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황의록 한국화가협동조합 이사장-1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독일의 실존철학자 니체(Nietzsche)는 “견딜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그래도 우리를 견디게 하는 것은 예술(藝術)뿐이다.”라고 설파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예술이 삶의 피난처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의 예술은 자본이 지배한 상황이다. 돈이 예술 위에 있다. 무한한 상상력과 창조력의 원천인 예술마저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했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돈이 권력이 된 사회에서는 개인과 기업의 발전은 없다. ‘예술’을 잃은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 

 

황의록 한국화가협동조합 이사장
황의록 한국화가협동조합 이사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한국이 30년 만에 괄목할 경제 선진화를 이뤘지만, 잘못된 교육과 정치로 인해 돈과 명예, 권력만 탐하는 약육강식의 정글 사회가 됐다. 인간사회의 가치는 ‘공존공영’이야 하지만, 동물사회로 전락한 원인이 무엇일까.

예술과 사회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다소 생뚱한 질문이지만 황의록 한국화가협동조합(이하 화가조합) 이사장에게 그 질문을 했다. “예술을 통한 정서함양과 도덕 교육을 못 했기 때문이다.”였다. “현재 우리나라 초등학교는 인성함양을 위한 미술 시간이 아예 없다. 점수와 지식으로 서열화하는 교육이 문제다. 어릴 때부터 무한경쟁과 남을 짓밟고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주의 문화만 양산됐다.”고 지적한다.

본래 산업심리학에서 경영학으로 전공을 갈아탄 황 이사장은 경영학 교수로서 국내의 LG, 두산그룹 등에 경영 자문을 맡았던 학자 출신이다. 그랬던 그가 특이하게도 화가들을 돕는 문화경영인이 됐다.

예술가를 홀대하는 사회에서 가난한 화가들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화가들을 도와야 우리의 미래가 있음을 간파하고 화가조합을 설립했다. 유망한 화가들을 선발해 예술의 메카인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지중해 연안 국가로 여행을 보냈다.

경영전문가인 황 이사장은 “무한한 상상의 원천인 예술을 활용해야 한다. 지금 한국이 외국과 비교해 고부가가치 산업 경쟁력에서 처진 이유는 예술을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기업의 진짜 경쟁력은 예술의 생활화다. 외국 기업들이 예술가를 뽑아 월급을 주면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조각할 기회를 준다. 단, 예술작업을 기획하고 창조하는 과정에 직원을 참여시킨다.”라고 말한다.

전국 초등학교에 그림 기증 사업을 펼치는 황의록 이사장을 서초동 ‘갤러리 쿱’에서 만났다. 누구나 쉽게 그림을 향유 할 수 있는 예술의 대중화가 꿈인 그에게서 화가조합을 만든 계기와 예술을 통한 교육과 인성함양, 예술을 통한 기업경쟁력, 문화강국을 위한 정책 등을 들어 본다.

 

- 한때 교육계에 몸을 담았던 경영학 교수에서 미지의 세계라 할 미술계에 입문해 화가조합을 설립하고 갤러리를 운영하는 등 예술문화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이야기가 좀 길다. 미국에서 경영학 공부를 했고, 경영학 교수로서 대학과 큰 기업들의 자문 교수를 지낸 덕분에 해외에 나갈 기회가 많았다. 본래 그림을 좋아해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을 찾아다녔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아틀리에나 작품을 그린 현장을 찾아다녔다.

경영학자지만 사진을 좋아해 공부해서 사진작가로도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국내 화가들을 알게 되었고, 그 형편이 매우 열악한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림 한번 그려본 적도 없고, 예술을 잘 모르지만, 예술은 개인에게는 산소와 같고, 사회에는 윤활유와 같고, 기업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정도는 안다.

이렇게 중요한 예술이 우리 사회에서 홀대를 받고, 외면당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년퇴임과 함께 나라도 무엇인가 해보자고 시작하게 됐다.

 

- 현장교육 실천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 나는 학자지만, 현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교육철학도 남다르다. 경영학은 응용학문이면서 현장학문이다. 이론만 가르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1주일에 3일만 강의하고 1~2일은 대기업 자문 교수를 맡거나, 중소기업을 도우면서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점을 연구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병행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현장에 참여하는 일을 즐겨 하게 되었고, 내가 아는 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 관심이 많아 여기까지 온 것 같다.

 

- 이론을 탈피한 교육이 당시에는 드문 일인데.

▲ 순수학문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경영학 교수가 현장을 모르면 안 된다. 기업자문을 넘어 내가 가진 경영학 지식을 사회에 돌려주기 위해 노력을 했다. 경영학 교과서는 빨라야 10년 전 내용이다. 지식도 새것이 아니다.

10년 전 것을 배운 학생들이 사회로 나가면 바로 써먹지 못한다. 말단으로 입사해서 기획하고 전략을 세우기까지 빨라야 10년 걸린다. 10년 전 배운 것을 10년 후에 써먹으면 20년 격차다. 이미 변할 것 다 변해 쓸모없는 지식이 된다.

그래서 경영학 ‘마케팅소학회’를 만들어 따로 미래를 위한 교육을 하고, 방학이면 학생들과 배낭을 메고 유럽 등 세계를 돌아다녔다. 학생들이 스스로 향후 5~10년 사이에 중요한 이슈로 등장할 과제들을 추리고 보고서를 쓰게 만든 다음 해외로 나가 확인하고 돌아와 책을 쓰게 했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주고 싶었다.

 

- 특이하게 사진을 좋아했다.

▲ 경영학 교수요원으로 선발되어 국비유학생으로 미국에 갔는데 유학 중 경영학보다 사진이 더 좋았다. 사진이 너무 좋아서 사진 책들을 보면서 사진을 독학하다가 아예 경영학을 접고 뉴욕에 있는 사진 학교로 옮겨갈 결심까지 했다.

막상 준비하다 보니 당시 나는 너무 가난해서 국비 장학금 받고 유학을 왔는데, 전공을 바꾸면, 그 순간부터 장학금도 끊기고 공부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처지였다. 다행히 주제 파악을 미리 해서 일단 사진을 접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난 뒤 나중에 다시 사진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귀국해서 정신없이 학교와 기업을 오가다 보니 50대 중반이 됐고, 그때 비로소 사진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다.

 

-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전문사진가가 되었는지.

▲ 내 사진이 좋다는 주변의 칭찬에 사진작가 행세를 하며, 한때 전국을 떠돌며 사진을 찍었다. 해외여행도 엄청 많이 다녔다. 지구의 70% 정도는 돌아본 것 같다. 당연히 사진을 많이 찍었고 프로사진가들과도 어울렸다.

나는 내가 찍은 사진작품에 내 이름을 달아 본 적도 없다. 사진이 마음에 들면 누구라도 마음대로 쓰라는 뜻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이미 충분히 행복을 누렸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 개인전 초대도 다 사양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자 내가 찍는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진을 단지 즐기자고 한 건데, 발전도 없고 스트레스만 쌓여 나로서는 큰 고민이었다. 그런 고민을 프로사진가에게 털어놓았더니 이제는 ‘테크닉보다 심미안을 개발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 심미안이면 미학(美學)을 말하는 것 아닌가.

▲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다. ‘사진은 그림과 유사하니 그림을 좀 많이 보라고 했다. 그동안 나름대로 미적인 내공이 있었다고 자부했지만, 한계에 온 것이다. 그때부터 국내 미술 전시회를 시간만 나면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전시회에서 알게 된 작가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었고, 형편이 매우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호기를 부려 몇 번 회식비를 내가 부담했다. 일종의 수업료인 셈이다.

 

- 화가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

▲ 이게 화가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면서 ‘황 교수는 화가들의 후원자로 등극했다. 그렇게 작가 친구가 늘어나고, 전시회에 초대하는 화가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화가들의 작업실까지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화가들의 삶이 너무 비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결혼을 아예 안 했거나 가정은 있지만 가장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었다. 대한민국에 3만 명 넘는 작가가 있지만, 이 중에 미대 교수나 예고교사, 학원사업 하는 분들을 빼면 그림 팔아 먹고사는 사람은 극소수다.

 

- 그때가 언제인가.

▲ 2013년경인데 너무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림을 배운 적은 없지만, 예술이 중요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예술이 예술가들만을 위한 것이라면, 자기들 좋아서 하는 것이니 그들이 굶든 말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예술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 중요하다. 그림은 우리 사회에 윤활유다. 더불어 사는 게 말이 그렇지 서로 부딪힌다는 뜻이다. 파열음을 내지 않으려면, 문화예술이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조급증과 경쟁심만 난무하고 있다.

냉철해야 할 머리는 욕심으로 과열되어 더불어 사는 게 아니라 싸움박질만 한다. 사회 갈등이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진 이유가 바로 예술이 우리 삶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데는 두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

먼저 예술이 삶 속에 들어오면 사람이 부드럽게 변한다. 남들과 어울리고 포용하고 공감한다. 두 번째로 종교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종교도 형식화돼 버리고, 예술도 일반 대중과 멀어져 사람들이 아귀다툼만 한다. <2회로 이어집니다.>

 

 

황의록 한국화가협동조합 이사장

아주대 명예교수(현재)
한국화가협동조합 이사장(현재)
아주대 경영대학원장, 기획처장(역임)
한국마케팅학회 부회장(역임)
한국소비자학회 회장(역임)
한국유통학회 회장(역임)
한국의농학회 회장(역임)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자문 교수
두산그룹, LG그룹, GS그룹 자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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