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게 되면 이런 곳에서 죽어도 괜찮겠다
죽게 되면 이런 곳에서 죽어도 괜찮겠다
  • 강진수 기자
  • 승인 2020.04.10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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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미여행기-서른다섯 번째 이야기 / 강진수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69.

공원 내 작은 열차를 타고 십여 분 바람을 가르며 달리다가 내렸다. 아직 보이지 않는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 물소리가 들려왔다. 키 큰 나무들 너머로 물보라가 만들어낸 수증기가 뭉게뭉게 떠오르는 게 보인다. 무작정 그 방향으로 길을 걸었다. 길은 넓고 깊은 강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꽤나 센 물살 사이로 몸통이 꺾인 나무들이 애처롭게 손을 흔들었다. 바람은 그치고 뜨거운 뙤약볕만이 우리 머리 위로 드리웠다. 땀방울이 맺히는 것도 잠시, 다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먼젓번의 바람이 하늘에서 불어오는 것이었다면, 이번 바람은 하늘이 아닌 강물에서 불어오는 것이었다. 바람이 머릿결을 스쳐갈 때마다 이과수 강물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그 아른거리는 강물들이 하나 둘 모여 쏟아지는 소리. 바람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물은 덩어리진 채로 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길은 갑자기 끊기고 땅은 설 자리를 잃었다. 대신 나와 형, 우리가 그 자리를 채웠다. 가만히 강물의 끊어진 마디를 바라보는데, 그 마디와 마디 사이로 우리가 걸어온 지난 길들이 필름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길과 길이 모여 장소가 되고, 장소들이 모여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여럿 모이다보면 그곳의 사람들 그리고 나와 형이 되었다. 결국 우리가 지나온 길들은 모두 사람이었다. 사람 하나하나를 거쳐 이과수에 닿았는데, 이곳에서 마주한 것은 다시 사람, 나와 형이었다. 여러 길을 지나 그리고 사람을 지나 우리는 마침내 우리에게로 와 닿았구나. 강의 표면과 나란히 달리던 바람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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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한꺼번에 쏟아져 눈앞에 사라졌다가도, 다시 생겨나 부서질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과정이 계속 맞닿아 있으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끊어져있던 강물인지 또는 끊어져있지 않던 강물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전혀 믿기지 않았다. 때론 내 눈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더 나아가 내가 지금 이과수를 마주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거짓인 것만 같았다. 그런 온갖 의심과 어이없는 생각들을 저편으로 미뤄두라는 듯이, 굉음을 내며 물보라를 일으키던 시퍼런 강은 선명한 빛깔의 무지개를 쏘아 올렸다. 사라졌다가 생겼다가를 몇 번 반복하던 그것은 다신 깨어지지 않을 유리처럼 그 색을 뽐냈다. 그 위로 이름 모를 새가 무리를 지어 날았다. 꼭 무슨 풍경화에 나올 것 같은 모습이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이 원래 이토록 아름답다는 듯, 천천히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 모든 순간들이 영화처럼 마무리되려 할 때,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 마냥 여러 마리의 나비들이 우르르 내 앞을 날았다. 갈색 바탕에 얼룩무늬의 나비 한 마리가 나풀대며 날아 내 머리에 얌전히 앉았다. 나도 자리를 뜨려다가 다시 나무 난간에 기대어 손님과 마지막으로 ‘악마의 목구멍’을 들여다보았다. 왜 이곳의 이름이 그러한지 알 것도 같았다. 꼭 나도 훅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그 목구멍의 초입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웅얼거렸다. “죽게 되면 이런 곳에서 죽어도 괜찮겠다.” 그런 음침한 생각에 빠진 나를 건져낸 것은 무심코 옆에서 내 죽음 타령을 듣고 있던 형이었다. “그럼 육개장이나 먹으러 가야겠네.” 그때 생각했다. 저 형이 얄미워서라도 악마든 악마의 목구멍이든 유혹되지 말고 꼭 오래 살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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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대망의 이과수 폭포를 모두 돌아본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서 파김치가 되었다. 축 늘어진 팔다리를 한참 가누지 못하던 우리를 일으킨 것은 배고픔이었다. 숙소도 처음으로 만족을 넘어설 정도로 좋고, 이 좋은 숙소에 우리뿐인데다가 부엌에는 주방도구가 준비되어 있었기에 직접 장을 두둑이 봐서 우리끼리의 파티를 하기로 했다.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우리가 집은 것은 역시 파티에 빠질 수 없는 와인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우리였고 간만에 숙소에서 맘 편히 먹을 수도 있으니 옳다구나, 맥주도 몇 캔 넉넉히 샀다. 실컷 구워먹을 고기도 충분히 사고 나니 형이 내게 물었다. 간만에 밥을 해먹을까?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나흘간 캠핑을 하면서 냄비 밥을 지어 먹었던 것 이후의 첫 밥이었다. 우리의 이 기념비적인 밥을 그냥 먹을 순 없었다. 볶음밥을 해먹기로 하고 요리에 넣을 당근, 호박, 양파 등등 여러 채소도 카트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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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문제는 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하는 것이었다. 재료는 많은데 주방도구가 충분하지 않아 다듬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무척 걸릴 수밖에 없었다. 형이 고기 손질을 한다고 식칼을 쓰면 채소를 다듬어야 할 내게 주어지는 건 과일칼뿐이었다. 썰고 다져야 할 채소가 산더미인데 과일칼로 어느 세월에 다 할 수 있을까. 부지런히 해도 요리에 진전이 없어 결국 볶음밥을 다 만드는데 한 시간하고도 삼십분이 넘게 걸렸다. 배를 곯고 있던 우리는 “잘 먹겠습니다” 외치자마자 걸신들린 듯이 많은 양의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배가 부르니 노래를 흥얼거렸고, 노래가 나오니 술이 술술 들어갔고, 이야기꽃이 피었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우리가 지난 여행에서 언제 이런 여유를 느껴봤었을까. 처음 페루 공항에 도착한 날도, 국경을 여러 차례 넘어 볼리비아와 칠레 그리고 아르헨티나를 거치는 동안 단 한 번도 이런 여유를 느끼지 못했었다. 항상 다음 행선지를 고민해야하고, 가야하는 방법을 알아내야 하고, 머물 숙소와 가서 보고 해야 할 것들을 미리 생각해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그간 우리의 대화는 항상 다음 여행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과수를 떠나는 날, 앞으로 남은 여행지도 부에노스아이레스만 남아있었고, 그곳에서 머물 날은 일주일 정도로 여유로웠기에 굳이 그곳의 일을 지금 당장 생각해둘 필요가 없었다. ‘내일’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오늘을 만끽하기 위해 우리는 금세 와인을 두 병 비우고 맥주를 입에 들이부었다.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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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상태로 숙소 앞뜰에 우리 둘은 문득 나가봤다. 이과수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곳 작은 마을에도 찾아들었다. 가로수들이 반갑다고 바람과 악수하는 시간. 그들의 배경을 캄캄하게 채운 밤하늘은 푸른 별들을 가득 품고 있었다. 이 먼 땅에서 이제야 익숙해져버린 낯선 풍경들이 정말 마지막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큰 도시여서 별도 하늘도 바람도 나무도 그 자체로만 아름답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굳이 도시를 가고 싶지 않았다. 분명 며칠 전만 해도 남미 시골의 불편함 속을 헤매며 도시를 갈구했었는데. 결국 마지막을 마주해버리고 나니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이었다. 멀리 반짝이는 별들이 이런 우리 맘을 아는지 바람 소리에 맞춰 일렁였다. 폭포 앞에서 듣던 꼭 그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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