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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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전미도서상 수상자이자 코맥 매카시와 플래너리 오코너에 비견되는 작가 데니스 존슨. 19살 때 시집을 출간하며 데뷔한 이후 67세에 간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소설, 시, 희곡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한 그는 “독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작품세계를 만들어간 변화무쌍한 스타일리스트”(NPR)라는 평을 들으며 미국의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한 명이자 “작가들의 작가들의 작가”로 꼽혀왔다. 존 업다이크는 데니스 존슨이 젊은 시절의 헤밍웨이를 연상시키는 작가라 평했고, 조너선 프랜즌은 “내가 믿고 싶은 신은 데니스 존슨의 목소리와 유머 감각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존슨이 2002년 <파리 리뷰>에 처음 발표한 『기차의 꿈』은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살아간 철도 노동자이자 벌목꾼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생애를 그린 소설로, 시대의 격변과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소멸되어버린 삶의 방식을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으로 써내려간다. 이 소설은 그해 <파리 리뷰>에 발표된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 수여하는 아가 칸 상을 받았고, 이듬해 오헨리상을 수상했다. 그후 2011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뉴욕 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뉴요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올해 가장 사랑받은 책, <에스콰이어>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2012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그해 퓰리처상은 수상작을 선정하지 않았다). 또한 2019년에는 리터러리 허브에서 뽑은 ‘지난 10년간 최고의 소설 Top 20’에 이름을 올리며 “21세기의 가장 완벽한 짧은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1886년에 태어났다.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 부모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린 시절 혼자 기차를 타고 새로운 가족을 찾아 아이다호까지 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주소가 적힌 종이를 가슴에 핀으로 붙인 채 기차를 타고 여러 날을 여행했던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고모의 가족과 함께 살게 된 그는 십대 때 학교를 그만두고 철도 공사장에서 일을 하거나 여기저기서 장작 패는 일, 트럭에 짐 싣는 일 등을 잠깐씩 하며 이십대를 보냈다. 그러다 교회에서 아내 글래디스를 만나 모이 계곡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고 얼마 후 딸 케이트가 태어났다.

1920년 여름 로빈슨 협곡을 가로지르는 철교 공사와 벌목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모이 계곡에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 참혹한 현장을 목도한다. 아내와 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오두막이 있던 곳은 시커먼 폐허가 되었다. 결혼한 지 사 년도 되지 않아 아내와 딸을 잃은 그레이니어는 이후 불타버린 계곡에 다시 집을 짓고 때때로 아내의 환상을 보고 밤마다 계곡을 올라가는 희미한 기차 소리를 들으며 살아간다. “안정적인 고독”에 빠져들어 대자연과 인간의 삶에 가득한 끝없는 미스터리를 경험하며, 점점 현대화되어가는 세상을 겪어나간다.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태평양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서부까지 여행한 적이 있고, 전화기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읍내에 나올 때마다 텔레비전을 보았고, 기차와 자동차를 자주 탔고 비행기도 한 번 타봤다. 그리고 1968년 11월 어느 날 숲속 오두막에서 잠을 자다 숨을 거둔다.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고 누구도 특별히 기억하지 않았던, 역사를 스쳐지나간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이다. 젊은 시절에도 “그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그가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한 오두막에서 숨을 거둔 채 가을과 겨울 내내 누워 있어도 그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평범한 막노동꾼의 삶은 작가 데니스 존슨의 노련한 필력과 타고난 감각을 거쳐 분절되고 재구성된 뒤 아름답고 강렬한 문학으로 재탄생한다. 특별할 것 없는 한 인간의 삶을 그리는 것만으로 작가는 빠르게 변화해가는 시대 전환기의 혼란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로버트 그레이니어’라는 한 인간은 산업화와 상업화, 그 과정에서 상실되어버린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삼차원의 메타포가 된다. 지난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만으로 자기도 모르게 역사라는 큰 그림과 맞닿게 되는 개인을 시적인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가장 개인적인 동시에 가장 역사적인 소설을 써내려간 것이다.

팔십 년이 넘는 한 인간의 생애는 방대한 분량의 대서사시로 그려도 될 만한 이야기지만, 데니스 존슨은 그 삶을 압축하고 덜어내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짧은 소설로 만들어낸다. 한 단어 한 단어 공들여 선택해 꾹꾹 새겨나간 듯한 문장은 꾸밈없이 간결하고, 공간적 배경이 되는 미국 서부의 황무지와 장엄한 대자연은 작품 전체에 어두우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드리운다. 그레이니어 생애의 대부분은 생략되거나 간단한 문장으로 축약되는 한편, 벌목과 교각 건설, 자연에 대한 디테일은 빽빽하게 살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장 사이사이 끼어드는 환상적이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죽은 아내가 환영처럼 나타나 딸 케이트의 소식을 알려주고, 늑대 소녀를 만나고, 죽은 자의 저주를 생애 내내 곱씹는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순간들이 소설에 독특한 강렬함을 불어넣는다. 자연과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미스터리를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을 밝히지 않고 그대로 두는 데 이 소설의 진짜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짧은 분량과 간결한 문장 덕에 한자리에 앉아 '기차의 꿈'을 끝까지 다 읽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 읽고 몇 주가 지나서도 끝나지 않는 꿈처럼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는 제니퍼 이건의 말처럼, 이 소설을 뇌리에서 몰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 조용하고 짧은 소설이 이렇게까지 마음에 오래 남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소설에 대해 더 많이 곱씹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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