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너무 하고 싶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다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0.05.1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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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중국 송나라 시절 도잠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예로부터 유명한 예술인들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벼슬이나 세속에 뜻을 두지 않고 자연을 벗 삼아 풍광을 노래하며 인생의 깊은 철학을 깨닫는 등의 내용들이 등장하곤 한다. 이 시인 역시 당시 혼탁한 관리 사회에 염증을 느껴 벼슬을 마다하고 거문고와 독서를 즐기는 한편 손수 농사를 짓고 은둔생활을 하면서 약 130여 수의 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스스로 오류(五柳)선생이라 호를 정했고 이름은 잠(潛), 호는 연명(淵明) 또는 원량(元亮)이니 우리가 익히 알고 시인 도연명의 이야기다.

중국 문학사상 위대한 시인 중 한 사람이며 은둔자, 전원시인의 최고로 꼽히는 그가 남긴 시 중에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歲月不待人)’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앞뒤 불문 거두절미 하고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어 오고 있는 부분은 ‘젊음은 다시 오지 않으며(盛年不重來)/하루에 새벽은 두 번 오지 않는다(一日難再晨)/때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힘써라(及時當勉勵)/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歲月不待人)’이니 결국 다 때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앞의 내용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천 년의 세월을 넘어 또 대륙을 건너 뭐든 다 때가 있다는 뜻으로만 전래되어 자녀들이 조금이라도 더 학업에 매진하기를 바라는 엄마들의 단골 멘트가 되었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나태해지려고 하면 바로 인용되는 어른들의 전용구가 되었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엄마에게서 하루에 한 번은 꼭 들었을 것 같은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푸르른 하늘을 즐기고 예쁜 꽃들이 피어 있는 화단 주변을 맴돌고 싶었고 넓은 대청마루에 뒹굴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 따라잡기에 더 관심이 있었으며 어제 본 드라마의 장면을 떠올려서 재연해 보는 낙으로 지내느라 학업에 등한시 했다. 시험기간만 되면 평소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뉴스에 관심이 막 생겼다. 머리가 희끗한 저마다 하고 싶은 말만 한 보따리씩 들고 나온 각계각층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열띤 토론들은 어쩜 그리 시험기간에만 재미있었는지. 왜 어질러진 책상은 시험 하루 전에만 눈에 띄어서 도저히 정리를 하지 않고서는 공부가 안 된다는 것을 갑작스럽게 깨닫게 되느냐 말이다.

기실 어렸을 때는 아무리 좋은 말을 들려줘도 그게 좋은 말인지도 모르고 그저 잔소리로만 들렸다. 뭐든지 다 때가 있다는 말도 엄마의 일일 단골 멘트로 치부했다가 숱한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무릎을 탁 치는 깨달음이 머릿속을 댕 하고 지나간다. 강사 활동에 필요한 학업이 있어 시작한 공부를 재작년에 마무리 지으면서 다시는 공부 따위 하지 않겠노라고 콘크리트 아스팔트 같은 굳은 결심을 했지만 도대체 나의 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인지 올해 또 다른 공부에 욕심이 생겨 편입을 해버렸다.

새로이 시작한 학업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 같은 설렘과 새롭게 알아가는 학문에 대한 쾌감도 있지만 외부활동과 살림을 병행하며 공부하기에 벅찬 부분도 있다. 공부 좀 하려고 하면 번개 같은 회전속도를 자랑하며 돌아오는 밥 때에 맞춰 하루 삼시세끼를 차려 내야하고(그래서 요즘은 두 끼만 먹는다), 공부 좀 하려고 하면 세탁이 끝났으니 빨리 자신들을 꺼내어 볕 좋은 곳을 골라 빨래 건조대에 걸쳐주기를 알리는 알람이 세탁기에서 울려 퍼지고, 공부 좀 하려고 하면 평소에 잘 연락하지도 않던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한꺼번에 쏟아내는 그간의 안부와 수다들에 공범이 되고, 공부 좀 하려고 하면 거실 바닥에 한두 개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이 거슬려 청소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공부가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나고, 공부 좀 하려고 하면 집에서 온라인 등교를 한 아들이 쉬는 시간이 되어 기지개라도 할 때 수고했다고 배고프지는 않느냐며 엉덩이도 두들겨 줘야한다. 이러이러한 낮 시간을 보내고 밤이 오면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버린 눈꺼풀을 끌어 올리며 두 시간 여 되는 사이버 강의를 겨우 한 과목 듣는다. 공부할 때를 놓쳐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사실 나도 이해는 되지 않는다. 지금의 내 나이가 견딜 수 있는 적당한 만큼의 삶만 살아가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능력치 이상의 것들을 시작하고 또 그것들을 견디려고 아등바등하는지 말이다. 아무리 평생교육이니 사람은 죽을 때 까지 배운다느니 하지만 한참이나 뒤늦은 때에 학업을 통한 평가와 그에 따른 결과물을 도출해 내야 하는 과정이 힘겹기만 하다. 그렇다 해도 지금은 공부가 너무너무 하고 싶다.

온라인 개학을 한 아들은 공부를 해야 할 때에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는 대신 두 발자국 쯤 되는 바로 옆 책상 모니터를 향한다. 수면바지에 교복 셔츠를 입고서 말이다. 가끔은 모니터를 향해서 대답도 하고 뭐라고 뭐라고 발표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파도 학교에서 아파야 한다는 굳은 의지로 죽어라 학교를 갔던 나의 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다. 격세지감이다. 어떤 방식이 됐든 아들은 어린 시절 나와는 달리 학업을 해야 하는 때에 충실히 학업에 임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특한가.

그러나 시인 도연명은 뭐든 다 때가 있다고 표현한 자신의 시 구절이 천 년의 세월을 넘어 타국에서 의도와는 다르게 인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사실 도연명은 술을 무척이나 사랑해서 중국에서는 술의 성인으로까지 표현되고 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歲月不待人)’ 라는 시 또한 늙기 전에 술을 실컷 마시자 라는 권주시(勸酒詩)이다. 명심보감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 인용되면서 권학시(勸學詩)로 둔갑을 해버렸으니 이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도연명은 저 세상에서 한 잔의 술잔을 기울이면서 행복한 영생을 보내고 있을 테니 도연명만큼은 아니지만 무지하게 술을 사랑하는 입장에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시인의 의도를 진즉 알고 있었더라면 학업을 권하는 때가 아니라 술을 권하는 때라고 반박이나 한 번 해 볼 것을. 하지만 아들아 공부는 다 때가 있으니 한 눈 팔지 말고 열심히 해라. 이 애미는 오늘처럼 비가 추적이는 날에 쪼르륵 하고 투명한 잔을 채우는 한 잔의 술이 무지하게 땡기는구나.
 

歲月不待人(세월부대인)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陶淵明(도연명)

人生無根蒂 (인생무근체)  삶이란 뿌리도 꼭지도 없이
飄如陌上塵(표여맥상진)  길 위의 먼지처럼 나부끼는 것
分散逐風轉(분산축풍전)  나뉘고 흩어져 바람 좇아 돌다보니
此已非常身(차이비상신)  이미 변함없는 나 자신이 아니로다

落地爲兄弟(낙지위형제)  땅에 떨어지면 모두 형제이거늘
何必骨肉親(하필골육친)  어찌 혈육만을 육친이라 하겠는가
得歡當作樂(득환당작락)  기쁨을 얻거든 마땅히 즐거워하고
斗酒聚比隣(두주취비린)  말술이라도 이웃과 어울려 마셔야지

盛年不重來(성년부중래)  젊음은 다시 오지 않으며
一日難再晨(일일난재신)  하루에 새벽은 두 번 오지 않는다
及時當勉勵(급시당면려)  때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힘써라
歲月不待人(세월부대인)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자료출처 : 네이버 블로그 금희쌤 영화와 인문학)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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