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 구혜리 기자
  • 승인 2020.05.12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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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위클리 마음돌봄: 네 번째 돌봄, 여성 폭력과 우리들
ⓒ위클리서울/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위클리서울=구혜리 기자]

드라마 속 가해자는 자명한데 초점은 여성에게 쏠린다.

저 여자가 부족해서, 저런 여자가 문제지, 저 여자가….

성폭력, 가정폭력 앞에 여성은 자기결정권이란 없는 존재 되어버린다.

누군가 폭력으로부터 삶 잃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공동으로 저지른 일 된다.

아프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죽음 이전에 질병과 사고를 완전하게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잘 이겨낼 수는 있다. 도리어 이를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이의 삶은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몸이 아프면 온 신경은 아픈 부위에 집중된다. 하물며 감기나 생채기 하나에도 처방을 받거나 적절한 요법을 취하는데 마음에 난 상처에는 유독 무관심하다. 하지만 마음에도 돌봄이 필요하다. 위클리 마음돌봄은 삶에 관한 단편 에세이 모음이다. 과열 경쟁과 불안 사회를 살아가는 당사자로서 스스로와 사회를 돌아보는 글이다. 글쓴이의 마음의 조각을 엿보는 독자에게도 작은 위로를 전할 수 있길 바란다.

 

ⓒ위클리서울/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부부의 세계에서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요즘 가장 핫-한 드라마를 꼽는다면 ‘부부의 세계’일 거다. 불륜, 바람, 이혼 등 삼류 드라마 단골 소재로 오명을 입으면서도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로 빠질 수 없고, 가장 선풍적인 극 소재가 수세대를 반복하며 이번에도 먹힌 것이다. 금, 토요일 밤 11시면 약속이라도 한 듯 TV앞에 모이는 일이 요즘 있는 생활 패턴 중 가장 규칙적인 습관이 되어버렸다.

하루는 부러진 손톱을 다듬기 위해 네일샵에 갔다가 여자들이 모여 부부의 세계로 신이 난 대화에 동참했다. 부부의 세계를 보는 이들 반응은 대게 비슷했다. ‘아, 정말 화가 나지만 계속 보게 돼!’ 불통의 주인공 지선우(김희애)는 답답하고, 남의 가정 파탄 낸 여다경(한소희)은 나쁜 년이고, 믿을 구석 없는 스토리 속 유일한 동아줄로 알았던 민현서(심은우)는 데이트폭력에 시달리며 생명마저 위협받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이 드라마가 연출하는 가해자는 자명한데 초점은 여성에게 쏠린다. 저 여자가 부족해서, 저 여자가 모질게 굴어서, 저 여자가 맞을 만해서, 저런 여자가 문제지, 저 여자가….

 

여성 폭력은 개인의 문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2015년 이후 ‘삼일한(여자와 북어는 삼일에 한 번씩 패야 맛이 좋아진다)’이라는 줄임말 사용이 인터넷 일부 커뮤니티로부터 확산되어 이슈를 불러 모았으나, 이런 표현은 인터넷 상에서 새롭게 등장한 표현이 아니라 80년대 신문에도 등장할 정도로 잘 알려진 관용어구였다. 즉, 여성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보고 은폐하던 관점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지속된 일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우리 속담 만만치 않게 러시아에는 “맛있는 수프를 먹고 싶다면 아내를 잘 때려야 한다”는 속담이 있었다. 하지만 여성단체와 학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노력에 의해 여성폭력에 대한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성폭력특별법」(1994), 「 가정폭력방지법」 (1997) 등 여성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위한 사회적인 법과 제도적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정폭력의 종류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가하는 아내폭력, 부모가 자녀에게 가하는 아동학대, 성인자녀가 노부모에게 가하는 부모학대가 있다. 또 성폭력에는 어른이 아동에게 가하는 아동 성폭력,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가하는 장애인 성폭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가하는 직장 내 성폭력이 있다. 가정폭력과 성폭력은 공통된 특성이 있다. 두 폭력은 가정 내 또는 사회적 공간에서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때 남성은 힘을 가진 사람으로, 여성은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학대나 위협을 받는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 내 위계, 즉 젠더위계 속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라는 점이다. 여성가족부 성폭력안전실태조사(2017)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신체적 성폭력 피해율은 여성이 21.3%인 것에 비해 남성은 1.2%로 나타났다. 또한 약 20%가 넘는 여성들이 배우자로부터 폭력을 경험하고(여성가족부, 2017), 최소 1.8일에 1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해있는 것으로 나타난다.(한국 여성의 전화, 2019년 분노의 게이지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2020)

 

ⓒ위클리서울/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위클리서울/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폭력에 숨겨진 지배 구조의 재생산

부부의 세계 작중 인물 박인규는 폭력을 막으려는 지선우에게 상관하지 말라며, 민현서가 맞을 만해서 맞는 것이라 말한다. 가정폭력과 여성폭력의 가해자는 대체로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가장의 권위를 무시해?” “나를 무시하고 대들었기 때문에” 그동안 가져온 남성으로서의 지위나 권력이 침해되거나 도전 받는다고 느낄 때 폭력을 통해 남성의 권위를 회복하려 한다.

성폭력의 통념 속에는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여성의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다. ‘늦은 시간에 왜 거기 있었는가’, ‘왜 그 사람과 그 때 함께 있었는가’, ‘왜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옷을 입었는가’ 이를 해석하면 여성이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허락된 사람 이외와 만날 수 없고,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없다. (그러나 실제 성폭력 피해자가 입은 옷들은 통념상 너무 평범한 옷들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달리 해석하면 여성에 대한 성적 도구로서의 사회적 관념은 어떤 옷으로도, 어떤 상태로도 재생산될 수 있음을 뜻한다.) 가정폭력 또한 마찬가지다.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버리고 가출할 수가 있나’ 남성이 지배하고, 여성이 종속되는 가정이라는 하나의 지위 체계는 사회적인 젠더위계를 반영하고,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무의식적으로 행동범위와 성역할 규범을 학습한다. 성폭력, 가정폭력 앞에 여성은 마치 도구처럼 아이처럼 자기결정권이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폭력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끝난다

부부의 세계 10회차에 민현서는 박인규를 떠나고자 했고 결국 그에게 발각되어 다시 폭력에 내몰렸다. 이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화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리 삶과 멀리 동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상으로도 우리 사회는 하루걸러 쏟아지는 폭력을 마주하고 있고, 도저히 정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범죄를 보고 있다. 부부의 세계를 보던 중 한 시청자는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민현서를 보며 그녀가 왜 도망치지 못했는지 답답했으나 곧 그것이 피해자의 현실이기 때문이고 폭력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죽음과 맞바꿀 정도로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의 저자 폴레트 켈리는 미국의 평범한 여성으로 남편에게 13년간 가정폭력을 당하다 탈출했다. 죽음 앞에서 폭력의 실상을 경험하고 살아남은 그녀의 글에는 인간으로서 갖는 존엄과 가치를 완전히 상실한 여성이 겪는 고통과 결말이 담겨 있다. 여성폭력은 개인적이지 않다. 누군가 폭력으로부터 삶을 잃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공동으로 저지른 일이 된다.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폴레트 켈리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내 생일이 아닌 데도요.

지난밤 처음으로 우린 다퉜지요. 하지만 그는 미안해 할 거예요.

왜냐면 오늘 나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결혼 기념일도 아닌 데도요.

지난밤 그는 내 목을 졸랐어요. 악몽 같았어요.

하지만 그는 틀림없이 미안해 할거예요.

왜냐면 오늘 나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어머니날도 아닌 데도요.

지난밤 그는 나를 또 두드려 팼지요. 이전보다 휠씬 더 심하게.

그를 떠나면 난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은요? 돈은요?

나는 그가 무서운데 떠나기도 두려워요.

하지만 그는 틀림없이 미안해 할 거예요.

왜냐면 오늘 나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 바로 내 장례식 날이거든요.

지난밤 그는 드디어 날 죽였지요.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지요.

내가 좀 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서 떠났더라면

나는 아마 오늘 꽃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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