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나 지음/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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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씨씨의 엄마는 빨간 새틴 구두를 길 한가운데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목격자는 세 명이었다. 다들 우스꽝스러운 파티 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아이스크림 트럭을 향해 갑자기 뛰어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비데일리아 양파 여왕’이었던 과거의 영광에 갇혀 지냈고 동네에서는 ‘정신 나간’여자로 통했다. 엄마의 상태를 알면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아빠 때문에, 아직은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나이에 씨씨는 정신증을 앓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으로 혼자가 된 씨씨는 남부의 친척 할머니에게 보내진다. 투티 할머니의 무한한 환대와 올레타 아주머니의 ‘천국의 맛’시나몬 롤을 맛보고, 남부의 날씨처럼 따뜻하고 유쾌한 이웃 여성들과 교류하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씨씨의 마음이 녹기 시작하고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마음속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 그렇게 씨씨는 ‘인생 책’의 새로운 장을 펼치고, 평생 바라왔던 친구들의 이름을 페이지마다 채워나간다.

씨씨는 엄마가 그릇을 벽에 던질 때마다 책을 한 권씩 읽었다. 책 속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씨씨 자신의 인생은 단지 하나의 이야기가 될 때까지. 그리고 엄마가 한 번 울 때마다 사전 반쪽을 외웠다. 씨씨는 그렇게 힘든 일상을 버티고 외로움을 잊었다. 씨씨의 머리는 수많은 이야기와 단어로 가득 채워졌지만 마음은 텅텅 비어갔다. 그래서일까,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땅에 묻힐 때까지 씨씨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익숙한 집을 떠나 먼 친척인 투티 할머니의 집으로 향하면서도 차마 챙겨 오지 못한 책들 생각에 울화가 치밀었을 뿐 울음이 나진 않았다.

올레타가 오트밀 그릇의 뚜껑을 열었다. “식기 전에 아침 먹어야지.” 위장이 꼬이는 느낌이었지만, 그녀가 준비한 아침을 먹지 않으면 큰 실례일 것 같았다.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숟가락을 오트밀에 담갔다가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오트밀이 혀에 닿는 순간, 갑자기 미각 세포들이 후드득 깨어났다. 올레타는 오트밀에 황설탕을 조금 뿌리고 통통한 라즈베리도 넣어주었다. 내가 오트밀 그릇을 허겁지겁 비우고 오렌지주스 한 컵을 꿀꺽꿀꺽 마시는 동안, 그녀는 한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_본문 중에서

고요히 닫혀 있던 씨씨의 마음을 투티 할머니의 무한한 환대가 활짝 열어젖혔다. 투티 할머니는 혼자나 다름없는 처지가 된 씨씨에게 선뜻 손을 내밀었고 흔쾌히 집 한편을 내주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식구나 다름없이 지내온 가사도우미 올레타의 환상적인 남부 가정식은 씨씨의 마음을 훈훈하게 채워주었다. 통통한 라즈베리를 올린 오트밀, 설탕과 버터의 부드러움이 입안 가득 퍼지는 시나몬 롤은 씨씨의 마른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살찌웠다.

씨씨는 투티 할머니와 올레타, 또는 그녀들을 통해 만난 남부의 여성 커뮤니티들로부터 책에는 나오지 않는 인생의 지혜를 배워나간다. 그들은 매일매일이 선물이라는 걸 깨닫고, 인생의 불꽃을 찾아 전념하고, 인생이 흘러가는 걸 보고만 있는 게 아니라 용기 있게 뛰어들었다. 또한 그들은 씨씨에게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은 우정을 보여주었고 가족보다도 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으며 나아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의 롤모델이 되어주었다. 그 속에서 상처를 이겨낸 씨씨는 세상 밖으로 나아갈 준비를 무사히 마치게 된다.

겉으로는 씩씩한 척, 괜찮은 척하지만 사실은 혼자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아이, 우리가 마음의 빗장을 풀고 구해줘야 할 ‘씨씨’는 누구의 마음속에나 있다. 『씨씨 허니컷 구하기』는 세상의 모든 ‘씨씨’들을 위한 간단하면서도 분명한 조언으로 가득하다. 봄이 찾아와도 마음은 여전히 겨울인 이들에게는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고, 무관심에 식어버린 심장으로 삶의 활기를 잃어버린 이들에게는 불꽃을 던져줄 유쾌하면서도 선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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