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새로운 세상이 오려함인 것이냐
무슨 새로운 세상이 오려함인 것이냐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0.07.1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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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고창 동리시네마에서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고창 동리시네마에서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문득 이 말이 생각난다. 삶이 고달픈 이유는 악마의 유혹에 빠져들면 안 된다는 조심성 때문이라는 이야기. 그렇기도 하지만, 내 생각엔 악마의 유혹보다 천 배는 더 조심해야 할 게 있으니 그것이 바로 돈이라는 이름의 괴물이다. 돈 자체가 악마이기도 하면서 천 개 이상의 다른 얼굴을 갖고 있으니 조심, 또 조심으로 다뤄야 한다는 생각.

돈을 어떻게 다루면 행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온 사람이 있다. 태어난 것이 억울해서 슬퍼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누구이든 어깨를 토닥이고 쓰다듬어주고 손을 만져주었던 사람, 내 인생의 미래를 심각하게 돌아보게 했던 그 사람, 그 남자, 그가 죽었다는 부고를 목요일에 인터넷으로 접했다.

슬픔을 깨물고 싶지는 않다. 흘릴 만한 눈물도 없다. 이를 악물고, 눈에 핏대를 세운 채로 그저 무엇인가를 응시하고나 있을 따름이다. 내 눈을 가득 채운 그게 무엇인가는 나도 모른다. 비가 온다. 빗속을 뚫고 영화나 보러 가야겠다.

소리꾼. 월요일에 혼자서 보았던 영화를, 너무 많은 눈물을 쏟아내게 했던 영화를 금요일에 다시 또 보고자 함은 눈물이 그리워서일까? 아닐까? 어쨌든 뭐 그냥 그렇다. 집에 혼자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데 어쩔 것이냐.

빗속을 달리는 차창 앞으로 그가 다가온다.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에 그는 사라졌다. 어디로 갔느냐. 거기는 어디인가. 왜 거기로 갔는가.

돌아보면 그와의 인연은 겁나게도 오래 되었다. 호기심 많은 시골 출신 청년의 팔십 년대식 서울 생활이 낳은 인연이었다고 하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물처럼 순연하게 흘렀다면 맺어지지 않았을 인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고자 해서 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촌놈을 화나게 하는 무엇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뭐랄까, 분노라기보다는 차라리 안타까움 때문이었다는 게 아마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영화 '소리꾼' 포스터 ⓒ위클리서울

수업을 거부하고 쏟아져 나온 학생들이 종로 거리 아스팔트 위에 스크럼을 짜고 앉아 백골단을 저주하고 있을 때, 그들은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시러 갈 수가 없고 용변이 마려워도 어지간한 일은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했다. 나는 대학생도 아니고, 민중이란 단어로 시작되는 운동권 시민도 아니어서 시위현장을 구경이나 하는 입장이었지만, 학생들의 목마름을 달래줘야 한다는 제법 기특한 생각을 할 정도의 인성은 갖추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틈만 나면 양동이를 들고 종로 거리나 서울역 앞으로 나가서 물을 얻어다가 학생들에게 먹이면서 최루가스를 뒤집어쓰는 모욕감에 치를 떨기를 몇 번이나, 몇 년이나 했던가는 지금 기억도 나지 않는다. 명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명동성당 하나뿐이다. 나는 비록 절간에서 자라다시피 했지만 불교를 종교로 신봉하지도 않았고, 현실종교 자체에는 별 관심도 없었지만 명동성당은 관심을 갖기에 충분한 뭔가가 있었다.

가진 것은 목소리밖에 없는 시위대를 백골단의 방망이와 수갑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명동성당 측의 노력이 처음에는 그저 가상하게만 여겨졌다. 그런 마음이 진보를 거듭해서 명동성당 부속기관에서 행하는 각종 세미나와 강좌에 가끔 한 번씩 참석을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정식 수강생이 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때의 그 프로그램이 아마 종교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하는 것이었을 게다. 아무튼 삼 년여 동안 정기적으로 드나들며 세상의 모든 종교와 그 역사를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더듬어 나가고 있던 어느 하루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회보 한 부가 내 손에 들어왔다.

역사문제 연구소. 친일사학에 찌들대로 찌든 이 나라의 역사학계를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모인 사람들의 집합체. 이이화 서중석 등 당대의 민감한 사학자들이 참여하는 이 연구소가 명동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 연구소 건물을 마련하기까지의 내력이 기가 막혔다. 멤버들 대다수가 재야 사학자들로 이루어진 까닭에 변변한 공간 하나 마련할 여력이 없었다. 이 가난한 학자들을 위해 널찍한 이층 양옥집 한 채를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내놓은 사람, 그가 훗날 참여연대라는 명칭으로 알려지게 되는 젊은 변호사 박원순이었다.

마당에 대여섯 평 규모의 잔디밭이 있는, 일층의 거실을 강의실로 쓰는 그 연구소를 드나들며 내가 알고 있는 역사의 상당부분이 잘못된 것이라는 새로운 앎에 취해서 즐거워하던 시기에 참여연대는 결성되었다. 나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이름의 조직이었다. 낯설면서도 친근했고, 금방 무엇인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만 같았다. 내가 만일 서울특별시에 계속 살았다면 열성적인 활동가 노릇을 지금도 하고 있겠지만, 집 걱정 돈 걱정 그런 시시한 걱정 안 하고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던 나는 부득이 서울을 떠나야 했고, 시골로 내려온 뒤에도 계속 회원 노릇은 해 왔으니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는 인연인 셈이다.

 

고 박원순 시장 발인과 영결식
고 박원순 시장 발인과 영결식 ⓒ위클리서울/ 왕성국 기자

엄밀히 따지고 보면 돈 없는 세상을 꿈꾸는 나의 몽상이랄까 공상도 박원순의 영향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쨌든 그는 갔고, 나는 빗속을 뚫고 며칠 전에 본 영화를 또 보러 간다. 소리꾼. 이 영화가 만약에 완성된 예술 그 자체로만 구성돼 있다면 부고를 접한 그날 굳이 또 보고 싶어 하지는 않았으리라.

예술은 어디서 나오는가. 무엇이 예술로 승화되는가. 분노와 슬픔은 어떻게 희망으로 신분변환이 돼 가는가. 관객이 거의 없는 영화 소리꾼은 그걸 말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살림이 가난하게 평범해서 행복해 하는 사람을 납치해다가 양반가에 노비로 팔아먹는 인신매매단이 있다. 왕이 이 사실을 접하고 암행어사를 파견한다. 암행어사는 인신매매단을 일망타진한다. 그러나 실제는 일망타진이 아니다. 그렇게 보일 따름이다. 현장 사정을 모르는 왕은 암행어사를 포상하고 직급을 높여 관찰사에 보임한다. 관찰사는 오늘날의 지방 검사장에 법원장에 경찰청장에 향토사령관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니 파격도 엄청난 파격의 승진이다.

그는 이제 커다란 날개를 달았다. 알고 보니 그는 인신매매단의 총책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치적으로 사제관계인 정승과 더불어 왕위를 침탈할 계획을 오래 전부터 도모해 왔다.

권력이란 무엇이냐. 재력이다. 돈이 있으면 권력을 잡을 수 있고, 왕위까지도 찬탈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들에게는 있다. 그래서 돈을 모으고자 한다. 사람을 납치해서 쓸모 있는 자는 양반가에 팔아먹고, 쓸모 없다고 여겨지는 자는 광산에 끌고 가서 강제노역을 시킨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일본산 신무기를 사 들이는 한편 역모사건을 조작해서 왕의 신임을 더욱 두터이 한다. 피골이 상접해도 너무 상접해서 광산에서도 쓸모가 없어진, 자기들이 납치한 사람들을 끌어다가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패서 인사불성을 만들어놓고 그들이 역모를 꾀했다고 자랑스럽게, 당당하게, 어처구니없게 왕을 속이는 기술을 그들은 발휘한다.

이것은 영낙없는 현대의 일부 검찰 모습이다. 간첩사건 조작이야 뭐 이제는 고전이 되었고, 자기들의 이익에 반하는 자가 나타나면 없는 죄를 만들어서 뒤집어씌워 버린다. 그러면서도 자기들 중에 누군가 죄지은 것이 발각되면 우리는 몰라 해 버리고, 상황이 여의치 못하면 수사를 하기는 하되 최소한 전관예우는 받을 정도만큼만 한다. 전관예우란 무엇이냐. 단어는 제법 부드럽게 돼 있지만 날강도, 중에서도 흉측한 날강도 짓이 바로 전관예우라는 것이다.

이런 파렴치한 짓을 더 이상은 못 하게 하겠다고 대통령이 그 방면의 전문가를 장관으로 임명했지만, 검찰은 그들의 주특기인 법기술을 동원해서 한칼에 날려버렸다. 무슨 특별한 죄가 장관에게 있어서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장관의 성품이 온유해서 쉽게 날릴 수 있었을 뿐이다. 어쨌든 대통령은 새로운 장관을 임명해야만 했다.

새로 온 장관이라고 날릴 수 없으랴. 천하무적 검찰은 새로운 칼을 갈기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으로 강하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거친 사람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은 검찰은 이제 정면대응을 하고자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검찰 자신이 무너질 것 같다. 뒤에서 응원해주는 정치집단이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검찰을 열심히 응원하는 이 정치집단은 타인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사상으로 무장하고 있고, 설령 나라가 망한다 해도 나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환영할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가난해도 행복했던
가난해도 행복했던 (영화 '소리꾼' 스틸컷) ⓒ위클리서울

좋은 사례가 하나 있다. 북한에 전단지 날려 보내는 것으로 직업을 삼고 있는 탈북자 한 사람을 국회로까지 불러 들여서 어깨를 토닥이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 그것. 그 탈북자는 북한 인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가 날려 보낸 전단지의 내용을 보면 새빨간 거짓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작고한 우리의 대통령과 북한 최고 수뇌의 부인이 밀회를 즐긴다는 그림을 싣고 있는 그 어처구니없는 전단지가 북한 인권과 무슨 상관? 전쟁이 터져도 좋다는, 아니 어쩌면 전쟁을 간절히 바라는 심사가 아니고서야 그럴 수는 없다.

영화 소리꾼은 권력을 쥔 자들의 그런저런 생양아치 같은 모습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판소리 중에 심청가 한 작품을 완성해 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더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직원이 허리를 구십 도로 꺾는다. 혼자서라도 영화를 보러 와 줘서 고맙다는 거다. 그도 마스크를 썼고, 나 또한 마스크를 써서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밖으로 나오니 보이는 게 온통 마스크뿐이다. 코로나19 초기만 해도 고창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어쩌다 한 명씩 띄엄띄엄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마스크 안 쓴 사람이 어쩌다 한 명씩 띄엄띄엄이다.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매일 이십만 명 이상씩 늘어난다 하니 가슴이 무겁다. 어디까지 가려는 것일까. 사람이 그동안 지은 죄를 바이러스가 응징하겠다고 나선 것은 혹시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도 든다.

쉬지 않고 내리는 비도 심상치 않다. 사흘 정도는 오다 말다 하던 비가 일요일은 하루 종일 내리고, 월요일로까지 이어졌다. 중국의 어마어마한 홍수가 생각난다. 이재민이 삼천만 명을 넘었다는데 아직도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단다. 일본의 홍수 피해도 만만치 않다. 지난 일이지만 호주의 엄청난 산불도 간과하기 어렵다.

무엇인가. 무슨 일이 새로 벌어지려 하는 것인가. 코로나19 이전 시절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거라던 미래학자들의 진단이 새삼 가슴을 친다. 이제라도 다함께 잘살자는 마음이 사람마다의 가슴에 스며든다면, 그러면 혹시 좋은 일이 생기려나?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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