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주나 – 세계여행] 네팔 포카라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기, 주나>는 여행 일기 혹은 여행 기억을 나누고 싶은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의 세계 여행기이다. 여기(여행지)에 있는 주나(Juna)의 세계 여행 그 열아홉 번째 이야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늘을 날고 난 뒤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들에게 사진을 보내니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큰 딸이 겁을 상실했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늘을 날고 난 뒤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들에게 사진을 보내니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큰 딸이 겁을 상실했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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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난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짜릿한 일이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히말라야에서 내려와 5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자고, 먹고, 걷고, 앉아 있고, 차 마시고, 엽서 쓰고, 엽서 보내고, 또 자고….

장기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계획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단기 여행을 할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 참 행복하다.

요즘 누군가를 만나거나 연락하게 되면 내 직업을 ‘여행가’라고 소개한다. 법정 최대 근로 시간이 주 52시간이라고 하는데 (근로자로 지내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른다) 나는 무려 180시간을 히말라야에 오르는데 사용했으니 주유수당을 엄청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그냥 쉬고 싶을 때까지 계획 없이 쉬기로 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포카라를 왜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고 부르는지. 산에 다녀와서 너무 힘들어서 그냥 쉬고 싶은 것이 분명하다. 히말라야와 포카라에 다녀온 사람들은 아마 반박할 수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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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서 생긴 새로운 취미. 소중한 사람에게 엽서 보내기.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포카라의 일상. 네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흥이 많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알람도 맞추지 않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일어나서 맛집을 검색한다. 요즘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지 ‘구글맵’을 사용할 수 있다. 난 대부분의 맛집을 구글맵을 통해 검색한다. 식당이라고 검색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평점 4점 이상의 가게에 가면 대부분 성공한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리뷰와 점수를 남기기 때문이다. 오늘의 맛집을 정하고, 대충 씻고, 동네 주민 마냥 슬슬 바람을 쐬면서 걷는다. 길에는 나만큼 팔자 좋은 개들이 낮잠을 자고 있다. 그렇게 때로는 호숫가를 따라서, 때로는 동네 골목을 따라서 걷다가 저렴한 포카라의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그리고 카페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실컷 먹고 놀아도 숙박비 포함 하루 경비 약 2만원밖에 들지 않는다. 포카라가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이유가 아마 저렴한 물가 덕분이지 않을까?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 심심해진 어느 날, 하늘을 날아 봤다. 태어나서 처음 패러글라이딩을 해봤다. 세계에는 3대 패러글라이딩 명소가 있는데 스위스 인터라켄, 네팔 포카라, 터키 페티예 라고 한다. 그중 네팔 포카라는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6500루피, 한화로 약 6만5000원으로 포카라의 물가치고는 어마어마하게 비싸지만 스위스에 가면 3배 넘는 가격이라고 한다. 시간이 많아 발품을 팔아서 저렴한 가격에 여행사 예약을 하고, 다음 날 지프를 타고 ‘사랑곳’이라는 산에 올랐다. 한글로 번역해서 사랑곳이 아니라 정말 이름이 ‘Sarangko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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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 자체로서 심심하지 않은 포카라.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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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를 왜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고 부르는지. 산에 다녀와서 너무 힘들어서 그냥 쉬고 싶은 것이 분명하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000원의 행복. 실컷 먹고 놀아도 숙박비 포함 하루 경비 약 2만원밖에 들지 않는다. 포카라가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이유가 아마 저렴한 물가 덕분이지 않을까?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이렇게 예쁜 이름을 가진 곳에서 하늘을 날게 되다니. ‘아, 낭만적이다’는 무슨… 솔직히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내가 왜 또 이런 바보 같은 일을 하려고 했을까 엄청 후회하면서 뛰는 순서를 뽑았다. 내가 첫 번째다. 난 1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뒤에 있는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그 위치가 싫다. 하지만 1등은 무조건 해야 한다. 내가 주춤하면 뒤에 있는 모두가 주춤하게 된다. 안전 수칙을 설명하고,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을 주지 않고, 카운트를 시작했다. 3, 2, 1. “오 마이 갓!!!!!”

하늘을 난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짜릿한 일이었다.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뒤에 앉은 조종사가 계속 말을 시켰다. 나는 이 환상적인 시간을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패러글라이딩은 평온하게 하늘을 떠다니는, 정말로 나는 듯한 기분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늘을 날고 난 뒤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들에게 사진을 보내니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큰 딸이 겁을 상실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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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나 겁쟁이였지? 아직도 귀신을 무서워하고, 밤에 자다가 무서워 불을 켜고 자고, 놀이기구도 못 타고, 공포영화도 못 보고, 동물도 무서워하고, 징그럽게 생겼다고 못 먹는 것도 많은 겁쟁이 중의 겁쟁이인 내가 세계 여행 중이라니.

남들이 보면 전혀 겁이 없을 것 같은 나의 하루하루가 포카라에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매일 밤, 함께 히말라야에 다녀온 동지들과 늦게까지 수다를 떨면서 놀았다. 대화 주제는 여행, 연애, 일 등등 정말 평범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날 밤, 한 동생이 여행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아, 여행 가고 싶다.’

세상에. 여행이 가고 싶다고? 나 정말 여행이 일상이 되었구나. 여행이 일상이 되어버린 나는 어떻게 여행을 떠나야 하는 거지?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았고, 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포카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서 아마도 언젠가 꼭 다시 가게 될 것 같다. 언젠가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다시 포카라에 방문할 그날을 고대하며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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