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울리고 웃긴 영화들
우리를 울리고 웃긴 영화들
  • 김혜영 기자
  • 승인 2020.07.30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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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탐방기] 부산국제영화제 3편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며 영화계 전반에 적신호가 켜졌다. 그러나 작은 독립 극장을 살리는 운동부터 온라인 영화제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로를 도우며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움직임도 보인다. 필자 또한 작년에 다녀온 영화제 탐방기를 집중적으로 연재하며 영화와 영화제에 관한 관심을 이어나가려 한다. 지난 1편과 2편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했고, 이번 3편과 4편에서는 영화제에서 볼 수 있었던 영화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부산국제영화제를 사로잡은 한국영화들

부산에 도착한 첫 날, 생각보다 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주영 배우가 주연한 ‘야구소녀’(2020)와 폐막작인 ‘윤희에게’(2019)를 필두로 한국 영화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은 덕택이었다. 그 결과 만반의 준비를 치른 온라인 예매는 처절하게 실패했고, 마지막 보루였던 현장 매표소에서도 보고 싶던 영화가 전부 매진되었다. 영화제를 갈 때마다 꼭 보고 싶은 영화와 만약을 대비한 다음 후보까지 고려해두는데, 후보의 후보까지 죄다 실패한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이동으로 피로감도 쌓였겠다, 오늘은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제 현장 곳곳을 가볍게 둘러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제 한 편에 마련된 전시나 VR 체험을 돌아다녀도 허전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멀고 먼 부산국제영화제까지 오게 된 것은 오로지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매표소로 돌아가 지금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느냐고 물었다. 잠시 당황하던 직원은 이곳저곳을 살펴보더니 티켓이 남은 영화들을 알려주었고, 그중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영화가 귀에 들어왔다. 지난 해 무서운 속도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극한직업’(2019)이었다. 상영이 끝난 뒤에는 팀워크가 좋기로 소문난 출연진들이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한다고 해 망설임 없이 영화를 예매했다. 아마 그때까지 그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극한직업, 대한민국을 웃기고 울린 영화

모두가 알다시피 영화는 범인을 쫓던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위해 치킨 장사를 하다가 대박이 나는 이야기다. 설정만 들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획기적이고, 문과생의 마지막 진로는 치킨 장사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하는 대한민국에 시의적절한 이야기다. 진정한 웃음에는 현실감각과 눈물이 배어있는 법. 영화 후반에 우린 다 목숨을 걸고 장사한다는 고반장(류승룡)의 외침은 소상공인들의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인물들이 본업으로는 아무것도 인정받지 못하고 해고 위기에 처하는 모습이나 하루 온종일 장사를 위해 중노동에 시달리는 모습들 역시 영화 속에서 지금의 우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럼에도 똘똘 뭉쳐 서로를 챙기고 팀으로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는 장면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관객들의 마음에 새겨지기도 했다.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이어진 GV(관객과의 대화)에서도 영화를 만든 이들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치킨 메뉴를 저작권에 등록하지 않아 소상공인들이 얼마든지 레시피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고, 배우들은 자발적으로 유명한 치킨 브랜드의 광고는 찍지 않기로 약속했다. 영화를 보며 시원하게 웃던 관객들은 비하인드 스토리와 솔직한 이야기들을 직접 들으며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심각한 영화와 역할을 맡아왔지만 실은 코미디 장르에 관심이 많았던 류승룡 배우나 코미디를 살리기 위해 톤 하나까지 세밀하게 연구한 진선규 배우, 애드리브가 거의 없었을 정도로 이미 완성형인 대본을 작성한 이병헌 감독까지 많은 이들의 진심과 노력이 모였기 때문에 국민적인 인기를 끈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닐까. 연초에 개봉해 이미 큰 사랑을 받았지만 10월에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감독과 주연배우 군단이 모두 참석하며 끈끈한 팀워크와 팬들을 향한 고마움을 표한 것 자체가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의 태도를 보여주는 듯 했다.

 

5 (왼쪽부터 이병헌 감독, 진선규 배우, 류승룡 배우)
왼쪽부터 이병헌 감독, 진선규 배우, 류승룡 배우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영화 '극한직업'과 영화 '내가 그리웠니' 포스터

이색적인 단편 영화들의 향연

단편 영화는 극장에 걸리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소개되기 어려워 영화제가 아니면 보기 힘든 장르 중 하나다. 그래서 이것만큼은 꼭 보고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네 편의 단편 영화가 묶인 한국영화 단편선을 성공적으로 예매했다.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낸 ‘안부’(2019), ‘내가 그리웠니’(2019), ‘제사’(2019)‘, 낙과’(2019) 네 편이었다. ‘안부’는 고시 공부 중에 만났던 친구 소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다니는 주영의 이야기다.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던 주영은 점차 소미를 이해하게 되고,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도록 사라지고 싶었던 소미를 만나 안부를 나누게 된다. 우리는 주변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어디까지 헤아리고 있는지, 마음의 병으로 스스로를 포기하는 청년들의 위치는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김사월의 ‘누군가에게’라는 노래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관객들은 마음을 울리는 노래 가사와 함께 탄식을 내뱉었다.

 

영화 '안부' 스틸컷
영화 '안부' 스틸컷
10 영화 '낙과' 스틸컷
영화 '낙과' 스틸컷
9 영화 '제사' 스틸컷
영화 '제사' 스틸컷

‘내가 그리웠니’ 역시 잊혀진 사람의 이야기다. 한때 스타였던 래퍼는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그의 오랜 팬과 함께 대관람차를 타게 된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기를 바라다가도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좋아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마음이 대관람차라는 좁은 공간과 쉴 틈 없는 대사로 리듬감 있게 표현되었다. ‘제사’는 감각적인 영상과 함께 제사를 소재로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화자의 목소리로 이루어졌다. 제사의 모든 준비를 도맡으면서도 그 음식조차 편하게 먹을 수 없는 여성의 이야기와 전통을 지키느라 급급한 남성의 목소리가 아이러니하게 울리며 관객들을 웃기면서도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마지막 영화 ‘낙과’는 역시 공시생인 아들과 도서관에서 시간을 죽이는 실직자 아버지의 이야기다. 같은 처지에 놓인 부자가 떨어진 과일을 두고 상충된 의견을 보이다 결국엔 하나로 마음을 모으게 되는데, 청년 문제뿐만 아니라 퇴직이나 실직에 처한 중장년층을 함께 등장시키며 세대의 화합을 이끌어냈다. 네 편의 단편 영화 모두 우리와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내며 소외와 연대를 동시에 이야기하는 듯 했다. 영화적 스케일이 갈수록 커지는 요즘, 모든 허례허식을 줄이고 본질에 집중한 단편 영화들이 유독 빛나는 영화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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