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말에도 온도가 있다
배려의 말에도 온도가 있다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0.06.19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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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친한 동생이 얼마 전에 책을 냈다. 예전에 ‘위클리 서울’에도 글을 썼던 그녀는 장애가 있는 아들과 장애가 없는 딸을 키우고 있다. 그리고 그 두 아이는 쌍둥이다. 내가 그 친구를 얼마나 대단하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대단한 거 보다 훨씬 더 대단하게 생각한다고. 그녀는 엄마이자 전사이며, 작가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일 모두를 야물딱지게 해내고 있다. 이번에 그녀가 낸 책은 ‘배려의 말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제목만 봐도 책 내용이 무엇인지 감이 온다.

 

류승연 작가의 '배려의말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류승연 작가의 '배려의 말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장애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사회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상처받을 일이 차고 넘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때문에 이런 책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배려 없는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사람을 아프게 하고 배려 있는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사람에게 힘이 되는 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거다.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고 고개를 끄덕였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놓았다. 그리고 내 인생에 있어서 배려의 말들은 어떠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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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 대학 다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물어봤던 적이 있다. 같이 학교 다니는 친구 중에 장애인이 있냐고. 장애가 있는 지는 잘 모르겠는데 조금 이상한 친구가 하나 있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 말씀하시는데 불쑥 불쑥 끼어들거나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한번은 일명 ‘누드 사건’이라고 어이없는 일이 있었단다. 드로잉 시간에 이 친구가 핸드폰으로 남성 누드모델의 사진을 찍었던 모양이다. 교실은 갑자기 발칵 뒤집어졌고 교수님도 아이들도 그 친구에게 무슨 짓이냐고 화를 냈다고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놀란 눈으로 “지금 다 못 그릴 거 같아서 집에 가서 마저 그리려고 사진을 찍은 건데…”라고 말했다는 거다.

누드모델의 사진을 몰래 찍은 것 하나만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면 이건 분명 경을 칠 일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평소에도 엉뚱하고 상황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자주 보인 걸로 봐서 ‘경계선 지적 지능장애’가 있거나 ‘아스퍼거 장애’가 있는 게 아닐까 나름 짐작해 본다.
 

깨져버린 그릇처럼. 생각없이 내뱉은 내 말들이 누군가에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될 수도 있다.
깨져버린 그릇처럼 생각없이 내뱉은 내 말들이 누군가에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될 수도 있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보통의 경우. 사람들이 누군가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누가 봐도 장애가 있다고 판단될 수 있는 경우고, 또 다른 하나는 자기에게 장애가 있다고 상대에게 말을 해주는 경우다. 만약,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딱히 장애가 있다고 단정 짓기 어려운 누군가가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오해의 말을 쏟아 놓는다. “쟤 좀 이상해” “바보 아냐?” “재수 없어”라는 수군거림과 함께 그들의 금 밖으로 밀어낸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일상의 실수들로 인해.

그렇다면 왜 자신의 상황을 먼저 오픈하지 않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려서는, 아이가 가진 문제에 대해 오픈하는 것을 부모가 꺼려했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차별과 부당한 대접을 받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다보니 비장애인도 장애인도 아닌 그 중간쯤에서 고통 받으며 어정쩡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아마 누드모델의 사진을 찍은 그 학생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미뤄 짐작해 본다. 만약 교수나 학생들이 그런 상황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그랬다면 그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배려의 말(비난이 아닌)과 행동은 조금 달라졌을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입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입이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우리가 살면서 저지르게 되는 잘못 중에 적잖은 부분이 사실은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경우다. 예를 들면 그런 거다. 장애인을 대할 때 그들을 동정하거나 아픈 사람 대하듯 하는 말이나 행동이다. 장애 아동을 보았을 때 “엄마 고생 그만 시키고 빨리 나아라.”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주로 하는 말이다. 엄마도 아이도 불쌍하다는 동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장애는 감기처럼 실컷 앓고 나면 낫는 병이 아니다. 장애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비장애인이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장애가 있다는 것은 불편하다. 속상하고 힘들 때가 많다. 하지만 비장애인이라고 해서 난관을 겪지 않고 사는 건 아니다.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잘 갖춰만 진다면 장애가 있다고 더 불행해질 일은 없다. 큰 틀에서는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개선해 나가고 작은 틀에서는 사람과 사람, 내가 배려없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고쳐나가면 된다. 어떻게 고쳐야 되냐고 묻는다면 ‘배려의 말들’이라는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알기 쉽게 잘 적어 놓았다.

류승연 작가의 '배려의 말들' ⓒ위클리서울/ 유유출판사

사실, ‘배려의 말들’에 나오는 이야기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한 글들이다. 뚝 떨어진 섬에서 혼자 평생을 살게 된다면 모를까 우리는 싫으나 좋으나 사람들 속에서 섞여 살아가야 한다. 그러다보니 인간생활 필수품인 ‘말’ 때문에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누군가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 한 마디 때문에 평생을 후회하며 살게 되기도 한다. 바로 내 경우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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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하지만 유독 한 사람에게만은 그러지 못 했다. 내 위로 두 살 많은 언니가 있었다. ‘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쓴 것은 지금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 둘은 어려서부터 유독 잘 싸웠다. 언니는 막내인 내가 다른 가족으로부터 필요 이상으로 사랑받는 것에 대한 질투 혹은 공평치 못함에 대한 불만이었고, 나는 언니가 이유 없이 나를 못마땅해 하며 쏘아대는 말에 상처받았다. 어른이 된 이후로 언니는 달라졌지만 내 안에는 그때의 앙금이 여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한번은 언니가 사춘기 딸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사실 나에게도 답은 없었다. 고만 고만한 아들 둘을 키우며 힘들긴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언니를 몰아붙였다. 엄마가 중심을 못 잡고 휘둘리니까 그렇게 된 거라고. 언니가 잘못해서 애가 더 저렇게 된 거라고 말이다. 언니는 상처 받았을 테고 마음이 아팠을 거다. 더 자신 없어졌을 테고 무기력해졌을 거다. 그렇게 나는 언니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신나게 내뱉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나는 그 말을 쓸어 담을 기회조차 영원히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배려 없는 말들은 그렇게 상처로 남는다. 처음엔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상처를 받고 그 다음엔 그 말을 뱉은 사람에게 그 상처가 되돌아온다. 살면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늘 배려 깊은 말을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최소한 상처 되는 말은 안 하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말부터 배우지만 침묵하는 것은 여간해선 배우기 힘든 모양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나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 혹은 머리가 남들처럼 빨리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나 남에게 퍼주기만 하는 사람. 사회성이 떨어져 남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사람이나 자기 비하에 빠진 사람에게 우리는 간혹 이렇게 말한다.

“다 너를 위해 해주는 말이니까 잘 들어.”

물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말이 너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의 대부분은 ‘한여름의 게딱지’만큼이나 속 빈 강정일 뿐이다. 때문에 배려의 말에도 조건이 있다.
 

첫째, 상대가 원하고 듣고 싶어 할 때 해야 한다.
둘째, 상대의 아픈 곳을 건드리거나 후벼 파서는 안 된다.
셋째, 내가 하는 말이 상대를 ‘위해서’ 하는 말인지 상대의 ‘위에서’ 하려는 말인지 자문해보고 또 자문해봐야 한다. <배려의 말들 24p>

 

말이란 가시덤풀 속의 풍선처럼 한 없이 가볍고 예민한 것인지도 모른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말이란 가시덤풀 속의 풍선처럼 한 없이 가볍고 예민한 것인지도 모른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말에 담긴 진심만큼이나 중요한 건 상대에게 가 닿는 내 말의 온도이다.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적정 온도라는 것이 있듯 사람의 말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내 말을 맛있게 먹고 부담스럽지 않게 소화시키면 제일 좋다. 몸에 좋고 안 좋고는 그 다음 문제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다음 불판에 구워먹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처럼, 배려의 말은 그렇게 맛있으면 된다. 오늘 밤, 사람들과 약속이 하나 있다. 누군가는 힘든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은 ‘공감’이다. 그보다 더 좋은 건 입을 다물고 지갑을 여는 건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 정말 즐거웠어. 또 보자.”라는 문자를 받게 되길 바란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나는 오늘 하루 행복할 것이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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