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란을 닮은 ‘아잉’
파이란을 닮은 ‘아잉’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0.07.06 15: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영화 '파이란' 스틸컷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영화 '파이란' 스틸컷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군대 가기 전, 돼지 껍데기 집에서 주말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둘째가 월급을 받았단다.

월급 200에 보너스 10해서 210만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봐요.”
“그냥 돈으로 줘.”
“돈 말고요.”
“싫어. 돈이 더 좋아.”

결국 돈 말고 감자탕을 얻어먹었다. 밥을 먹다 아들은 같이 일하는 베트남 친구들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을 넘겼을 뿐인데 남의 나라에 와서 다들 너무 고생하는 거 같다고. 그러다 은근히 지 자랑도 늘어놓는다.

“베트남에서 온 친구들이 날 좋아해.”
“같이 일하는 여자애들?”
“어. 내가 손 선풍기 한 대씩 사줬거든.”
“돈으로 인기를 산 거 아냐?”

 

영화 '파이란' 스틸컷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장난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같은 또래고 남자와 여자가 같이 일하다보면 서로 좋아할 수도 있고 뭐 그러다보면 사귈 수도 있고 국제결혼도 하게 되고...... 거기다 그런 생각까지 했다. 베트남 며느리를 보면 추운 겨울엔 거기 가서 따뜻하게 보내다 올 수 있겠다고. 아들은 뼈에서 고기를 야무지게 발라내며 쪽쪽 빨아 먹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말을 툭 던졌다.

“전에 어떤 손님이 걔들한테 이상한 짓 해서 내가 경찰에 신고했었거든.”
“헉 진짜? 무슨 짓을 했길래 신고까지 해?”
“허리며 엉덩이며 툭툭 건드리잖아. 싫다고 하는데도.”
“신고했다고 사장이 너한테 뭐라고 안 해?”
“당연히 뭐라고 했지.”
“뭐랬는데?”
“사장형님이 나보고 X나 잘했대.”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장사를 하는 사람에겐 손님이 왕이다. 새파랗게 어린 아르바이트생이 손님을, 아니 왕을 경찰에 신고했다. 베트남에서 온 새파랗게 어린 아르바이트생을 괴롭혔다는 죄목으로 말이다. 그런데 사장은 그런 아르바이트생들을 혼내기는커녕 X나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단다. 나는 뼈다귀를 내려놓으며 아들에게 말했다.

“너희 사장님 때문에 엄마 감동 받았다.”
“우리 사장형님이 좀 멋있긴 하지. 멀리 집 떠나 와서 고생한다고 애들한테 엄청 잘 해줘.”
“그러니까 말야. 어디 남의 집 귀한 딸한테 드런 손을 갖다 대고 말야. 돼지 껍데기나 얌전히 쳐 먹다 갈 것이지. 그런 것들은 아주 족발 뼈다귀로 쳐 맞아야 돼. 머리에 든 거 없는 파시스트 나부랭이들 같으니라고!!”
“엄마, 근데 파시스트가 뭐야?”
“나도 잘 몰라. 암튼 그런 거 있어.”

 

중학교 1학년 때 베트남 하롱베이에 갔었던 둘째.
중학교 1학년 때 베트남 하롱베이에 갔었던 둘째.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사람이 사람에게 감동을 받는 것은 이렇듯 사소하고 작은 일들 때문이다. 그 돼지 껍데기집 사장형님. 필히 대박 나시길!!

여행 중에 아들에게 문자를 받았다.

‘입영통지서 나왔네. 아르바이트는 어제로 마무리 했어요.’

일을 그만 둔다고 하자 서운했는지 같이 일하던 베트남 친구들이 선물도 주고 편지도 써 줬다며 사진을 보냈다. 요즘은 엄마보다 남들이 자길 더 챙겨주는 거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스무 살 넘으면 엄마 찾는 거 아니다.’

아들이 보내온 사진에는 앳돼 보이는 베트남 친구들이 여럿 보였다. 그리고 그 중에 ‘아잉’이라는 아이가 아들에게 써 보냈다는 편지를 보았다.

영화 '파이란' 포스터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모든 사람들이 높아서 자신이 없다.
모든 재미가 끝날 것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상태를 쓰지만 계속 울컥해. 
아무도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좋은 미래를 위해 그것을 유지하십시오.
아잉은 동환이 미션을 잘 성취할 것이라고 항상 믿습니다.
처음으로 출근한 예의바른 한국어 배려하는 사람.
열심히 일하고 외국인을 경멸하지 않는다.
나의 젊음을 많은 아름다운 추억을 가져다주신 감사합니다.
너무 미안해. 내 한국어가 좋지 않아. 
우리가 서로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몰라.
2년 만에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나는 감히 보장하지 않지만 다낭에 데려가 줄 것이다.
소고기 쌀국수를 먹을 것이다.
오빠 너무 행복한. 너무 보고 싶을. 진짜요. 
당신께 행운을 빌어요.
성공하길 바래요. 

아잉이라는 아이의 편지를 읽는데 영화 ‘파이란’이 생각났다. 서툰 글씨로 꾹꾹 눌러 써내려간 편지. 한번 만나 본 적도 없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내가 강재에게 남긴 편지였다.

“처음 바다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도 만났습니다. 강재씨, 당신 덕분에 여기서 일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친절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가장 친절합니다. 당신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당신을 만나면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강재씨, 당신을 사랑해도 되나요?”

왠지 그 아이. 장백지(파이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일한 돈을 가족에게 모두 보내고 일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친구들과 비좁고 무더운 방에서 잠을 잔다는 아이. 그리고 먼 타국에 와서 만나게 된 인연들. 그 속에 우리 아들이 있고 돼지 껍데기 집 사장이 있었겠지...... 군에 입대한 아들은 얼마 전 휴가를 나왔을 때, 돼지 껍데기 집 사장형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왔단다. 용돈으로 받은 5만원을 나에게 꺼내 보이며 자기도 언젠가는 사장형님처럼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 사장형님 덕분에 세상이 제법 살만한 곳으로 여겨졌던가 보다. 그나저나 아잉은 우리 아들이 제대할 때까지 기다려 주려나. 베트남에 초대할 때 나도 데려가면 좋을 텐데. 반미 바게트와 달달한 연유 커피를 마시며 아잉의 가족들과 사이좋게 놀다오고 싶다. 혹시 모르지 않나. 그러다보면 사돈의 연까지 맺게 될지도 말이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