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에서 ‘살겠다’고 외치다
‘헬조선’에서 ‘살겠다’고 외치다
  • 김은영 기자
  • 승인 2020.07.13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김탁환 작가 장편사회소설 '살아야겠다'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지난 6월 부천시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위클리서울/ 왕성국 기자
지난 6월 부천시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위클리서울/ 왕성국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가 전 세계에 확산되며 2일 현재 1000만 명이 넘는 확진자를 발생시켰다. 사망자도 50만 명이 넘었고 지금도 계속 늘고 있다. 정체불명의 신종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전 세계가 비상인 가운데 우리나라는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 공개 및 행정 정책으로 해외에서 호평 받고 있다.

하지만 5년 전 여름은 지금과 상황이 달랐다. 중동지역에서 들어온 신종 바이러스로 의료진들은 혼란에 빠졌고 이들을 진두지휘해야 할 ‘국가’라는 컨트롤타워는 없었다. 정부는 일찌감치 방역 컨트롤타워는 정부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정부는 초동방역에 실패하며 초기 단 한 명의 바이러스 감염자를 막지 못해 총 186명의 확진자와 38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헬조선’에서 끝까지 살고 싶어 하던 사람들의 기록

지난 2015년 7월 서울대학교 음압병실 앞에는 하얀 A4 용지에 ‘살려야 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당시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해 수많은 환자들이 발생하던 시기였다. 환자들은 음압병실로 옮겨졌고 서울대학교 음압병실에도 의료진들이 환자를 살려야겠다는 절실한 마음이 해당 문구로 이어졌다. 하지만 의료진들의 이러한 절실한 바람과는 달리 ‘살려야 한다’는 우스꽝스러운 패러디로 사람들에게 회자됐다.

김탁환 작가의 장편소설 ‘살아야겠다’(도서출판 북스피어)는 이러한 패러디의 일환으로 ‘살아야겠다’를 제목으로 선정했다. 김 작가는 혼돈스러운 메르스 사태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잃고 시들어간 환자들을 양지로 이끌어냈다. 그는 살고 싶다고 외치던 환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사회소설로 완성했다. ‘살아야겠다’는 제목은 당시 유행하던 ‘헬(Hell)조선’에서라도 ‘살고 싶다’는 염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정부와 병원, 언론은 이를 외면했다. 소외되고 잊혀간 메르스 환자들이 글 속에서 다시 생명력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실제 메르스 환자들과 유가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투명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신속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정부는 메르스 환자가 나왔던 병원의 실명을 알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 알파벳으로 공개된 병원의 이름을 추적해서 알아냈다. 인터넷에서 알아낸 병원 정보를 공유하고 해당 병원과 그 주변 지역을 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메르스 또한 코로나 19와 같이 백신도 치료약도 없는 신종 바이러스였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시 메르스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에서만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바이러스였다. 그런 바이러스가 왜 이렇게 퍼지게 된 것일까.

메르스 바이러스의 마지막 환자가 퇴원하고 난 후 다시 3년 후 또 다른 메르스 환자가 중동에서 입국한다. 현실 속 정부는 초기 환자를 완벽하게 대응한 결과 확진자 1명으로 상황을 종료한다. 하지만 아직 소설 속 시계는 2015년에 멈춰있다. 소설 속 세계는 절망적이다. 정부와 병원은 국민과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의지가 없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저 아무도 믿지 않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김탁환 작가의 '살아야겠다' ⓒ위클리서울/ 북스피어

억지로 존재가 사라진 사람들의 처절한 투병기

소설은 메르스 환자들이 겪었던 일들을 세세하게 쏟아낸다. 메르스는 악랄한 전염병이었다. 치명율도 높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가혹한 병이었다. 사회는 메르스 완치 환자들을 외면했다. 아예 그들이 자신들의 범위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다.

소설 속 메르스 환자 길동화는 메르스를 앓고 난 후 사람들이 많은 실내를 피한다. 공기가 조금만 탁해도 기침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메르스 환자였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전염병을 앓았다고 사회는 그를 사회부적격자로 낙인찍었다. 그는 39년 직장이던 물류 창고에서 쫓겨나고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로 떠돌았다. 그는 메르스 환자였다는 이유로 ‘인간 바이러스’ 취급을 받았다. 메르스 확진자가 머물렀던 응급실에서 감염되었다가 완치 판정을 받은 이 첫 꽃송이는 다행히 민간 방송기자로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메르스 확진 뒤 아버지의 죽음도 수습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소설 ‘살아야겠다’는 김석주 환자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치과의사이자 림프종을 앓았던 그는 끝내 소설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는 실제 메르스 환자였다. 김석주 환자의 서사는 당시 메르스 80번 환자의 이야기를 차용했다. 김석주는 메르스가 찾아오지만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림프종은 메르스와 유사한 증세를 보인다. 고열과 두통, 빈혈과 같은 메르스 증세가 다시 발현되자 그와 가족들은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메르스 사망자 총 33명 중 암, 심장, 폐, 신장 질환, 당뇨, 면역저하 질환 등 기저질환 보유자와 고연령층은 고위험군에 속했고 이들의 치명률은 90.9%에 달했다.

김 환자는 다시 증세가 악화되고 병원을 찾은 후 그는 살아서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메르스로 죽음이 사망 원인이 아니었다. 그의 병명은 림프종이었지만 메르스를 앓았다는 이유로 병원을 나올 수 없었다. 메르스를 잡겠다고 반년 동안 격리병실에 수용되었지만 그의 사인은 악성 림프종이었다. 그는 결과적으로 메르스 환자가 아니었음에도 전파력이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병원에서 전염병 환자처럼 격리돼 죽어갔다. 유가족들은 정부와 의료기관, 행정기관의 무능력한 정책 때문에 두려움과 분노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만 봐야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메르스 사태에 대한 국가와 병원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기로 한다. 그리고 5년 후인 지난 2월 현실 속 메르스 80번 환자의 유가족들은 끝내 ‘정부의 대응 부실로 인한 사망’이라는 배상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해 메르스 확진자는 186명. 사망자 38명, 치사율은 20퍼센트였다. 이들은 이름이 아닌 환자 몇 번이라는 숫자로 기록됐지만 ‘헬조선’에서라도 ‘살아야겠다’고 절박하게 울부짖었던 ‘사람’이었다. 스스로 살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라도 ‘살고 싶다’는 처절한 목소리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