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살과 감기는 숨겨지지 않는다”
“장애와 살과 감기는 숨겨지지 않는다”
  • 우정호 기자
  • 승인 2020.07.27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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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사람] ‘배려의 말들 : 마음을 꼭 알맞게 쓰는 법’ 작가 류승연
ⓒ위클리서울/ yes24 제공

[위클리서울=우정호 기자] 견딜 수 없는 것들을 마주할 때 우리가 택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회피하거나 마주하거나. 쌍둥이 엄마이자 세 번째 책 ‘배려의 말들’을 지난 달 출간한 작가 류승연은 용감하게 마주하는 방법을 택했다. 세상이 바뀌어주지 않으니 세상을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그녀는 기자였다. 사회부와 정치부를 거친. 축구로 치면 최전방 스트라이커나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게임을 바꾸거나 만드는 포지션이다. ‘반발 빠른’ 기자이자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그녀가 전업주부를 거쳐 다시 쓰게 된 이유는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이 자식이 된다는 것. 삶의 차원이 다르게 다가온다는 얘기에요. ‘살아서 뭐해’하는 생각도 들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일 수도 있겠죠. 그런 절망을 뚫고 나가려고 발버둥 치다 깨닫게 됐어요. 우리가, 우리 가족이 무슨 짓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 사실은 이 아이의 발달장애가 벗겨지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것. 그 때 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어요. 이렇게 끝내버릴 것인가. 이 아이도 살고 나도 살도록 해볼 것인가. 명확해졌어요. 우리가, 이 아이가 아니라 세상이 바뀌어야 모두가 살겠다는 생각이. 그렇다면 뭘로 세상을 바꿀 수 있지?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야겠다. 글 쓰는 것”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가진 써내는 사람.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머리를 스쳤다. 뇌 헤르니아 장애, 지체장애를 가진 자식읕 토대로 한 소설 ‘개인적인 체험’의 작가. 아이를 기를 것인지 안락사 시킬 것인지 선택을 가졌을 만큼 절망적이었으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그처럼 그녀에게도 아들을 소재로 글을 쓴다는 부담감과 기쁨이 공존하겠지.

“장애와 살과 감기는 숨겨지지 않는다”고 운을 뗀 그녀는 짧은 한숨을 한번 쉬고 용감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아들의 장애를 드러낸다는 게 누구에겐들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렇다면 이걸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고, 알려서 이해받는 게 그렇지 않은 편 보다 아주 훨씬 더 나아요. 내 성격상도 그렇고. 하지만 이렇게 글로 드러내면서 그로 인해 가족이 노출될 수 있다는 부담은 있어요. 기자라면, 기사 쓰는 당사자인 본인이 책임지고 독자들에 어떤 말을 들어도 감내해야겠지만, 이 경우 내가 조심하지 않으면 작은 부분에서라도 가족들이 공격당할 여지가 있으니까.”

신간  ‘배려의 말들 : 마음을 꼭 알맞게 쓰는 법’ ⓒ위클리서울/유유  

작가는 앞선 두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를 통해 아들의 장애를 당당하게 드러내고 알렸다. 이번 신간 ‘배려의 말들’을 통해 ‘알멩이로서의 나’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그 전 책들에선 ‘동환이 엄마’라는 자아를 가지고 글을 썼죠. 이번 책에서는 그보다 ‘류승연’이라는 자아에 집중해 썼어요. 물론 나는 내 아들의 엄마이기도 하니 동환이 얘기를 나와 떨어트려놓을 수는 없지만 오롯이 ‘나’에 대해 집중해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고 힘든 작업들이었지만 기쁨이 컸어요.”

‘배려의 말들’에서 명민했던 사회부·정치부 기자시절의 ‘류승연’의 에피소드에 눈길이 갔다. 하지만 그녀가 ‘한편으로 딸이 기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고 쓴 대목에서는 ‘진심일까?’ 하고 작게나마 의혹을 가졌다. ‘기레기’라고 지나가던 초등학생도 내 뱉을 수 있는 시대에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딸이 기자가 되길 바란다는 진심을 썼다는 건 제가 그 직업을 거치며 어떤 성취감을 가졌기 때문일 거에요. 사회부, 특히 정치부에서 거칠고 힘들었던 훈련들을 버텨내고 그게 특종이나 좋은 기사로 이어졌을 때 그런 성취감은 ‘일이 재밌다’고 느낄 정도로 크게 다가오죠.”

하지만 유사 이래, 일을 하기 위해 직장을 갖는 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버텨내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그녀도 처음부터 일에서 재미만 느끼는 성인군자에 가까운 직장인은 아니었다.

“강남에서 온실 속 화초로 자랐던 나는, 어릴 때 대부분의 그 동네 아이들 처럼 멋 내고 예쁜 거 좋아하면서 직장도 큰 어려움 없이 패션 잡지사에 들어갔어요. 그 전까지 뉴스 한 번도 안 보던 인간이었죠. 명품, 패션, 옷, 악세서리, 화려한 세계를 질리도록 보는데도 만족감이 적고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러다 결국 고민이 깊어져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어떤 신생매체를 도와줄 일이 생겨 처음 사회문제를 다룬 기사를 심층취재해서 내게 됐는데 그 때 살아있음을 느꼈죠. 아, 이거다 싶어 본격적으로 신문사 사회부에 들어갔고 일에 빠졌고 기자다운 기자 생활했죠. 경찰서에서 국회에서 부대끼고 현장을 마음껏 느끼면서.”

‘배려의 말들’로 둘러싼 그녀와 그녀가 있던 ‘현장’의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책에 등장하는 ‘인권감수성’, ‘배려’와 ‘정치기자’는 서로 어울리는 말이 아니니까. 세상에서 가장 비인권적인 곳을 세 군데만 뽑으래도 3초를 세기 전에 먼저 튀어나올 수 있는 판이 정치판 아닐까.

“국회 오가면 아시겠지만, 국회 정문 앞에는 항상 1인 시위하는 분들이 계셔요. 정치부 기자시절엔 사실, 그들에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어요. 회사가 바라는 ‘정치기사’와는 별로 관련이 없으니까. 지금 관심을 크게 가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같은 단체도 그때도 ‘장애인 법 개정하라’하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지만 저도, 제 주변도 들리지 않았죠. 인권이요? 인권이 정치부에서 나올까요. 근데 아이러니 한건 정치에서 국회에서 인권과 관련된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힘은 정치인들인데 막상 정치인들에게는 인권이 중요하지 않아요. ‘정치질’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정치부 기자를 그만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아들 덕분에.”

흔히 기자는 ‘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보이곤 한다. 그들의 직무가 정말 ‘쓰는 것’이 주일지는 모르겠지만. 아울러 크고 작은 언론사의 기자들이 회사의 기조에 따라 용역으로 전락하곤 한다. 작가는 “맞는 말이잖아요. 기자는 샐러리맨.”이라고 동조했다.

“기사라는 게 분명 이유와 이권이 개입될 여지가 충분히 있고 아무리 사명감을 가진 기자라고 해도 온전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에는 자유롭기 쉽지 않은 직업이 아닐까요. 나 역시 너무 즐겁게 기자 생활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떤 허상인 부분이 많고. 기자는 샐러리맨이죠. 다만 스스로 바로 서기 위해 양심과 정확한 논리를 가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중요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생활을 통해 ‘세상과 맞짱 뜨는 방법’을 체감한 그녀는 인식 바꾸기를 통해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활동 중이다. 신간 ‘배려의 말들’의 언어들 중 ‘나의 변화가 모든 위대한 변화의 시발점임을 잊지 말 것!’이라는 문장의 부호조차 그녀의 강력한 다짐으로 보였다.

“인터뷰 하고 있는 이 장소에 들어오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대상화 하고 있을 거에요. 저는 어떻게 보일까요? 책을 쓴 작가라고 보일까요? 혹은 머리 폭탄 맞은 동네 아줌마로 보일까요? 파마 잘못해 가지고.” 조금 웃음이 났지만 그녀는 금새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대상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식을 바꾸기 위해 타인이 바뀌어야 하는 건 맞죠. 하지만, 끊임없는 대상화의 고리에서 벗어나려면 나부터 남을 대상화해 보지 않아야겠죠. 대상화의 연결고리를 여기서 하나 끊을 수 있고, 그걸 자각하는 또 한명이 늘어나고 그가 만난 또 한명이 대상화 연결 고리에서 벗어나고. 변화는 이렇게 작은 데서 하나하나 바뀌어 가는 거지 ‘나는 아무것도 안하면서 너는 나를 제대로 봐줘’라는 태도로는 바꿀 수 없어요.”

그녀는 글쓰기 외에 가능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세상과 한 판 벌이는 방법을 택했다. 강연은 그녀의 주된 일 중 하나가 됐다. ‘배려의 말들’을 건네며.

“주로 하는 강연은 장애관련 강연이에요. ‘장판’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장애인 판’의 줄임말. ‘장판’과 ‘비장판’에서 강연을 하고 북 콘서트도 열고 있어요. 이를 통해 장애란 무엇이고 발달장애란 무엇인지. 장애인지 전환을 위한 강연들을 주로 해요.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엄마들이나 장애인을 교육하는 교사들, 사회복지사들에게 제가 느낀 경험, 깨달은 것들을 얘기하고 어떤 것들은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알리는 자리들을요.”

그녀 ‘인권’에 대한 관심은 장판(장애인 판)을 넘어 페미니즘 판에도 이르게 했다. 계기가 궁금했다. 기자생활 경력 중 맞닥뜨린 사회 구조적 모순들 덕택일까? 혹은 아들을 낳고 마주한 세상의 반쯤 뜨인 시선 때문에?

“기자로서 나는 페미니즘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인간이었어요. 왜냐면 그 ‘판’에선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 판이니까. 인권이란 말은, 침해당해본 사람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 삶에 들어오기 까진 문자로만 알 수 있을. 아들을 낳고 나서 그 단어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어요. 침해를 당해보니 그제야 인권이 삶과 직결된 문제라는 걸 뼈저리게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장판(장애인 판)에서 교육받은 걸 토대로 인권의 다른 부분들을 더 알고 싶게 됐고, 그래서 저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고. 부조리를 낱낱이 파헤쳐 깨버리고 싶어져 페미니즘 판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지난 2018년,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해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를, 지난 달 ‘배려의 말들’까지 벌써 세권의 책을 낸 그녀의 책에서 ‘인권감수성’, ‘구조화’, ‘대상화’, ‘배려’, ‘페미니즘’ 등의 키워드가 눈에 띈다. 다음 책에선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을까.

“‘배려의 말들’을 통해 저에게 집중하며 얘기해보니 너무 행복했지만, 제가 글을 써야하는 이유는 변하지 않아요. 세상을 바꾸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고, 동환이가 맞닥뜨릴 세상에 대해선 또 제가 동환이 엄마이기에 쓸 수 있는 얘기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동환이 엄마로 책을 한권 더 낼 예정이고, 기획해둔 소설도 있어요. 그 다음은 조금 쉴 수도 있을 거에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쉬지 않고 써낸 그녀의 뒷모습이 무겁지만은 않아 보였다. 축복받은 쌍둥이와 함께 발걸음 내딘 길이 금색에 가까운 햇빛으로 물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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