어야겠다는 어느 시인의 마음이 겸손해서 참 좋아 보입니다.

1809년, 기사(己巳)년은 다산의 나이 49세로 지난해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기고 한 해가 지나고 이른 봄이 되자, 조금의 여유를 느끼며 매화를 구경하며 3편의 시를 읊었습니다.

꽃다운 연못 초가집이 참으로 허전해서 / 芳池草閣只蕭然
대 가꾸고 솔 심기가 지난해부터 일이라네 / 糞竹栽松自去年
풍진에 잊고 살면 모두가 취객이요 / 塵裏相忘皆醉客
산속으로 들어가면 그게 바로 고졸한 스님이네 / 山中忽過是枯禪
좋은 시구 찾아 겁 없이 소식과도 겨뤄 보고 / 猥將佳句方蘇軾
묵은 경전 뒤적이며 정현도 반박 했네 / 謾挹殘經駁鄭玄
한 그루 매화가 그렇게도 청고하기에 / 一樹梅花淸似許
향 피우며 단정하게 흰 구름 가에 앉았노라 / 燒香端坐白雲邊

「매화(梅花)」라는 제목의 3편 가운데 마지막 시입니다. 청고(淸苦)한 매화의 기품을 신선에 비기며, 신선되고 싶은 마음에 향 피우고 흰 구름 쳐다보며 앉아 있는 스님의 모습으로 매화를 읊었습니다.

문(山門)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라도 / 崩風墜雨山門夕
한 그루 매화만은 그 향기 그대로라네 / 一樹梅花自在香

첫째 편의 마지막 구절에서는 자신의 고단한 신세를 매화에 비기고 온갖 비방과 음모에 시달리면서 귀향 살이나 하고 있지만, 마음과 정신은 변함없이 매화처럼 정정하게 살아가고 있노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기도 참으로 불순하고, 세상에는 지금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의 창궐로 온 세계가 온갖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지만, 우리 집 뜨락의 홍매화는 지난해보다도 더 많은 가지에 빈틈없이 붉은 매화꽃이 향기와 자태를 뽐내며 의젓하게 피어났습니다. 남의 불행이 자신의 행운이라 여기면서 온갖 술수를 부려 이런 때에도 돈이나 벌어보자는 고약한 상술(商術)을 비난이라도 하는 듯, 홍매화는 곱고 아름다운 신선의 모습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마스크로 돈을 벌고, 전염병을 악용한 돈벌이에 경종을 울리는 듯, 붉은 매화는 붉은 마음으로 피워, 끓인 밥 먹고 살아가는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만 같습니다. 신선은 못되어도 이런 때는 헛된 욕심이라도 안 부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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