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토마토가 아니었다
그것은 토마토가 아니었다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0.07.20 16:19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pixabay.com
ⓒ위클리서울/pixabay.com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느지막이 일어나도 되는 주말 아침이었지만 빗소리에 일찍 잠을 깼다. 남쪽 지방에 머물고 있던 장마 전선이 서울로 상경했는지 요 며칠 동안 제법 비를 뿌리고 있다. 적당히 오면 참 좋겠지만 여름철 장맛비가 내리면 주부들은 “아이고 채소 값 오르겠네”, “혹은 과일값 비싸지겠네” 등의 생활비 걱정이 앞선다. 한 달 쯤 전인가 국가에서 지원하는 재난지원금으로 원 없이 과일을 사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과일을 먹으면서 나눴던 우리 부부의 대화가 다시금 웃음 짓게 만든다.

한 달 전 우리 집은 흡사 도서관을 방불케 했다. 고등학생 아들은 중간고사 기간이었고 나는 학기말 시험 대비와 과제물 작성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식구들 중 유일하게 학업과는 크게 상관없이 출퇴근에 충실하며 마누라와 자식들 공부시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는 남편. 주말이 되면 스스로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두 다리를 대짜로 벌리고 소파와 일심동체가 되어 사랑해 마지않는 TV 리모컨을 어루만지며 달콤한 휴식에 빠져야 했겠지만 본인을 제외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시험의 굴레에 빠져 있는 터라 감히 대짜는커녕 화장실 가는 발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찌그러져 있다고 함) 신체 일부와 같던 TV 리모컨과의 애정행각도 잠시 접어두고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때만 해도 코로나 감염 우려로 독서실이 폐쇄된 상태라 집 말고는 딱히 공부할 장소도 없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남편도 이 숨 막히는 공간이 힘들었을 것이다.

갑자기 남편은 외출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재래시장을 다녀오겠다며 아직은 잔액이 가득 남아 있던 재난지원금 카드를 들고 나갔다. 얼마 뒤 검은색 봉다리(주1)를 양손 가득 들고 의기양양하게 들어오셨다. 복권 3등쯤 당첨된 듯한 뿌듯한 얼굴과 이 세상 하나도 부러울 것 없는 들뜬 목소리로 국가가 결제해 준 과일들을 봉다리에서 차례대로 꺼내놓기 시작했다. 굳이 씨를 발라내지 않아도 되고 껍질째 먹을 수 있어 내가 이 세상 제일 좋아라하는 켐벨포도와 청포도, 참외 9개(굳이 10개가 아닌), 그리고 본인이 즐겨 먹는 빨간 방울토마토의 개량 품종인 듯한 방울토마토가 있었다. 특히 항암효과에 탁월하다는 조금은 생소한 모양새와 색상을 띈 푸르스름한 방울토마토를 과일가게 사장님의 권유로 구매했다며 먹어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했다. 아쉽지만 식구들 중 그 누구도 방울토마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 나와 아이들은 처음 접하는 음식을 먹어보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푸르스름한 방울토마토(정확한 이름은 흑토마토였다)를 먹어보기가 사실 두려웠다.

남편이 양팔 무겁게 사들고 온 과일 덕택에 다 같이 둘러앉아 오랜만에 과일 후식을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코로나로 인해서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반강제로 경제활동이 중단되다 보니 중고물품 거래가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화두에 올랐다. 실제로 나 또한 안 쓰는 물건들 중고시장에 올려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요즘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들이 많아서 중고거래를 많이 한대.”

“(알지만 모르는 척)그렇대?”

“토마토가 매출이 많이 올랐대.”

“(이 무슨 개코같은 소리????????)토마토가 중고가 있어?”

“(한심하다는 듯)무슨 토마토가 중고가 있냐…. 지역에서 거래할 수 있는 중고 판매 앱이 있어. 토마토라고~”

“아~ 그래? 당근마켓 같은 거구나.

“그렇…어”

“당근마켓이라고 중고 거래 하는 앱 있어. 토마토도 그런 거지?”

“아… 토마토가 아니고 당근이구나. 아까 다들 방울토마토 안 먹는다고 그래서 머릿속에 방울토마토만 생각하다가….”

굳이 정리하자면, 중고물품 거래 앱인 당근마켓의 매출이 상승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남편의 머릿속에 식구들이 시식을 거부했던 푸르스름한 방울토마토에 대한 미련이 남아 당근마켓이 토마토마켓으로 돌변한 것이다.

뭐 당근이든 토마토든 코로나로 힘들어진 경제 속에서 중고거래까지 하며 악착같이 살아남는 우리 국민들이 대단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모두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위기를 지금처럼 힘을 내 이겨나갔으면 좋겠다.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구루 2020-08-31 12:57:55
아내와 자제분들 공부시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주말에는 소파와 일심동체가 되시는 남편님 귀여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