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에서 달림으로
쉼에서 달림으로
  • 김준아 기자
  • 승인 2020.05.05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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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나 캐나다 살기-15회] 굿바이 캔모어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행은 살아 보는 거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광고 문구이다. 좋아하는 걸 실행하고자 무작정 캐나다로 왔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저 로키 산맥에서 살아 보고, 오로라 보러 다녀오고,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이는 곳에서 일 해보고, 캐나다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 내 꿈은 소박하다. 캐나다에 도착한 순간 다 이룰 수 있는 꿈이 되었으니까. 꿈을 좇는 그 열다섯 번째 이야기.

 

3개월만 있으려고 했던 캐나다에 도착한 지 어느덧 100일 되었다.
3개월만 있으려고 했던 캐나다에 도착한 지 어느덧 100일 되었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하루종일 폭우가 쏟아져 아무것도 못 했지만 비가 그치면 로키 산맥 앞에 예쁜 무지개가 뜬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얼마 전, 어김없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자책을 했다.

“와… 도대체 몇 시간을 잔거야? 나 왜 이렇게 나태해 진거지?”

그리고 곧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와우, 이 나이에 이렇게 늦게 일어나도 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나는 정말이지 합리화가 쩌는(?) 사람 같다. 캔모어 생활이 점점 이렇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앞으로도 모든 걸 이렇게 보고, 이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지’라고 말이다. 안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안다. 미리 대비할 수도 있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만들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어떠한 일도 안 좋게 생각되지 않는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해가 중천에 떠 있지만 그 해는 밤 10시는 되어서야 질 것이고, 하루 종일 폭우가 쏟아져 아무것도 못 했지만 비가 그치면 로키 산맥 앞에 예쁜 무지개가 뜰 것이기 때문이다. 삶을 미리 대비할 필요도 없고, 더 나은 방향이 어디인지 찾을 필요도 없었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떠나려고 마음을 먹으니 평소에 그냥 지나치던 가게들까지 사진으로 담게 된다. 왜 시간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았을까?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쉼’을 충전으로 생각하지 못 하고, 게으르고 나태한 거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왔다. 그렇기에 20대 내내 정말 열심히 달리기만 했다. 그래서 처음엔 이렇게 잠깐 쉬는 게 적응도 안 되고 이상했다. 물론 적응이 안 된다는 사람치곤 굉장히 게으르게 지냈지만 말이다. 하하. 어째든 그런 ‘달림’이 있었기에 지금 이런 ‘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쉼’을 온 마음과 온 몸으로 최선을 다 해 만끽했다.

혼자 소풍을 나갔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거절당했다. 민망했다. 대충 찍어줘도 되는데 거절할 게 뭐람…. 그 순간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가 말했다. “미안해. 나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나에게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웃으며 인사를 한 뒤, 그의 길을 향해 떠났다. 내가 당연하게 보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당연하지만 않구나. 그 순간 나는 나의 모드를 ‘쉼’에서 ‘달림’으로 바꾸기로 했다. 캔모어를 떠나기로 결심 한 것이다.

3개월만 있으려고 했던 캐나다에 도착한 지 어느덧 100일이 되었다. 이 곳의 시간이 행복했지만 한국이 엄청 그리웠다. 나를 매일 달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곳인데도 말이다. 가족들이랑 함께 먹던 저녁식사도,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 떨던 시간도, 길거리 포장마차 떡볶이랑 어묵도, 한글자막이 있는 외국 영화를 보는 것도, 봄을 알리는 벚꽃과 개나리도, 겨울을 알리는 붕어빵도, 길을 걸으면 아는 사람을 꼭 마주쳤던 대학로도, 날씨 좋은 날이면 혼자 앉아 음악을 들었던 마로니에 공원도, 심심하면 올랐던 낙산공원도, 하루 종일 있을 수 있었던 중고서점도 말이다. 누군가는 ‘헬조선’이라고 말 하는 그 곳의 무엇이 그립냐고 질문한다면 밤을 꼬박 새며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그리움 보다 내가 한국에 돌아갔을 때 이 곳을 향한 그리움이 훨씬 클 것을 알고 있다. 한국은 돌아가서 다시 정착할 곳이지만, 여긴 잠시 머무는 곳이니까 말이다. 얼마나 그리울 지 상상도 안 된다. 그러니까 지금 이 그리움을 참아야 훗날의 그리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버섯이 큰 걸까? 파프리카가 작은 걸까? 분명한 건 진실이 무엇이든 그리울 거라는 거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지금의 익숙함과 편안함 그리고 친절함을 떠나야만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캔모어를 떠날 날이 다가올수록 하루하루가 엄청 소중해 졌다. 늦잠을 자며 합리화 하던 순간들까지 속상할 만큼 말이다. 그제 보다 어제, 어제보다 오늘, 내 생의 마지막 날과 더 가까워지는 것인데 왜 여행을 할 때처럼 시간을 소중히 대하지 않았을까? 이건 꼭 캔모어의 시간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도 말이다. ‘나의 남은 날 중에 오늘이 가장 젊기에’ 가수 싸이의 노래 ‘어땠을까’에 나오는 가사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평화 속에서 행복하게 잊었었다고 다시 합리화를 하고, 새로운 시간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작고 평화로운 동네 캔모어에서 내가 길을 걷다가 인사를 하는 아는 사람은 집주인을 포함 해 30명 남짓 된다. 그 중에 번호를 아는 사람은 20명이 조금 넘고,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10명 남짓 되는 것 같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내가 일 하는 레스토랑의 사장님에게 캔모어를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건 일을 그만둔다는 말이다. 사장님이 붙잡았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월급을 2배 올려 준다고 했다. 영주권까지 준비할 수 있게 해줄 기세다. 여기에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끝나는 내년 4월까지 일하면 아마 2년 정도는 더 여행을 할 돈이 생길 거 같다.

 

집 앞에서도 이렇게 쏟아질 거 같은 별들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인가? 눈물도 자꾸 쏟아진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하지만 난 이제 다시 계획과 꿈이 있다. 지금의 익숙함과 편안함 그리고 친절함을 떠나야만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 여러모로 굉장히 아쉽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새로운 곳에 가서 후회할 수도 있다. 그냥 캔모어에 남을 걸 하고 말이다. 내가 꾸었던 꿈을 이루지 못 할 수도 있다. 심지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 할 수도 있고, 굉장히 외로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는 않았다. 이래서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하는구나 싶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해답을 찾은 기분이다. 물론 여기를 떠나는 건 진짜 엄청 아쉽다. 같이 일하는 매니저가 종종 힘들게 할 때도 있었는데 그 친구와 헤어지는 것까지 아쉽다. 그래서 행복하다. 그만큼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여기는 진짜 좋다. 가는 곳마다 예쁘다. 평화롭다. 모두 친절하다. 그런데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이곳을 떠나는 날 울게 될 지 말이다. 정이 가질 않는다.’

2019년 6월 10일, 캐나다에 도착 한 지 딱 한 달이 되었을 때의 일기다. 정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던 이 곳의 떠나는 게 이렇게 아쉬우니… 새로운 곳에서도 분명히 잘 적응할거라 믿기로 하며 캔모어를 떠날 때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준아야, 울지마. 진짜로 딱 한 번 울지 말아보자.’ 나는 태어날 때부터 울보였다. 슬프다고 생각 되는 모든 순간에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 나이도 있고, 여행과 캐나다에서의 시간 속에서 꽤나 강해졌다고 생각하기에 왠지 참을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울지 말자고 다짐을 하다가 너무 슬퍼서 울어버렸다.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슬퍼지는데 캔모어를 잘 정리 할 수 있을까? 울보인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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