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
[신간]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
  • 이주리 기자
  • 승인 2020.03.27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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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파쥬 지음/ 지연리 옮김/ 김영사
ⓒ위클리서울/ 김영사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트위터 하는 노숙인’ 크리스티앙 파쥬의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는 2015년부터 3년 반 동안 저자가 파리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쓴 실화를 엮은 책이다. 글쓰기가 사치처럼 여겨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트위터에 노숙의 일상을 올리며 원고를 축적해온 독특한 결과물이다.

저자 크리스티앙 파쥬는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군 제대 후 스무 살부터 파리에서 살면서 노숙인과 불법 체류자들을 위해 투쟁했고, 엠마우스를 설립한 피에르 신부의 지원을 받아서 유엔 해비타트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20대 중반에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투사로서의 삶을 접고 유명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로 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자의 삶은 풍요롭고 평탄했다. 깨끗한 아파트에서 살았고, 아들이 있었으며,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결혼 생활이 깨지고 직장을 잃은 후 살던 집에서 쫓겨나면서, 크리스티앙 파쥬는 거리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그는 거리에서 세 번의 겨울을 보냈다. 먹고 자고 씻는 일은, 이제 평범한 일이 아닌 힘겨운 일이었다. 마약의 유혹을 뿌리쳐야 했고, 알코올 중독자들과 뒤엉켜 지내야 했고, 2015년 파리 테러의 한복판에서 시람들의 비명을 들으며 갈 곳이 없는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 집을 가진 사람과 연애도 했으며, 정말로 있을까 싶은 ‘착한 사마리아인’도 만나는 행운도 누렸다.

이 책은 절망과 희망이 뒤엉킨 대도시 거리에서 한 사람이 살아낸 ‘밑바닥 생활기’다. 3년 반 동안의 노숙 생활 끝에 저자는 냉장고가 딸린 작은 집을 구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밤마다 위협받을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거리에서 저자가 겪은 삶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었고, 무해하게 살고자 애쓰는 삶이었고,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삶이었다. 그리고 궁극에는 사람에게 기대어 사는 삶이었다. 오늘내일을 모르는 삶을 살아낸 그는 독자에게 묻는다. 대도시에 사는 우리가 외면하는 삶은 무엇인가,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

이 책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은 ‘고통’이다. 크리스티앙 파쥬는 막연히 예상했지만 자세히 알지 못했던, 노숙인의 일상과 속마음을 담담히 풀어놓는다. 동전을 건네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는 행인들의 단호함, 잠자는 등을 걷어차는 경찰들의 비정함을 면밀히 보여주고, 등교하는 학생들과 마주하기 않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며 “아이들에게 실패한 내 인생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고백한다. 건강검진을 위해 의사를 만나는 것이 또 다른 고통이 될 줄은 노숙인이 되기 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정신적 고통뿐만이 아니다. 길바닥에서 겪어야 하는 육체적 고통은 더욱 가혹하다. 저자는 추위에 발이 얼어붙는 쓰라림을 견디며, 거리에서 목숨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 “발가락 끝까지 따뜻한 피를 내려보내기 위해” 토끼뜀을 반복했고, 몸에 붙은 빈대를 없애기 위해 병원을 찾아 헤맸다. 낮에는 20~30킬로그램 되는 배낭을 메고 다녀야했고, 밤이면 자갈을 깔고 자면서 좀도둑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했다. 그 와중에도 한 달에 60만 원가량 나오는 정부 보조금의 일부를 떼어 저축까지 했다. 밥벌이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가 개의 귀를 담요로 덮어주는 장면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거리의 삶을 대변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냄새’다. 냄새는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형편을 말해준다. 노숙하는 기간이 오래될수록 ‘노숙 냄새’가 스며들기 마련이다. 매일 양말을 갈아 신을 수 없고, 치약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노숙인에게 섬유유연제의 향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한때 와인의 향을 음미하던 저자가 지린내를 없애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신분이 되었다는 점은, 빈부격차의 상징적 코드로 ‘냄새’를 보여주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고 모든 노숙인이 더러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 거라는 생각은 오해다. 퀴퀴한 냄새는 타인의 눈총을 받기에, 의외로 많은 노숙인들이 청결을 유지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저자는 선교회에서 샤워를 하기 위해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고,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흰색 옷을 멀리하며, 배낭에 깨끗한 내의를 가지고 다녔다. 노숙인에게 청결은 그들에게도 존재하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노숙인이 누구보다 자주 마주치게 되는 풍경은 ‘죽음’이다. 공원 나무에 목을 매단 청년, 치매에 걸린 노인, 단도에 찔려 숨을 거둔 남자, 추위에 떠돌다가 동사한 여자 등, 저자는 길거리에 밥 먹듯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책은 리얼리즘 소설 같으면서도 온 몸으로 쓴 르포르타주처럼 읽힌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저자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는 우리가 왜곡하여 알고 있었던 노숙인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이를테면 알코올 중독에 인생을 포기한 노숙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통역과 강의를 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노숙인도 있다는 것. 그들에게도 나름의 규칙과 배려가 있다는 것.

거리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고 하던 그도 결국 사람에게 위로받는다. 저자는 노숙인이 되고나서 한때 절친했던 친구의 무시를 당했지만, 시시콜콜한 농담을 나눌 수 있는 거리의 형제를 만났다. 그의 곁에는 하룻밤을 재워주겠다는 뉴스 앵커도 있었고, 거리에서 먹고 사는 법을 알려준 길바닥 세계의 큰 어른도 있었고, 퉁명스럽지만 꼬박꼬박 따스한 밥을 나눠주는 선교회의 요리사도 있었다.

20대에 노숙인을 위해 투쟁했던 저자가 40대에 갑자기 노숙인이 되어, 고난과 불평등을 고스란히 겪게 되는 과정은 실로 아이러니하다. 그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성장 우선주의와 경제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누구나 노숙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가항력적인 재해로, 잘못된 선택으로, 한 순간의 실수로, 우리는 따뜻한 샤워와 깨끗한 수건과 한 끼의 식사가 당연하지 않은 거리의 부랑자로 내몰릴 수 있다.

노숙인이 머물 자리를 없애기 위해 벤치 위에 가로대를 설치하고, 쇠꼬챙이가 달린 철책을 치며, 노숙인을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는 풍경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대에, “노숙인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포기는 우리가 사는 나라가 그만큼 노후했음을 의미한다”는 저자의 일침은 오래 마음에 머문다.

노숙인의 삶은 우리와 무관한 삶이 아닌 우리가 보듬고 보살펴야 하는 삶임이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노숙인의 삶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투명 인간 취급을 하기도 했던 거리의 사람들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가난한 삶이겠지만 아름다운 별을 보며 잠들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되, 거리의 삶 안에도 어둠만 있는 것은 아니며 빛도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기록이 소중하고 반가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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