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권 보호는 거리 사진의 기본 에티켓
초상권 보호는 거리 사진의 기본 에티켓
  • 이호준
  • 승인 2020.04.0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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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호준의 ‘사진 이야기’-9회
ⓒ위클리서울/ 이호준
ⓒ위클리서울/ 이호준

[위클리서울=이호준]  ‘거리 사진(street photography)’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로망이 담긴 사진 장르다. 작은 카메라 하나 목에 걸치고 천천히 걸으며 길거리 풍경과 오고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는 건, 인간적인 풍모와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사진 애호가들은 처음에는 자연 풍경이나 꽃 같은 정물로 시작해서, 어느 정도 이력이 붙으면 거리 사진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건 사진이 인생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리 사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것은 사람이다.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갈수록 길거리에서 사람 사진 찍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초상권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SNS는 사람들의 자기 노출과 전시 본능을 부추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허세와 과시까지, 셀피(Self-Potrait)와 여행기록 등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사진이 넘쳐난다. 과잉노출 현상이 확산되는 것과 동시에, 자기 노출에 대한 결정권을 스스로 행사하려는 욕구도 강해지고 있다.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는 타인에 의한 일방적인 노출에 경계심이 높아진 것이다. 이에 따라 상대방 동의 없이 사진을 촬영하는 행위에 대한 다툼과 법적 분쟁에 대한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공연한 몰래 카메라와 무단 촬영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는 초상권에 대한 경시와 오해가 빚어낸 현상이다.

초상권은 보편적으로 쓰이는 법적 용어지만, 우리나라 법전 어디에도 초상권을 직접 언급한 경우는 없다. 다만, 판결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초상권을 정의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 기타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관하여 함부로 촬영 또는 그림 묘사되거나 공표되지 아니하며 영리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아울러 이러한 초상권은 헌법 제10조와 제17조에 의해 보장되는 법적 권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초상권 정의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권리를 포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함부로 얼굴이나 신체적 특징을 촬영당하지 않을 권리이다. 즉, 타인이 자신의 모습을 찍지 못하게 거절할 수 있는 권리다. 둘째, 허락받지 않고 자신의 찍은 모습을 매체나 전시 등을 통해 공표(Publicity)되지 못하게 하는 권리다. 이는 촬영 허용과는 별개의 문제다. 공표를 위해서는 추가 동의가 필요하다. 셋째, 다른 사람이 허락받지 않고 자신이 찍힌 사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권리다. 이는 초상에 대한 재산적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초상권은 인격권과 재산권 보호를 위해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다.

만약, 초상권을 침해했을 경우, 이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간주되어(민법 750조)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으며, 공표를 통해 초상 재산권을 침해한 사람은 손해를 배상해야(민법 751조) 한다. 또한, 초상권 침해는 공개된 장소에서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다만, 정치인이나 유명인과 같은 공적 인물에 대해서는 초상권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도 은밀한 사생활 침해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초상권은 사생활 침해, 언론 자유, 국민의 알권리 등 다른 이익과 충돌할 수 있는데, 이는 법원이 구체적 사안의 여러 사정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이익형량)하게 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초상권은 이미 법원에서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국민의 권리이고, 여러 판례를 통해 위법 판단 및 배상 기준이 어느 정도 정립돼 있다. 다만, 일반인의 무단 촬영과 공표에 대한 위법성 판단과 손해 배상 판례는 찾아보기 힘든데, 그건 소송에 이르기 전에 당사자 간의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서일 것이다. 언제든지 당사자가 소송을 제기할 경우 인격권과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법원의 판단이 이뤄지고 판례가 형성될 것이다. 따라서 공개된 장소라는 이유로, 상업적 목적이나 사생활 침해 등의 의도가 없다는 이유로 당사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촬영이나 공표에 신중해야 한다. 그것은 작품을 위한 예술 활동이라고 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얼마 전 후지필름은 새로운 소형카메라를 출시하면서, 유명 사진가에게 카메라 리뷰를 의뢰한 일이 있었다. 그때 사진가는 인상적인 거리 사진을 얻는다는 목적으로, 지나가는 불특정 사람들을 대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무단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전에 촬영 일정을 알리거나 양해를 구하지 않고서 말이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동영상을 통해 알려지자 사람들은 분노했고, 해당 사진가와 후지필름에게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경악할 일이다. 초상권을 몰랐을 리 없는데, 무시하고 예술이라는 명목으로 폭력을 가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일들이 종종 목격된다. 과감하게 들이대라는 둥, 일단 찍고 허락은 사후에 받으면 된다는 둥의 말로 초상권 침해를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법 위반을 넘어 윤리를 저버리는 행위인데도 말이다. 사전에 촬영 허락을 구하고, 향후 그 사진을 전시하거나 책으로 펴낼 계획이 있다고 의사를 밝힌 후, 촬영해도 얼마든지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예술이라는 명분으로,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는다는 이유로 무단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무례하고 어리석은 행동이다. 사진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비수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본인은 뜻하지 않게 위법자라는 굴레를 짊어질 수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이호준(facebook.com/ighwns)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서 2회 수상하고, 세 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 3회를 개최했다. 월간지 <SW중심사회>에 사진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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