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신간] 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 이주리 기자
  • 승인 2020.05.12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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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츠 바그너 지음/ 김태옥 옮김/ 김영사
ⓒ위클리서울/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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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당신은 알고 있을 거 아니에요. 당신은 뇌과학자잖아요.” 사람들은 그가 뇌과학자이기 때문에 아이를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더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높이 평가받은 논문도, 저명한 상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뇌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의 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는 세계적인 뇌과학자 헨리 마크람과 자폐 아들 카이의 특별한 성장을 그린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로렌츠 바그너는 독일의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다. 그가 마크람 가족의 사연을 소개한 심층기사 ‘The Son Code’는 수많은 독자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추천되면서 대중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에서 가장 많이 읽힌 기사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독자들의 성원은 계속 이어졌다. 저자는 헨리와 카이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보다 자세하게 취재했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이 책을 썼다.

이 책의 주인공인 헨리 마크람은 신경과학 분야를 선도하며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인공두뇌 개발을 목표로 뇌과학 프로젝트를 이끈 주역이다. 그가 선구적인 뇌신경 연구를 시도하는 배경에는 아들 카이가 있다. 이 책은 학자로서, 또 아버지로서 아들을 위해 자폐증 연구에 매달린 헨리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기존의 상식을 뒤집고 마침내 자폐증에 대한 새로운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냈다.

카이는 먼저 사람에게 다가가는 아이였다. 항상 “안녕하세요, 저는 카이예요” 예의 바르게 인사했고,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의 무릎을 끌어안곤 했다. 대청소를 하느라 바닥이 물로 철벅거릴 때면 그 위에서 미끄러지며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 스노보드를 타면 가족 누구보다 빨리 달렸다. 여행지에서는 호텔의 모든 직원과 친구가 되었다. 헨리는 카이가 자폐증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카이는 자신만의 의례를 중요하게 여겼다. 늘 마시던 우유가 아니면 입도 대지 않았고, 침대에서는 베개가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버둥거리기만 했다. 옷을 갈아입을 때는 양말을 고르느라 외출 준비가 한없이 길어졌다. 사소한 일상이 괴롭게 변해갔다. 학교에서 카이는 문제아가 되기 일쑤였다. 한번 자제력을 잃으면 아무 이유 없이 바닥에 몸을 던져 소리를 질렀다. 누나들도, 엄마도, 아빠도 카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헨리는 카이가 가족들로부터,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뇌과학자로서 헨리는 다른 부모보다 더욱 절망스러웠다. 매일 뇌를 들여다보면서도 아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헨리는 자폐증과 뇌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다. 그것이 카이를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상처와 고통, 실패 속에서 삶과 연구를 하나로 결합한 헨리는 비로소 희망을 발견했다. 자폐증에 대한 새로운 시각, 바로 ‘강렬한 세계’ 이론이었다.

이 책은 세계적인 뇌과학자임에도 아들 앞에서 무력한 아버지이자 무능한 학자일 수밖에 없었던 헨리와 그의 아들 카이가 서로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에 관한 한 편의 기록이다. 다정한 마음으로 담아낸 그들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카이에게는 길거리의 몇몇 사람이 수많은 인파나 다름없다. 들려오는 모든 소리는 비행기 활주로의 소음 같다. 누군가 차에 시동을 걸면 냄새 때문에 자리를 피해야 한다. 거리의 카페도 휴식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너무 크게 웃고, 너무 크게 음료를 홀짝거린다. 얼음은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커피는 폭포처럼 내려진다. 환풍기조차 위협적으로 돌아간다. 카이는 모든 감각이 증폭된 격렬한 세계에 살고 있었다. 감정이 결핍되어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켰던 것이 아니라 똑같은 자극도 더 섬세하고 예민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과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자폐증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고 명명할 만큼 증상이 다양하며 그 원인도 불명확하다. 아직도 더 탐구해야 할 미지의 영역이다. 이 책은 아버지이자 뇌과학자인 한 남자의 시선을 통해 자폐의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즐거운 추억뿐 아니라 화가 나고 실망했던 기억까지 부모로서의 심정 또한 가감 없이 고백한다. 자폐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 폭넓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다.

이제 헨리에게 카이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가 아니다. 헨리와 카이, 마크람 가족은 서로를 보듬고 지지하며 언제나 함께한다. 헨리는 카이에게 안정감과 따뜻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카이 역시 스스로 행동을 조절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폐인은 그저 세상을 더 많이 느끼고 있을 뿐이다. 20대 청년이 된 카이 역시 더 많은 것을 느끼며 세상으로,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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