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역정을 되돌아보니 비로소 보이는 행복
삶의 역정을 되돌아보니 비로소 보이는 행복
  • 박종민
  • 승인 2020.07.23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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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민 시인 / 수필가
박종민 시인 / 수필가

[위클리서울=박종민] 예부터 남녀가 서로 만나 결혼이란 절차를 거친 뒤 부부로서의 삶을 40년 이상 함께하며 동고동락 동거했다면 향복(享福)이라 했다. 과연 부부가 동거했다는 40여 년에 큰 복의 의미를 두는 건 뭘까? 아마도 그 긴 세월 속에 묻어진 삶의 숱한 애환과 담겨있는 사연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리다.

오죽 많으랴! 온갖 산전수전과 풍설수설은 물론 그걸 초월한 공중전까지의 역정들을 감내해온 인생 삶에 대한 의미 부여일 것이다. 그래서 <40년 동수(同壽)>는 축복의 기념비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복 받았음과 복을 느끼며 살았음은 분명히 구별돼야 되리라.

  평균수명이 60세가 채 되질 않던 옛날엔 결혼해 40년 이상을 부부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흔치 않았었다. 기껏해야 2~3십 년의 연한으로 사별(死別)을 맞게 되는 운명이었고 많은 이들이 겪은 부부간의 타고난 팔자이었다. 먹고 입고 살아가는 것 모두가 힘겨웠던 그 시절엔 보통서민들의 민생은 열악하기 그지없는 신산(辛酸) 그 자체였다.

삶이 곤궁하고 힘겨울수록 살아가는 데 얼마나 애환이 많았겠나! 인간의 삶 속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 시절엔 희락(喜樂)보다는 노여움과 슬픔이 더 많았으리라. 그런 어려움 속을 헤쳐 가며 40여 년을 영위해 온 삶이야말로 기념적임이 명백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후텁지근한 기온에 하늘을 온통 뒤덮은 검정구름이 꾸물꾸물거리고 창밖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이다. 잔잔하고 고요함 속에 질척대는 비에 습기가 찐득거리고 있다. 허나, 내심 한유하다. 커피 한 잔을 탁자에 놓고 앉아 가만히 내 삶의 역정을 되돌아다 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비교적 순탄하게 자랐다. 인근에 이름난 부잣집 자녀들같이 호강스럽게 자라진 않았지만 나름 불만 불평 없이 커왔다. 넉넉하고 풍족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궁색할 정도로 궁핍하진 않았다. 신산하기만 한 부모님 세대에 비유하면 사랑을 많이 받으며 곱게 자라났다.

  나의 어린 시절은 태곳적농산업이 주류였고 의식주의 근간이었다. 거기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며 컸다. 성인이 됐을 무렵 산업화와 국토개발시대를 맞았다. 때를 맞아 강물 만난 물고기가 마냥 젊은 열정을 힘껏 쏟아부으며 소임을 다했다.

나의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마음껏 헤엄쳐 물살을 갈랐다. 놀 때와 일 할 때를 구분 못 하고 시도 때도 모르며 일에 푹 빠져 살았다. 베이비부머들이 전성기를 맞은 시대이었다. 뭔가를 하나씩 이뤄내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다가 남들처럼 여자를 만났고 연애 끝에 사랑을 확인해 결혼했다. 자식을 둘이나 낳아 장성하게 키워 독립 가구로 분가시켰다. 내 할 일 다 해서 이룰 건 다 이루었지만, 향복(享福)은커녕 행복이란 것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었다. 그렇게 난 행복이란 게 뭔지를 모른 채 살았다. 

  빛의 속도로 가늠되는 최첨단의 변화무쌍한 오늘에 이르도록 늘 쫓기는 듯 살아왔다, 시대 흐름에 못 맞춰나가면 도태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생각해보니 간과해온 게 너무나 많다. 내 삶 속에서 이뤄지는 행복의 실체도 모르고 의미도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이제 행복이란 걸 분간하며 살터다. 건강나이 100세를 추구하는 장수시대다. 중요한 건 헛된 욕심은 버려야 한다. 욕심이 화를 불러들여 병마를 일으킨다. 병들면 모든 게 끝이다. 돈 명성 명예를 얻는 게 행복이 아니다. 세상 만물은 모두 한계가 있다.

부부인연 맺어 45년간 동고동락한 나다. 아내를 불러 커피 한 잔을 쟁반에 받혀 아내에게 권하니 행복한 넘치는 얼굴로 반긴다. 커피 한 잔 서빙에 저리도 좋아할까? 행복의 잔향이 번져난다. 작은 것도 맘에 두니 그게 행복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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