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어디서 오는가
봄은 어디서 오는가
  • 구혜리 기자
  • 승인 2020.04.27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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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위클리 마음돌봄: 세 번째 돌봄, 2020년의 봄

[위클리서울=구혜리 기자]  아프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죽음 이전에 질병과 사고를 완전하게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잘 이겨낼 수는 있다. 도리어 이를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이의 삶은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몸이 아프면 온 신경은 아픈 부위에 집중된다. 하물며 감기나 생채기 하나에도 처방을 받거나 적절한 요법을 취하는데 마음에 난 상처에는 유독 무관심하다. 하지만 마음에도 돌봄이 필요하다. 위클리 마음돌봄은 삶에 관한 단편 에세이 모음이다. 과열 경쟁과 불안 사회를 살아가는 당사자로서 스스로와 사회를 돌아보는 글이다. 글쓴이의 마음의 조각을 엿보는 독자에게도 작은 위로를 전할 수 있길 바란다.

 

ⓒ위클리서울/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조용히 추위가 물러나고 볕이 채운 자리에 매화며 벚꽃이며 꽃과 싹이 올라왔다. 꽃이 자리한 무대로 사람이 바득바득 채웠던 지난봄과 다르게 올해는 그럴 수가 없다. 흐드러지게 봄꽃 피우는 거리를 가득 채워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2020년 봄, 대한민국은 여전히 겨울 같기만 하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사회적 거리두기가 만든 낯선 풍경.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전 세계적으로 피할 수 없는 재해가 우리 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공포는 단순히 질병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교에도 기업에도 사람들은 모일 수 없고 이 모든 일들은 사회 제반(諸般) 시스템이 멈춘 것처럼 보이게 한다. 제일 먼저 직격탄을 맞은 관광, 항공 업계는 업계 안팎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을 돌려보내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외롭게 싸웠다. 위태롭게 수명을 이어가던 업계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존폐 위기에 놓여 대거 소상공인을 좌절케 했다. 일각에서는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튼튼한 요새 속에 건강을 보충하는 시기로 삼아 보내면서, 누군가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마스크를 주워 쓰고 코로나보다 무서운 생계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운이 나쁘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질병? 코스피를 지표로 붕괴된 경제? 붕괴는 단순히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의 시스템이 무너질 때 공동체 전체가 무너질 것임을 예측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사회적 거리를 만들고, 이것이 심리적 거리로, 불신으로 키울 때. 내가 나를 방어하지 않으면,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무력감과 고독 그리고 불신, 이것이 사회를 무너뜨린다.

공동체(community)의 어원은 cum(함께, 서로), munus(선물) 또는 munere(주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학자마다 그 의미를 다르게 정의하고 있지만 단순히 영토적 개념의 지역사회 의미에서 확장하여 서로 선물을 나누는 배려와 보살핌의 관계의 기능적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예컨대 McMillan & Chavis(1986)는 “소속감, 공유된 신념 및 헌신으로 구성된 일단의 인구집단”으로 Weil & Gamble(1995)는 “어떤 신분적 특징 및 이해관계를 기초로 형성될 수 있는 것”으로 공동체의 의미를 사용했다.

그렇다면 공동체성, 공동체 의식이란 공동사회의 일원이라는 의식이나 감정으로, 어떤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거나 공동으로 관리 또는 이용하는 물질적 기반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될 수 있다. 또는 어떤 집단에 귀속하고 있다는 의식이나 감정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하지만 개인주의가 짙어지는 오늘날 보이지 않는 공동체 속에서 개인은 소속을 잃고 무력해진다. 개인의 권리의식과 자립능력의 향상은 우리에게 무수한 자유를 보장해주겠다는 달콤한 거짓말을 뱉기도 한다. 타인이 없어도 나는 잘 살아갈 수 있다. 내가 가진 게 많다면 스스로 힘으로 나를 보호할 수 있고, 자유주의 안에서 타인의 착취를 통한 개인의 성공은 정당함을 보장받는다. 그렇다면 의심하게 된다. 공동체가 필요한가? 어딘가에 소속될 필요가 있을까? 자신을 고립시켜야만 안전을 보장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요받고, 얽히고설킬 필요가 사라진 자리에 오직 나 자신만이 남게 된다. 불신과 불확실이 반복되면서 코로나보다 무서운, 우리가 진정 경계해야 하는 건 고립으로부터 오는 질병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것들은 잠잠해질 것이다. 거리로 돌아온 사람들은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이전과 같은 일상을 바라보며 일전에 놓친 것들을 아쉬워하며 더욱 활기차게 새 계절을 누리려들 것이다. 하지만 전염병이 지나간 자리 자리에 희생된 사람들은 잊혀갈 것이다. 모두가 코로나를 피할 수는 없어도 그 여파는 제각기 다르게 남는다. 재해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은 것처럼 코로나 또한 취약계층, 특정 집단에 더 가혹할 것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공동체는 결국 끊어져 무너지게 된다. 공동체는 결국 모두가 짊어질 책임이 있는 것, 코로나가 끝나도 끝나지 않을 위기에 주시하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위를 돌아보아야 한다. 내 이웃이 건강하지 않은 사회 속에서 내가 건강할 수 없기에. 함께 행복한 사회를 위해 공동체성의 회복이 절실한 때다.

 

봄은/신동엽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듯이 흐물흐물 녹여 버리겠지.

 

신동엽 시인의 ‘봄은’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나는 고등학생 때 ‘봄은’을 남북 분단의 아픔에 관한 시로 배웠다. 1960년대 김수영 시인과 함께 대중적인 민중 시인으로 알려진 신동엽이 살아가던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한 해석이었다. 하지만 시는 곱씹고 곱씹어 나의 이야기를 새로 덧붙이고, 과거의 상처와 현대의 아픔을 이어 새 생명을 불어넣을 때 더 빛나는 것 같다. 봄은 어디서 오는가. 외세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자각을 통한 공동체성의 회복, 나와 관련 없는 타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사회적 연대에 대한 책임. 어서 사람이 득실득실 모여 웃음꽃 피우는 거리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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