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 지음/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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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 창비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2016년 『21세기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독특한 화법으로 개성적인 시세계를 꾸려온 류진 시인의 첫 시집 '앙앙앙앙'이 출간되었다. 등단 4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에서 시인은 기존의 시 형식과 문법을 뒤집어엎는 도발적인 발상과 감각적이면서 섬세한 이미지를 앞세워 ‘시에 반(反)하는’ 다채롭고 경이로운 시세계를 선보인다. 실제와 가상의 세계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쉬지 않고 시를 끌고 가는 동력”과 “멈추지 않고 시를 읽게 하는 매력”이 어우러진 “활달하고 역동적인 언어의 잔치”(김언, 추천사)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신인다운 기백이 넘치는 폭발적인 시적 에너지와 활기찬 말의 운동이 “기묘한 열기로 들끓는”(조재룡, 해설) 독창적인 시집이다.

시인은 문장에 대한 통념을 여지없이 깨뜨리며 말의 질서를 재편하여, ‘시인은 죽음의 광대’가 아니라 “죽음은 시인의 광대”(「마음 포기의 각서」)라고 말하는 낯설고 새로운 세계를 그려나간다. 또한 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책 제목을 비롯하여 만화, 게임, 영화, 음악, 연극,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 수학적․철학적 개념 등 다양한 텍스트를 끌어들여 “대위(對位)하는 언어”와 “다면체의 문장”으로 쌓아올린 시적 장소에서 “푸가의 변주곡처럼”(조재룡, 해설)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치고 빠졌다가 다시 치고 들어가는 경쾌한 리듬과 오른손으로 네모를 그리면서 왼손으로 별 모양을 그리는 기묘한 방식으로 문장을 엮어나가는 것 말고도 시인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능숙하다. “소리의 재앙과 말씀의 재앙 사이”(「데데킨트의 절단」)에서 시인은 “눈알을”-“누나를” “희망”-“피망”(「6월은 호국의 달」), “으아리”-“메아리”-“병아리”(「신체 포기의 각서」), “야차의 시간”-“야채의 순간”(「권태의 괴물」)처럼 개개의 말을 서로 얽히고설키는 독특한 발음이나 리듬으로 변주해가면서 낯선 세계로 이끈다. 그런가 하면 우리말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 시인은 ‘반지빠르다’(「팔달시장이…」), ‘나투다, 들피지다, 앙가발이’(「데데킨트의 절단」), ‘즘게, 너테, 도린곁, 굼뉘, 푸둥지’(「서정의 짐승」) 같은 멋들어진 우리말을 적재적소에서 살려낸다.

류진 시인은 시적 발상도 기발하지만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말솜씨가 뛰어나다. ‘입담’이 좋은 정도가 아니다. 김언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이빨’이 세고 ‘구라’ 치는 실력이 감탄스럽다. 시인의 ‘구라’는 다다이즘의 창시자 트리스탕 차라의 글 제목을 바꾼 「부록: 어찌하여 나는 비겁하고 치사하며 우아하게 되었는가」에서 절정에 달한다. 시인은 “따귀의 대중에 취향을 때려라!”처럼 기존의 말들을 교묘하게 비틀고 “입안 가득 씹히는 상념의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독으로 넘치는 포도주를 들이켜는 시대”와 결별을 선언하되 “나는 끝나지 않는다 내 이야기엔 인간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빨뿐인 몸”으로 세상의 모든 “불협화음을 사랑”하고 “엇박자에 올라타 흔들”거리면서 시가 아직 가보지 못한 영토에서 울음인 듯 웃음인 듯 한마디 내뱉는다. 앙앙앙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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