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18세기의 방
[신간] 18세기의 방
  • 이주리 기자
  • 승인 2020.06.2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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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은경,이혜수,정병설 지음/ 문학동네
ⓒ위클리서울/ 문학동네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사람의 일생은 방에서 피고 진다. 방은 우리 존재의 기본 배경이자 무대. 우리는 방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결국 방에서 죽는다. 혼자만의 오롯한 안식처이자 피난처가 되어주는 방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방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침실, 서재, 응접실, 부엌 등 우리에게 친숙한 삶의 공간은 사실 역사적으로 구성된 근대의 산물이다. 유럽의 경우 17~18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집이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공간이 되었다. 이 시기에 집주인의 취향대로 집을 꾸며주는 인테리어 디자인이 본격적으로 상업화됐다. 편안한 소파가 유행하고 비밀 서랍이 갖춰진 책상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획기적 변화는 이 시대의 여러 다른 변화와 맞물려 있다. 영국의 경우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소비문화에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중국이나 인도에서 들여온 수입품(면제품, 도자기, 차 등)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18세기의 방'은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스물일곱 명이 ‘방’을 키워드로 18세기 방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를 탐구한 책이다. 방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18세기 동서양에 나타난 주택구조, 인테리어 등의 변화를 추적하고 특히 사생활을 구성하는 방의 의미를 풀어냈다. 책에 실린 글은 2018년 11월부터 2019년 5월까지 ‘18세기의 방’이라는 제목으로 네이버지식백과에 연재되며 큰 호응을 얻었다. '18세기의 맛―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 '18세기 도시―교류의 시작과 장소의 역사'와 궤를 나란히 하는 한국18세기학회의 세번째 책이다.

필립 아리에스는 17세기 말까지는 아무도 혼자 지내지 않았다고 했다. 침실도, 심지어 침대도 공용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18세기 들어서부터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전시하는 무대로 기능하던 집이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사생활을 보장하는 안락한 공간으로 재정의 되었다.

개인공간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종류의 방이 생겨났고, 이에 따라 새로운 가구와 물건이 인기를 끌었다. 침실 옆에는 개인용 ‘클로젯’이 만들어졌다. 독서와 사색을 오롯이 즐기는 자기만의 서재가 만들어졌고, 여성이 주로 쓴 글쓰기용 책상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했기에 제인 오스틴은 비록 자기만의 방에서 글을 쓸 수는 없었지만, 가족들이 같이 지내던 응접실 창가 작은 탁자 위에 아버지가 선물한 ‘글쓰기 상자(writing box)’를 놓고 글을 썼다.

방에서 개인이 태어나고 사생활이 펼쳐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방은 가장 내밀하기 때문에 가장 활발한 관계의 장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18세기의 방에는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숨길지, 누구를 들이고 누구를 차단할지 깊이 고민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귀부인의 화장방은 여성이 바깥으로 나가기 전 씻고 치장하는 사적인 공간이지만 사교의 공간이기도 했다. 영국이든 프랑스든 화장방에서 이뤄진 귀부인의 아침 접견에는 애인, 다양한 상인, 그 밖의 여러 이유로 부름을 받고 온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귀부인은 잠자리에서 갓 일어난 차림으로 접견을 시작해, 방문객들이 보는 앞에서 몇 시간에 걸쳐 머리와 몸 치장을 마치고 화려하게 변신했다. 화장방에는 침대 옆에 실내용 변기를 감추어둘 수 있는 캐비닛을 두기도 했다. 방은 청결과 교양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미덕으로 가려지지 않는 몸의 진실이 공개되는 장소이기도 한 셈이다.

18세기 유럽의 방은 온갖 이질적이고 이국적인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거기에는 중국풍 가구와 인도산 면직물, 오스만 제국의 카펫이 놓여 있다. 조선에서는 나무로 실외 병풍을 만들어 집밖 자연을 축소된 형태로 집안으로 끌어들였고 영국에서는 지구 각지에서 가져온 희귀한 열대식물을 전시하고자 온실을 지었다. 방안으로 자연이 포섭되면서 꽃은 가장 럭셔리한 장식이 되었고 정원은 내면세계를 표상하는 공간이 되었다.

관련 지식이 있고 온실을 지을 재력이 있어야 소유할 수 있던 열대식물은 특히 부와 고급 취향의 상징이었다. 소설가 마리아 에지워스의 대표작 '벨린다'의 한 대목이 흥미롭다. 소설에는 100년에 한 번 피는 알로에 꽃이 등장하는데, 이는 런던 사교계의 유명한 안주인 레이디 들라쿠르가 경쟁자의 파티에서 자기 파티로 손님들을 빼앗아오기 위해 애써 구한 것이다. 라이벌인 러트리지 부인은 엄청난 공을 들여 만찬을 준비하지만 초대받은 모든 이가 레이디 들라쿠르의 알로에를 보러 자리를 떠나고, 러트리지 부인은 울음을 터뜨린다. 파인애플은 귀한 문제적 식물이었다. 남미에서 건너와 어마어마한 몸값을 갱신하며 부와 권력의 표상이 된 파인애플은, 식용보다는 장식용으로 한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1675년, 영국의 첫 파인애플을 정원사 존 로즈가 찰스 2세에게 헌정하는 모습은 그림으로 남아 있다.

경이로운 물건을 수집한 취미방도 생겼다. 여자들은 인형집에 온갖 이국적이고 화려한 미니어처를 전시하고 자신의 취향을 한껏 자랑하기도 했다.

지극히 사적일 것 같은 공간에,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살림을 감독하는 임피 부인>은 18세기 말 인도 캘커타로 이주한 영국인의 거실을 그린 회화로, 식민지의 엘리트 여성이 이용하는 공간을 그렸다는 점에서 희귀한 예다. 덥고 습한 인도 기후에서도 석고 몰딩과 벽판 문양 등 가능한 한 전형적인 영국 거실을 재현하고자 한 흔적이 보인다. 게다가 인도 남성 열여섯 명이 임피 부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데 영국인이 인도 생활 중 수많은 하인을 부리는 모습은 당시 방문객에게 늘 놀라운 일로 언급됐다. 초기에 영국인이 약간의 두려움을 갖고 대하던 인도 ‘원주민’이 임피 부인의 초상에서는 하인으로 변모했으며, 영국인은 사실상 인도 하인들 앞에 모든 행동이 공개되는 공적인 삶(public life)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18세기에는 본격적으로 반려동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초상화에 애완동물이 함께 등장하는 사례가 많다. 그런데 그와 함께 은목걸이를 한 흑인 시동도 종종 등장한다. 어떤 의미일까? 오늘날 정서로 볼 때 충격적이게도, 당시 애완동물의 유행에는 흑인 시동이 포함돼 있었다. 1807년 노예제 폐지법이 영국의회에서 통과되기 전까지 영국 본토와 식민지에는 노예가 존재했고, 부유층 여성은 흑인 시동을 한 명쯤 거느렸다. 이들은 하인에 속했지만 사실은 재산으로 거래되었고, 원숭이처럼 부와 유행을 과시하는 전시용이었다. 따라서 주인의 초상화나 가족 초상화에 절대 등장하지 않는 다른 하인과 달리 흑인 시동은 애완견, 원숭이, 앵무새와 함께 ‘애완동물’로서 포함되었다. 그랬기에 흑인 시동은 한결같이 마치 개 목걸이를 연상시키는 은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반노예제도 운동이 진행됨과 동시에 동물학대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함께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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