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국화를 마시며 국화를 심는 시간
부활한 국화를 마시며 국화를 심는 시간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0.04.01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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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부활하는 국화
부활하는 국화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아침이면 국화차 한 잔을 우려내서 들고 조용히 다가가서 그 녀석을 보았다. 해가 질 무렵이면 또 국화차 한 잔을 우려내서 들고 가만히, 살금살금 다가가서 그 녀석을 보았다. 한낮에도 생각나면 뻔질나게 드나들며 보고 또 보았다. 굵은 매화 둥치에 의지해서 간신히 제 몸을 세우고 있는 미선나무, 부르기는 나무라고 하지만 보고 또 봐도 나무 같지가 않은 녀석, 억새풀이나 갈대의 대궁보다도 훨씬 가는 몸이어서 바람이 세차게 불면 그냥 쓰러져 버리는 녀석, 그래서 군데군데 매화나무를 따라가며 묶어주어야만 하는 녀석.

몸통은 젓가락처럼 가는데도 키는 한정없이 키우는 이 녀석은 대체 무슨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것인가. 아침이건 저녁이건 한낮이건 언제나 그 모양 그 꼴인 녀석의 몸을 찬바람은 부지런히 흔들어대었고, 햇빛은 이제 그만 일어나, 눈을 떠, 하고 속삭이기라도 하는 듯이 슬쩍슬쩍 스쳐가곤 했다. 햇빛이 한 번 스칠 때마다 녀석은 아마 깨어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줄기 가득 오돌토돌 좁쌀 반쪽만한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은 서리가 하얗게 내리는 속에서도 좁쌀 반쪽은 살이 올라 온전한 좁쌀 크기가 되었고, 그러고도 한참이나 세월을 소비한 어느 하루 드디어 눈을 뜨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새하얀 상고대 같은 꽃으로 변해갔다.

애리애리, 여리여리, 이런 단어들을 생각나게 하는 꽃 미선, 코로 맡아지는 향기는 없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가만히 지켜보면 온 몸으로 그윽한 향기가 느껴지는 이 꽃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뭔가가 삐죽이, 고개를 내민다는 느낌이어서 숨이 막히고, 그러면서도 어느 순각 꼴깍, 침이 넘어간다. 너무 애잔해서 쓰다듬어주고 싶고, 어디든 만져주고도 싶지만 감히, 차마 손은 내밀어지지 않는다.

 

한낮의 수선
한낮의 수선화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아침 안개가 실크커튼처럼 살짝 드리워졌을 때의 수선화를 대할 때의 내 마음 또한 그렇게 조심스럽다. 한낮의 수선화는 그냥 꽃으로 보이지만, 이른 아침 안개 속에 잠겨 있는 수선화는 꽃이 아니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성질을 규정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나는 가만히, 살금살금, 찻잔을 손에 든 채로 마치 어제 잃어버린 무슨 바늘 같은 것이라도 찾는 것처럼, 혹은 길을 못 찾는 아이처럼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마음으로 그냥 서성거리기만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 두 시간이 훌쩍 가버려 있다.

이 계절이 되면 나는 이렇게도 날마다 바쁘다. 어어 하는 사이에 시간은 벌써 저만치 훌쩍 달아나 있어 버리니, 한가해 보이면서도 엄청나게 바쁘다는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실제로도 내 몸은 많이 바쁘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아무 하는 일이 없다고, 술이나 마시게 얼른 기어 나오라고 야단이지만 그야말로 뭘 모르는 사람의, 수위를 약간 높여서 말하자면 무지막지한 자의 어쩔 수 없는 무식한 판단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꽃피는 마당을 오랫동안 소망해 온 내가 마침내 꽃 피는 마당을 갖게 되니 늘어나는 건 욕심뿐이구나 하는 생각이 가끔은 들기도 한다. 이 꽃도 마당에 심고 싶고 저 꽃도 심고 싶어진다. 어디 가서 색다른 꽃을 보고 나면 그 꽃을 기억하고 있다가 새로 사다가 심거나 씨앗이 여물 무렵이면 찾아가서 씨앗을 받아온다. 뿐만이 아니다. 한 종류의 꽃이 지고 나면 그 즉시 그 자리에서 다른 꽃이 눈을 떠야만 직성이 풀린다. 이런 내가 지난 십여 년 동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금년에는 새삼스럽게도 내가 왜 이러는 거지? 미쳤나? 의문이 슬쩍 든다.

오래 전에 난초를 유별나게 애지중지하던 한 절간의 스님을 보면서 나는 내심으로 땡중이로다, 땡중이야 했었다. 난초 도둑을 방어하겠다고 두꺼운 쇠창살에 자물쇠까지 커다란 것으로 걸어놓고도 안심이 안 돼서 무섬증이 오싹 일어나는 시커먼 사냥개까지 두 마리나 배치해놓은 꼴을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새벽 안개 속에서
새벽 안개 속에서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그는 해마다 겨울이면 난초 채집을 나서곤 했다. 내륙의 서해안 쪽 산은 안 가본 산이 없다고 했다. 제주도는 물론이고 청산도에서 보길도, 위도, 선유도 등등 서남해쪽 섬들 역시 안 가본 섬이 없을 정도였다. 그 세월이 십 년도 훨씬 넘었고, 그동안 모아들인 각양각색의 난초가 심어진 도자기 화분이 삼백여 개에 이르렀다. 그 많은 것들을 법당이나 방구석에 다 들일 수가 없어서 절간 마당 한쪽에 따로 온실을 만들었는데 가끔 도둑이 들었다. 도둑을 방지할 목적으로 사방에 쇠창살을 둘렀는데 그 모양이 사뭇 요새를 방불케 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낯선 사람을 보면 그냥 물어뜯을 듯이 달려드는 개까지 두 마리나 배치했다. 그것을 보는 내 마음에서 뜻 모를 짜증이 솟아났다. 마음공부에 전념해야 할 절간의 중이 물질을 숭배하다니 이게 뭔 넋나간 짓이냐 하는 심사였던 거다. 내가 아직은 뭘 몰라도 한참이나 모르던 시절의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은 뭔가를 제법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화초에 집중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서 그때의 스님을 떠올리고, 떠올리다 보면 부끄러움과 미안스러움과 죄송스러움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나서 민망해 한다는 뭐 그런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어쨌든 봄꽃이 막 벌어지는 이 계절이 오면 내 마음은 정신없이 바빠진다. 오래 묵혀둔 책을 좀 보자하고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딴 생각을 하고 있고,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의 맥락과는 전혀 다른 마당의 풍경을 머릿속에 끌어들이고 있고, 음악듣기에 빠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마음은 벌써 전에 콩밭을 거닐고 있는 것이니 가끔은 내가 바야흐로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선꽃
미선꽃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이 계절에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은 두 말이 필요 없는 꽃이다. 지금 피어 있는 꽃들이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지금 피어 꽃들은 나를 미치게 하는 게 아니라 조용한 서정의 세계로 인도해 가지만, 지금은 피어 있지 않은, 꽃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미래의 꽃들이 나를 서사적으로 미치게 한다고 하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미래는 어떤 경우에나 불확실하기 마련이다. 조상 대대로 사람의 관리를 받아온 화초는 다른 식물들과의 경쟁력이 없어서 특히 더 불확실하다. 불확실한 미래의 꽃을 그나마 안정적으로 소망하며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자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눈에 안 보인다고 게으름을 떨거나 때를 놓치면 꽃이고 뭐고 다 망했네, 하는 소리밖에 안 나온다는 경험이 내게는 지난 십여 년 동안 넘치도록 축적돼 있었다.

때가 됐는데도 꽃이 안 피는 낭패를 피하자면 때에 맞춰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욕망이 무시로 꿈틀거리기도 한다. 무엇인가 한 가지를 하고 방안에 들어오면 잘못 된 것 같아서 도로 다시 후딱 뛰쳐나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엇이 어떻게 잘못 된 것인지 일목요연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방에 앉아 있을 때 잘못 됐다고 생각한 것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 사라져 버리고, 전혀 다른 잘못 된 것이 눈에 보여 그것에 집중하고 있노라면 어어 이게 아닌데, 뭐였지? 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것이니, 사람이 미쳐도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으로 미칠 수 있는가 싶어 피식, 실소를 터뜨리기도 한다.

미래의 꽃들 중 특히 나의 노동을 요구하는 것은 국화다. 국화는 낭비와 사치와 조급증이 많은 식물이다. 꽃은 가을도 한참 깊어갈 무렵에나 피워내는 녀석이 아직 봄도 무르익기 전 꽃샘추위가 한창일 때 벌써 새싹을 내밀고, 보이지 않는 흙속에서는 또 새로운 뿌리를 좍좍 뻗어낸다. 가령 코스모스 같은 것들은 국화보다 먼저 꽃을 피워내면서도 아직 싹을 낼 생각조차 안 하고 있는 시기에 국화는 마치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 소녀들처럼 넘치는 생명력을 어찌할 줄 모르고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마구 뻗어나간다.

 

국호모종 임시
국화 모종 임시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그렇다고 그 많은 새 뿌리가 다 꽃을 피워내는 것도 아니다. 백합이나 튤립, 수선화나 상사화 같은 녀석들은 그대로 놔둔 채로 새끼가 너무 많이 생겼다 싶을 때 가끔 분가나 시켜주면 되지만, 국화는 매년 새로 집을 만들어줘야지 안 그러면 꽃이 반쪽이 되거나 아예 안 피어버리기 때문에, 그래서 탐스런 꽃을 보고 싶다면 매년 죄다 파내서 새로 심어줘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국화는 매년 새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 하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소망하는 특이한 식물이다.

뿐만 아니라 국화는 그 생명력과 번식력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굉장하다. 한 포기를 심어놓으면 봄에서 여름 그리고 초가을까지 최소한 이십여 포기 이상으로 식구를 늘린다. 뿌리도 없이 그냥 툭 꺾어서 흙에 꽂아놓고 한 열흘 정도만 열심히 물을 주면 어느새 뿌리를 내리고, 일단 뿌리가 생성됐다 하면 그때부터 새끼치기에 들어간다. 툭 꺾어서 꽂아놓을 때는 이게 언제 뿌리를 내리고 새끼를 쳐서 꽃까지 피워낼까 싶지만 물과 흙이 있는 한 세월은 금방이다.

뭘 몰랐던 시절에 나는 국화를 흙에 바로 심었지만, 국화의 성질을 조금 알게 된 지금은 아니다. 마당이 제법 넓다 하지만 끝 모르게 넓은 것도 아니고 보면, 그 땅을 오롯이 국화에게 내줄 수 없다는 욕심이 내게는 있다. 수선화도 피워야 하고 튤립도 피워야 하고, 수선화와 튤립이 지고 나면 새빨간 양귀비와 새하얀 샤스타데이지를 피워야 하고, 그것들이 지고 나면 각양각색의 백합이, 작약이, 모란이, 그리고 옛날 귀부인들이 머리에 꽂는 옥비녀를 닮았다 해서 옥잠이라 부르는 우아한 꽃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국화는 흙에 바로 심지 않고 작은 화분이나 스티로폼 상자에 가식을 한다.

 

목련 한 송이
목련 한 송이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이다. 작은 포트 화분과 스티로폼 상자를 있는 대로 다 끄집어내놓고, 밑에는 흙을 깔고 위에는 낙엽과 개똥 그리고 음식쓰레기 같은 것들을 섞어서 발효시킨 거름을 채운 다음 이제 막 새끼 칠 준비를 하고 있는 국화를 하나씩 좍좍 찢어서 심어놓고 이틀에 한 번씩 물을 뿌려주고 있노라면 한 달, 두 달, 흐르는 세월 속에서 녀석들은 열심히 새끼를 치고, 여름 장마가 한참일 즈음에는 어느새 화분이 터질 정도로 빵빵하게 식구를 늘려놓고 있는데 그때쯤이면 마당의 다른 꽃들은 대부분 다 철수했다. 그러면 비로소 빵빵하게 배가 부른 국화를 흙에 옮겨 심는 것이니, 어지간한 관심과 노력으로는 실패하기 십상인 게 국화농사인 셈이다.

그토록 많은 세월과 노동과 관심을 투자해서 길러낸 국화가 꽃을 피어냈을 때는 뭐랄까, 다른 종류의 꽃들과는 아주 다른 성질을 갖게 되는 것이니, 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그냥 꽃이 아니다. 내 몸이요, 내 마음이며, 내 숨결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마치 미라를 만들 듯이 한 송이 두 송이 조심스럽게 따서 말리고, 그리고 다시 꽃을 피우게 한 다음 그것을 마신다.

대개의 다른 꽃들은 한 피었다가 시들면 그것으로 끝나고 말지만, 국화를 가꿀 때의 내 마음은 지금 눈에 보이는 그 꽃만이 아니라 미래의 또 다른 꽃을 소망하고 있었기에, 내 손을 거친 국화는 일단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면서 새로운 향기를 뿜어낸다. 말리기 전의 국화 향기는 너무 강렬해서 재채기를 불러일으키지만, 말랐다가 다시 피어나는 국화는 향기가 요란하지 않고 조용하게 다만 그윽하기만 해서 뭔가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 뜨거운 물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모습은 또 그 얼마나 경이로운가.

이렇게도 나는 욕심이 많다. 한 번 죽은 녀석을 다시 살려내서 새로운 향기를 뿜어내게 하는 것이니, 어쩌면 국화를 엄청나게 괴롭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어쩔 것인가. 욕망이 꿈틀거리는 사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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