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탐방기] 부산국제영화제 1편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올해 많은 영화제들이 코로나로 인해 개최가 연기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1년에 단 한 번 뿐인 순간을 위해 오래 준비하고 기다려온 이들 모두 갑작스러운 재난에 당혹스러울 테다. 아쉬운 마음을 담아, 당분간 영화제 탐방기를 집중적으로 연재하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지난 추억을 돌이켜보거나, 미뤄진 영화제를 기다리는 데에 도움이 되거나, 관객을 만날 시기를 놓친 영화들을 다시 찾아보게 되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 이번 편은 작년에 다녀온 부산국제영화제다.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아시아 최대의 영화 축제

영화제를 가본 적 없는 이에게도 부산의 밤하늘을 수놓는 레드카펫과 개막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함성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작년에도 85개국 299편의 영화가 자리를 빛낸 부산국제영화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화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에 시작되어 작년에 24회를 맞이했다. 한국 영화의 발상지인 부산을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기획되었고, 서구에 억눌려 있던 아시아 영화인의 연대를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열흘간 이루어졌다. 영화제의 상징이 된 영화의 전당, 벡스코를 비롯해 해운대 일대의 상영관들 모두 무대가 되었다. 영화 이외에도 먹거리나 공연 등 다양한 문화 축제가 함께 진행되었다. 상영 프로그램은 <아시아영화의 창>, <한국영화의 오늘>, <오픈 시네마>, <부산 클래식> 등의 14개로 구성되었다. 부산의 곳곳을 바쁘게 오가도 모두 섭렵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롭고 화려한 프로그램이었다. 때문에 두 편에 걸쳐 각각의 상영 섹션을 살펴보고, 그 후부터 영화제에서 직접 관람해본 영화와 프로그램을 소개하려 한다.

 

영화 '동굴'과  포스터
영화 '동굴'과 영화 '하이파 거리' 포스터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아시아영화의 수작 발견

아시아 최대의 영화 축제인 만큼,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아시아와 관련된 섹션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아시아영화의 창>은 아시아 감독의 다양한 시각과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화제작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아시아영화는 대개 그 나라가 겪고 있는 현실과 맞닿은 경우가 많은데,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인도 영화들 역시 현재의 문제들을 다채롭게 담아내어 눈길을 끌었다. ‘나의 인증번호’(2019)의 주인공은 새 신분증을 받았다가 점괘 때문에 모험을 떠나고, ‘쓰디쓴 밤’(2019)은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과 도시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봄베이의 장미’(2019)는 조혼을 피하기 위해 도망쳐 클럽 댄서로 살아가는 소녀와 무장 단체에 의해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된 청년의 이야기다. 인도 외에도 이란, 네팔, 파키스탄, 베트남 등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국가의 영화들이 소개되었다. 그 중 영화 ‘동굴’(2019)은 태국의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이 폭우로 인해 동굴에 갇히자 전 세계의 구조대원들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사고 현장으로 모여든 이야기다. 2018년 태국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반갑고 궁금한 영화였을 것이다.

또 하나의 섹션인 <뉴 커런츠>는 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이끌 신인 감독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장편 영화를 모아놓았다. 보통 거장 혹은 중견 감독이 조명되는 영화제가 많기 때문에 신인 감독의 첫걸음을 응원하고 주의 깊게 살펴본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섹션이었다. ‘잭푸르트’(2019)는 게릴라전이 펼쳐지던 말라야 비상사태를, ‘하이파 거리’(2019)는 이라크 내전을 그리며 피해자가 된 아이들을 보여주었다. 이란의 ‘디아파종’(2019), 인도의 ‘그냥 그대로’(2019), 한국의 ‘69세’(2019)는 여성을 억압하고 보호하지 않는 사회적 문제를 풀어내며 아시아 영화에서 약자인 소수자가 그려지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아시아영화의 창>과 <뉴 커런츠> 모두 세계무대에서 소외된 지역의 재능 있는 감독과 작품을 발굴해 아시아영화의 성장 가능성을 높였다. 지난 한 해 동안 아시아영화의 주요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다양한 영화 세계를 경험하려는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영화 '살인의 추억' 포스터
영화 '살인의 추억', '생일', '극한직업' 포스터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한국영화의 오늘

한국 영화를 소개한 대표적인 섹션으로는 <한국영화의 오늘_파노라마>, <한국영화의 오늘_비전>, <한국영화 회고전>이 있었다. <한국영화 회고전>은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특정 감독이나 의미 있는 주제의 회고전을 통해 한국영화사를 재조명하는 장이다. 작년엔 정일성 촬영감독이 그 주인공이 되어 ‘화녀’(1971), ‘만다라’(1981)와 같은 대표작이 상영되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영화사 100년을 기념하는 영화 10편이 선정되기도 했다. ‘하녀’(1960)부터 ‘올드보이’(2003)까지 기념비적인 영화들이 소개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기생충’(2019)으로 화제를 모은 봉준호 감독의 또 다른 역작, ‘살인의 추억’(2003)이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영화의 오늘_파노라마> 부문은 동시대 한국영화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는 그해의 대표작과 최신작을 선보였다. 김윤석 배우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2019), 전도연 배우가 열연한 세월호 영화 ‘생일’(2019), 홍상수 감독의 ‘강변호텔’(2019), 천만을 돌파한 ‘극한직업’(2019) 등이 있었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블록버스터에서 독립영화까지 망라해 작년 한 해를 빛낸 영화들을 모아놓았다. <한국영화의 오늘_비전>은 뛰어난 작품성과 독창적 비전을 지닌 독립영화 최신작을 선보였다. 최근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연이어 수상하고 있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부터 미군 위안부를 소재로 만든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가 눈길을 끌었다. 그 해 제작된 영화를 보여주기 때문에 한국영화의 미래를 예상해볼 수 있는 부문이었다. 그 외에도 최근 개봉한 ‘초미의 관심사’(2019)와 ‘야구소녀’(2019)는 각각 가수 치타와 배우 이주영을 중심으로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한국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애정과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